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와 함께하는 그림 명작 여행

인상주의 11

인상주의자에게 존경받은, 인상주의자의 대부 카미유 피사로

카미유 피사로는 정말 점잖은 선비같은 분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남성들이 외도를 하는 건 흔했고, 심지어는 사생아를 낳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화가들은 여성 모델과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카미유는 흔한 스캔들조차 없었습니다.무엇보다 인상주의 화가들, 예를 들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폴 고갱,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정말 까칠했던 화가들이 스승으로, 어른으로 모셨던 분입니다. 우측 사진을 보시면 지리산에서 몇십년동안 도를 닦으신 분 같이 보입니다. 실제로 카미유 피사로는 다른 인상주의자들보다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스승, 혹은 선생님으로 불려지곤 했습니다. 드가와는 4살 차이, 세잔과는 9살 차이, 모네와는 10살 차이, 르누아르와는 11살 차이였죠.카미유 피사로는 당시 덴마크령이..

그림 자르기 달인 - 모더니즘의 아버지 : 에두아르 마네

에두아르 마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분입니다. 물론 어떤 분을 한마디로 재단한다는 게 말이 안되긴 하지만요. 사실 저는 이 분을 싫어했었습니다. 인상주의를 만들다시피 한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또한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풀밭 위의 점심식사》나 《올랭피아》가 미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그다지... 별로... 라는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마네에 대한 글을 좀 더 읽어보고, 작품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나서야, 에두아르 마네를 왜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에두아르 마네는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판사였고 어머니는 스웨..

인상주의를 거부한 인상주의자: 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는 전형적인 인상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클로드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자는 주로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드가 드가는 야외 사생을 기피하고 주로 실내 풍경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드가 드가는 사실주의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도 사실주의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화가입니다.드가도 당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신고전주의 - 낭만주의 - 사실주의에 이르는 전통적인 미술을 추구하였습니다. 아래는 당시 이탈리아에 살고있던 이모네 가족을 그린 가족 초상화인 《벨렐리 가족》입니다. 이 그림은 내용상 심리적으로 깊이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와는 달리 오른쪽에 있는 이모부가 왼쪽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

알프레드 시슬레는 인상주의 풍경화가입니다. 클로드 모네가 인물화는 별로 안그렸고 그 분야로는 그다지 성공도 못했다고 했지만, 시슬레는 정물화를 조금 남겼을 뿐 인물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슬레의 작품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 중에서 가장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분이 시슬레였습니다. 한편, 시슬레는 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을 쉽지 않아해서 거의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사실 알프레드 시슬레는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렇게 글로 정리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정한 기준은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화가"이거든요. 그런데,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중 가..

죽음의 순간조차 빛을 쫓았던 집념의 화가: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는 가장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사실상 인상주의를 개척했다는 의미에서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고, 평생 인상주의 철학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한 화가였습니다.클로드 모네는 18살이던 1858년에 풍경화, 특히 해양 풍경화를 그리던 외젠 부댕(당시 33세)을 만나 야외 사생을 배웠습니다. 함께 그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래가 그 당시 그린 《루엘에서 본 풍경》입니다. 깔끔한 풍경화네요. 그외에도 정물화도 그렸는데 그다지 많은 칭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클로드 모네는 정통 아카데미즘 교육을 싫어하고, 이론에서 벗어나 "나는 새가 노래하듯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식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는 않았지만(혹은 못했지만), 아카데미 쉬즈, 샤를..

빛과 행복의 화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년~1919년,78세)는 18세기 말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어릴적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프랑스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24살이 되었던 1865년부터 파리 살롱에 여러번 입선했으며, 1867년 《양산을 쓴 리즈》로 비평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벌써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니,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 보다는 훨씬 빠르게 성공하였고,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손자들까지 화가 또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였으니 정말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사실 르누..

치열함 대신 자유를 택한 인상주의 후원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인상주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의 정통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여, 인상주의가 자리잡는데 많은 공헌을 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상당한 수입과 부모의 유산으로,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유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래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입니다. 인상주의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대적입니다. 사진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그림을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몸이 반으로 잘린 크로핑(cropp..

파리는 몰랐던 푸른 빛의 거장: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분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발음하기도 힘든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는 덴마크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원래 크뢰위에르는 그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아래《호른베크의 아침. 돌아오는 어부들》와 같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러다가 덴마크의 담배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인 하인리히 히르슈프룽의 후원을 받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그림 공부를 떠나게 되고,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제작한 미술 작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의 문장에서 보신 것처럼, 크뢰위에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공부한 것도 아니고 함께 전시회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는 겁..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47점)

오랜만에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2025.11.05부터 2026.02.22까지 열리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었습니다.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사실 예매는 일찍해뒀는데 이런저런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오늘 실행에 옮겼습니다.세종문화회관 안내문과 전시도록에 따르면 총 60명의 화가의 작품 65점이 전시가 되었습니다. 이중에는 해외로 처음 나오는 작품이 25점이 있다고 하고요. 머... '2025년 하반기, "명화 중의 명화"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라고는 하는데 좀 과장섞인 문구고요. 작년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렸던 오랑주리 -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세잔, 르누아르 전,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 진행중인 국립중앙..

요절한 반인상파 프레데리크 바지유

이번엔 인상파에 가까운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정리했습니다. 제가 정리한 240명의 화가중에서 순위가 117번째입니다.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인상주의가 꽃피기 직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안타까운 화가였습니다. 의학공부를 위해 파리로 왔다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알프레드 시슬레 등과 친구가 되면서 전업 화가로 돌아섰으며,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등과 친하게 지냈던 분입니다.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어려운 인상주의자 친구들에게 그림에 필요한 재료 등을 제공하며 지원해주었고, 특히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클로드 모네와는 자신의 작업실을 제공해주기도 했죠.그가 23세에 처음 그렸던 분홍 드레스 (1864년경) 그리고 가족의 재회(1867년), 마지막 그림인 레즈 강변의 풍경(1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