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는 점묘법으로 유명한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입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아주 오래전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미술책에서 처음 보며 아주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여러가지 특징 중에서 "짧은 붓터치"를 색채 이론과 결합하여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화풍입니다. 실제로 쇠라는 인상주의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클로드 모네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이었던 제8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쇠라를 참여시키자는 문제로 다투다가, 클로드 모네가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는 사건까지 벌어졌을 정도니까요.

사실 쇠라는 점묘법이라는 용어를 싫어했습니다. 자신의 기법을 분할주의(Divisionism) 다른 말로 색채 광학 주의(크로모루미나리즘, chromoluminarism)이라고 주장했죠. 사실 점묘법과 분할주의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점묘법은 단순히 점을 찍은 것 자체를 의미하지만, 분할주의는 색채의 원리, 즉, 보색, 조화색 등의 원리에 따라 연관된 색 점을 나란히 찍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분할주의도 점을 찍는 방법이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요.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모델들》입니다. 동일한 모델을 세가지 자세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쇠라의 기법이 너무 차가워서 인간을 잘 표혆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쇠라는 당대에 신인상주의의 대표자로 이름을 날렸고, 후대에는 입체파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지만, 국가적으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의 두 작품 모두 프랑스가 아닌 미국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그림은 《화장하는 젊은 여인》입니다. 쇠라가 자신의 애인인 마들렌 크노블로흐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쇠라는 31세에 죽을 때까지 애인과의 관계를 숨겼습니다. 심지어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까지 숨겼죠(아들이 태어난 다음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집안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이 결혼을 반대해서 숨겼을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중에는 이렇게 모델과 관계를 갖지만 관계를 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네의 경우 가족의 반대로 숨기고 있다가 아버지가 죽으면서 정식으로 결혼했지만, 르누아르는 부양비는 줬지만 끝끝내 아내와 아들까지 인정하지 않았고요. 그냥 그 당시 사회상이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빈센트 반 고흐, 프레데리크 바지유,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에 이어 또 다시 요절한 화가 이야기를 말씀드렸네요. 조르주 쇠라는 28세에 전사한 바지유보다는 낫지만, 31살에 사망했습니다. 사망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지만 병사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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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로 조르주 쇠라 작품을 정리했습니다. 아래처럼 모두 파란색 링크로 바꿨습니다. 아래는 캡처한 문서이고, 실제로는 틀:조르주 쇠라를 보시면 됩니다. 이 중에서 교외 그리고 에펠탑 은 프랑스어 위키피디아를 번역해서 만들었습니다. 총 10개 작품이네요. 이렇게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 있는 조르주 쇠라 작품 문서들보다는 숫자가 작지만 영어 위키피디아에 있는 문서들보단 많습니다. 약간 뿌듯합니다. ㅎㅎ
조르주 쇠라의 경우엔 기존에 많은 문서들이 작성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완료할 수 있었네요. 다음엔 어떤 분을 번역해야 할까... 생각중입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