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알마타데마는 평생 그리스 로마 및 이집트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아래는 그의 대표작인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입니다. 서기 3세기 초의 로마 황제 헬리오가발루스가 베푼 연회를 묘사합니다. 앞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장미꽃잎 속에 파묻혀 있고, 뒤쪽에는 황제 일행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역사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황제는 손님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다가, 회전식 천장을 뒤집어 속에 있는 제비꽃 등으로 파묻었다고 합니다.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없었던 사람은 실제로 질식해 죽었고, 황제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인간들을 유흥거리로 삼아, 높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포도주를 마시며 그 모습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황제는 로마 제국의 제23대 황제로, 사차원의 막장 황제, 미치광이 황제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공식 호칭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이지만, 시리아의 태양신 '엘-가발(El-Gabal)'의 대사제였기 때문에 후대에 태양신의 이름(그리스어 '헬리오스'와 결합된 형태)을 따서 헬리오가발루스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의 최고신 유피테르(주피터)를 폐위하고, 자신이 섬기던 시리아의 태양신 '엘라가발(El-Gabal)'을 최고신으로 선포했고, 황제는 스스로를 가리켜 '황후'라 부르기를 좋아한 동성애자이며, 한번 입은 옷은 절대 다시 입지 않는 등 극단적인 사치를 즐겼다는 등 최악의 황제로 꼽힙니다.
결국 황제로 등극한지 4년후, 18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근위대에 의해 처형당했고, 그의 시신은 로마 거리에 끌려 다니다가 테베레강에 쓰러기처럼 던져졌으며, 원로원에 의해 기록 말살형(Damnatio Memoriae)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권력을 잡은 후임 황제(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측과 그를 증오했던 원로원들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게 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아래는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사포와 알카이오스》입니다. 사포는 레스보스 섬 출신의 유명한 여류 시인으로, 여성 간의 친밀함을 노래한 서정시가 특징으로 그림에서는 월계관이 놓인 쿠션에 턱을 괴고 음악을 듣고 있는 여인입니다. 레즈비언의 기원이 된 여인이죠(레즈비언은 레스보스 섬의 여자란 뜻입니다). 알카이오스는 그녀와 동 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시인이었구요.

그러나 사포가 원래 동성애자인지도 불명확하고, 오히려 알카이오스나 다른 남성들을 깊이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여전히 논쟁거리라고 합니다. 또한 원래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남성 위주의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던 "여성 학파"라는 뜻이었는데 19세기 이후에야 여성 동성애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제가 이 그림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이 앉아 있는 대리석의 표현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야외에 설치된 대리석이라면 당연할 것 같은, 오랫동안 비에 시달려 땟물이 앉은 자국까지 정말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알마타테마는 첫 번째 주요 작품인 《클로비스 자녀들의 교육》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스승은 대리석 처리 방식을 비판했고, 이에 열심히 노력하여 "대리석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금속, 도자기, 특히 대리석과 같은 물질을 탁월하게 묘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작품도 여럿 남겼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래의 《모세의 발견》입니다. 이집트 공주가 강가에 버려진 모세를 발견하여 요람에 싣고 거처로 돌아가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알마타데마는 그림을 그릴 때 고고학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데 특히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왼쪽으로 살짝 보이는 발만 보이는 붉은 화강암 조각상은 대영박물관에 있는 세티 2세의 조각상을 모방한 것이고, 그 위에 있는 히에로그리프도 그냥 모양만 따서 대충 그린 게 아니라, "라의 사랑을 받는 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이라고 적었습니다. 오른쪽 도자기 아래에는 람세스2세의 딸이라는 내용의 카르투슈가 그려져 있고요.
이처럼 세밀한 묘사와 정밀한 고고학적 재현이 특징이었던 알마타데마는 살아 생전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1912년에 사망한 후, 급격히 잊혀졌습니다. 입체파와 야수파 등의 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유행이 뒤떨어진 그림으로 추락한 거죠. 심지어는 유행에 뒤떨어진 그림에 관심없던 어떤 영국인 부부가 이 그림을 사서는 그림을 빼버리고 액자만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죠. 그도 다른 많은 아카데믹/고전주의 화가들과 함께 1960년 대 이후 재조명을 받아 현재는 다시 그림 한 점에 30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로런스 알마타데마의 10대 대표작
아래에서 보시는 것처럼 알마타데마의 그림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입니다. 위키백과 언어링크가 20개나 있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고만고만하네요.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로런스 알마타데마의 상태였습니다.

아래는 현재의 상태입니다. 번역안되었던 작품들을 모두 채워넣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