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인상파에 가까운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정리했습니다. 제가 정리한 240명의 화가중에서 순위가 117번째입니다.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인상주의가 꽃피기 직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안타까운 화가였습니다. 의학공부를 위해 파리로 왔다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알프레드 시슬레 등과 친구가 되면서 전업 화가로 돌아섰으며,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등과 친하게 지냈던 분입니다.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어려운 인상주의자 친구들에게 그림에 필요한 재료 등을 제공하며 지원해주었고, 특히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클로드 모네와는 자신의 작업실을 제공해주기도 했죠.
그가 23세에 처음 그렸던 분홍 드레스 (1864년경) 그리고 가족의 재회(1867년), 마지막 그림인 레즈 강변의 풍경(1870)을 보시면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다만, 야외 사생을 위주로 하는 인상주의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짧은 붓터치로 인상을 캐치하는 인상파 자체의 화풍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이전의 바르비종파 화풍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반인상파라고 한겁니다.
![]() |
![]() |
![]() |
| 분홍 드레스, 1864, 148 x 110 cm, 오르세 미술관 |
가족의 재회, 1867–68, 152 x 230 cm, 오르세 미술관 |
레즈 강변의 풍경, 1870, 138.4 x 201.9 cm, 미니애폴리스 미술관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짧은 생애동안 인상주의 화가들과 주로 교류했고,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을 지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28살이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분이 죽고 4년 후인 1874년에 열린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계속 화가로 활동하셨다면 아마도 인상주의자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프레데리크 바지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바지유의 작업실(1870)입니다. 제목 그대로 바지유가 자신의 작업실을 그린 건데요(이 당시 이런 그림이 유행했었습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상주의자입니다.

그림 한 가운데 있는 이젤에 기대고 있는 분이 프레데리크 바지유이고, 그림 바로 앞에 서서 품평하는 듯한 분은 에두아르 마네입니다. 마네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바지유의 친구인 에드몽 메르트라고 합니다. 나머지 인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에밀 졸라 등 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에밀 졸라는 당대 유명한 소설가였습니다. 문학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텐데요, 미술 평론가로도 유명해서 마네의 올랭피아와 같은 작품이 기존 평단에서 비판을 받을 때 옹호해준 걸로 유명하죠. 이후에도 인상주의자들과는 대체로 좋은 관계를 가져서 인상주의자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등장합니다.
===
며칠전 프레데리크 바지유에 관한 글들을 정리했습니다. 아래가 그 결과입니다. 틀: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눌러보시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 있는 작품은 위키백과 번역 기준에 따라 선정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영문의 Template:Frédéric Bazille 에 포함된 문서를 모두 번역하고 미진한 부분은 프랑스어 페이지 등을 찾아서 보완한 겁니다. 프레데리크 바지유의 경우엔 3개의 문서를 추가했네요.

작품에 대해서 공부하고, 화가에 대해서 알아보다보면 새로운 많은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 이해하면 그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죠. 오늘도 조금 더 알게되어 무척 기쁩니다.
민, 푸른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