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시냐크는 원래 제가 정리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 분입니다. 제 기준은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화가거든요. 아래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폴 시냐크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작품 217.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의 경우에도 언어링크 수는 5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폴 시냐크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때문에 작품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폴 시냐크는 원래 클로드 모네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화가로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르주 쇠라를 만나 점묘법, 분할주의에 대해 알게 되어 평생 신인상주의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점묘법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가 제일 유명하고 폴 시냐크는 상대적으로 조르주 쇠라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상 폴 시냐크가 없었다면 조르주 쇠라와 신인상주의가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조르주 쇠라가 1891년, 31살의 나이에 요절하였고, 생전에 남긴 작품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폴 시냐크는 신인상주의의 이론서가 된 《들라크루아부터 신인상주의까지》를 저술하여 신인상주의를 널리 알린 공이 있습니다.

아래는 폴 시냐크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작품 217.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입니다. 사실 원 제목은 《작품 217. 박자, 각도, 색조, 색조로 리듬을 맞춘 에나멜 배경 속 1890년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 (Opus 217. Against the Enamel of a Background Rhythmic with Beats and Angles, Tones, and Tints, Portrait of M. Félix Fénéon in 1890)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제목을 가진 그림이라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더 긴 제목을 가진 작품을 지금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ㅎㅎ

펠릭스 페네옹은 저명한 비평가이자 언론가, 그리고 아나키스트였습니다. 무엇보다 조르주 쇠라가 앞장선 사조를 신인상주의라고 명명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해 준 분이었습니다. 폴 시나크에겐 은인이었죠. 그래서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요청하여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펠릭스 페네옹 특유의 염소 수염이 잘 나타나며, 소용돌이 형상의 알록달록한 문양은 일본 기모노 직물 디자인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이 그림은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널리 변주작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폴 시냐크도 인상주의자의 대부 카미유 피사로와 함께 아나키즘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두 분 모두 아나키스트로 어떤 정치적 활동을 했는지는 위키백과에는 안나와서 모르겠네요. 아래는 폴 시냐크의 정치적 성향을 잘 엿볼 수 있는 《조화의 시대》라는 작품입니다. 원래 제목은 《무정부 시대》(In the Time of Anarchy)였는데, 당시 프랑스 정부가 아나키즘을 탄압하고 있어서 자가 검열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책도 일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며 아이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당시 프랑스가 조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국가가 노력하고 변화한다면 조화로운 시대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가족, 노동, 유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그런 것이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수탉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새로운 여명의 상징인 동시에 아나키즘을 암시한다고 합니다. 문득,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어떤 정치인의 말이 생각나게 하네요.
시냐크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종류는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 풍경입니다. 그는 매년 여름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콜리우르(Collioure) 마을이나 생트로페(St. Tropez)에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집을 구입하고 친구들을 초대했다고 하고, 프랑스 남부를 미래의 아나키즘적 유토피아를 위한 완벽한 장소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1896년작 《카포 디 놀리》입니다. 기법상으로는 일반적인 점묘화 작품과 그다지 차이가 안보이지만, 화려한 색감이 아주 돋보입니다.

아래는 야수파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 받는 앙리 마티스의《사치, 정적, 쾌락》입니다. 앙리 마티스는 1904년에 폴 시냐크와 함께 작업을 했고,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사치, 정적, 쾌락》이었습니다. 신인상주의 스타일의 점묘파 기법이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냐크의 작품과는 달리, 나무를 보라색/노란색/파란색으로, 사람을 분홍색/파란색/녹색 등으로 묘사하는 등, 기존의 색채 관념을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앙리 마티스가 야수파로 넘어가는 기점에 그렸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폴 시냐크의 10대 대표작
아래는 폴 시냐크의 그림중에서 위키백과 언어링크수가 높은 순서로 정렬한 10개의 작품입니다. 최고점이 5점에 불과합니다. 카미유 피사로가 11점이라면서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폴 시냐크의 점수는 훨씬 낮습니다. 물론 이 정도 수준도 전체 화가의 순위에서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폴 시냐크의 상태입니다. 단 하나의 작품도 번역된 게 없었네요. ㅠ

아래는 현재의 상태입니다. 영어 위키백과에 등록된 작품 중 영어 페이지만 있는 《베네치아 성 마르코의 석호》외에는 모두 번역했습니다. 원래의 기준은 언어링크가 5 이상인 작품만 번역하는 건데 이렇게 번역하면 3개의 작품만 해당되기 때문에 거의 전부 번역할 수 밖에 없었네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