위키백과와 함께하는 그림 명작 여행

미술 공부/화가 17

인상주의를 거부한 인상주의자: 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는 전형적인 인상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클로드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자는 주로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드가 드가는 야외 사생을 기피하고 주로 실내 풍경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드가 드가는 사실주의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도 사실주의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화가입니다.드가도 당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신고전주의 - 낭만주의 - 사실주의에 이르는 전통적인 미술을 추구하였습니다. 아래는 당시 이탈리아에 살고있던 이모네 가족을 그린 가족 초상화인 《벨렐리 가족》입니다. 이 그림은 내용상 심리적으로 깊이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와는 달리 오른쪽에 있는 이모부가 왼쪽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

알프레드 시슬레는 인상주의 풍경화가입니다. 클로드 모네가 인물화는 별로 안그렸고 그 분야로는 그다지 성공도 못했다고 했지만, 시슬레는 정물화를 조금 남겼을 뿐 인물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슬레의 작품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 중에서 가장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분이 시슬레였습니다. 한편, 시슬레는 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을 쉽지 않아해서 거의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사실 알프레드 시슬레는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렇게 글로 정리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정한 기준은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화가"이거든요. 그런데,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중 가..

죽음의 순간조차 빛을 쫓았던 집념의 화가: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는 가장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사실상 인상주의를 개척했다는 의미에서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고, 평생 인상주의 철학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한 화가였습니다.클로드 모네는 18살이던 1858년에 풍경화, 특히 해양 풍경화를 그리던 외젠 부댕(당시 33세)을 만나 야외 사생을 배웠습니다. 함께 그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래가 그 당시 그린 《루엘에서 본 풍경》입니다. 깔끔한 풍경화네요. 그외에도 정물화도 그렸는데 그다지 많은 칭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클로드 모네는 정통 아카데미즘 교육을 싫어하고, 이론에서 벗어나 "나는 새가 노래하듯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식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는 않았지만(혹은 못했지만), 아카데미 쉬즈, 샤를..

빛과 행복의 화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년~1919년,78세)는 18세기 말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어릴적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프랑스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24살이 되었던 1865년부터 파리 살롱에 여러번 입선했으며, 1867년 《양산을 쓴 리즈》로 비평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벌써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니,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 보다는 훨씬 빠르게 성공하였고,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손자들까지 화가 또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였으니 정말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사실 르누..

페미니스트? 치열함이 부족했던 여류화가: 메리 카사트

메리 카사트(Mary Cassartt, 1844년~1926년)은 프랑스 인상주의자 화가였습니다.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살 때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당찬 여성입니다. 그렇지만 카사트는 베르트 모리조 등의 여성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1986년 타마르 가브의 《여성 인상주의자》가 출판되기 전까지 인상주의 작가들을 다루는 미술사 교과서에서 대부분 누락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술사 관련 서적중 가장 유명한 교양 서적이라 할 수 있는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초판에는 여성 화가들이 한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16판에 겨우 한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라도 메리 카사트가 결혼도 하지 않고 독립적인 화가로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환경..

치열함 대신 자유를 택한 인상주의 후원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인상주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의 정통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여, 인상주의가 자리잡는데 많은 공헌을 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상당한 수입과 부모의 유산으로,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유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래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입니다. 인상주의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대적입니다. 사진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그림을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몸이 반으로 잘린 크로핑(cropp..

파리는 몰랐던 푸른 빛의 거장: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분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발음하기도 힘든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는 덴마크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원래 크뢰위에르는 그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아래《호른베크의 아침. 돌아오는 어부들》와 같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러다가 덴마크의 담배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인 하인리히 히르슈프룽의 후원을 받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그림 공부를 떠나게 되고,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제작한 미술 작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의 문장에서 보신 것처럼, 크뢰위에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공부한 것도 아니고 함께 전시회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는 겁..

완벽한 기교 그러나 길을 잃은 거장: 존 싱어 사전트

지금까지는 대부분 후기인상주의 화가를 정리했는데, 이번엔 이 분들과 비슷한 시대에 살기는 했지만,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인 분의 위키백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내용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존 싱어 사전트(1856년~1925년)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아주 잘 그린 분입니다. 얼마전 글을 쓴 앙리 루소나 폴 세잔과는 다르게 말이죠. 가족들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살았기 때문에 정규교육은 받지 못해서, 처음엔 어머니에게, 그 다음엔 무명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지만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그림 실력이 좋았다고 합니다. 18살되던 1874년에 프랑스 최고의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단번에 합격할 정도로 말이죠. 미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사전트의 초기 작품들을 보고 "더 이상 배울 것..

그림 잼민이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폴 세잔

이번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폴 세잔 위키백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내용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폴 세잔의 아버지는 은행 설립자였습니다. 폴 세잔은 한마디로 금수저였죠. 인성은 별로였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 아니고 짜증 잘내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평생 친하게 지내던 화가는 피사로를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은행을 물려받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성과는 별로였던 모양이고, 2년 뒤 22살이 될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리 빠른 편은 아니죠.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파리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세잔은..

소박한 화풍과 오만한 자의식: 앙리 루소

이번엔 소박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앙리 루소 위키백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결과는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소박파 는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독학한 화가들을 말하며, 특히 그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과 솔직함이 특징입니다. 르네상스 이래로 정식 아카데믹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근법이었는데,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래는 앙리 루소의 1895년 작 《바위 위의 소년》입니다. 초상화인 것 같기는 한데, 바위위에 앉은 건지 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신체 비율도 이상하고, 신체 비율로 보면 어린아기 같기는 한데 얼굴을 보면 어른 같고... 등등 어디로 봐도 잘 그렸다고는 볼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