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1841년~1919년,78세)는 18세기 말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어릴적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프랑스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24살이 되었던 1865년부터 파리 살롱에 여러번 입선했으며, 1867년 《양산을 쓴 리즈》로 비평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벌써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니,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 보다는 훨씬 빠르게 성공하였고,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손자들까지 화가 또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였으니 정말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르누아르는 제가 미술 작품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던 시절부터 좋아했던, 제가 미술에 처음 흥미를 느끼게 한 화가입니다. 제가 처음에 봤던 그림이 어떤 건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아래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1880년에서 1886년, 두번에 걸쳐 그린 《우산》입니다.

이 그림 오른쪽편, 프릴이 많이 달린 옷을 입고 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은 1880년경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왼쪽 약간 수수한 옷차림의 여성 부분은 르누아르가 인상주의를 포기하고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회화에 빠져 섬세한 소묘를 중시하는 앵그르 스타일로 그렸습니다. 오른쪽 부분은 인물들의 윤곽이 흐릿하게 처리된 반면, 왼쪽은 윤곽이 뚜렸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 변화는 《대수욕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도 두 번에 걸쳐 그려졌는데, 오른쪽 원경의 풍경과 두명의 작은 여인들은 윤곽이 흐릿하고, 전경에 있는 세명의 여성은 경계선이 선명할 뿐만 아니라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원래 르누아르가 처음 그렸던 그림은 에콜 데 보자르 특유의 아카데미즘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샤를 글레르의 작업실에서 공부하면서 클로드 모네, 프레데리크 바지유와 알프레드 시슬레를 만나 인상주의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프레데리크 바지유와 알프레드 시슬레는 르누아르가 힘들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1860년대 말, 르누아르는 클로드 모네와 라 그루니에르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인상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래는 동일한 소재를 둘이 같이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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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그르누이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69, 66 x 81 cm, 스웨덴 국립미술관 |
《라 그르누이에르의 수영객들》, 클로드 모네, 1869년, 99.7 x 74.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아래는 르누아르가 그렸던 전형적인 인상주의 풍경화인 《그랑 불바르》입니다. 1874년에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으니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 한창 심취하던 시절의 작품이죠. 인상주의는 야외에서, 밝은 색조를 굵은 붓터치로, 그때 그때의 빛의 효과를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화풍으로, 그 결과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게 표현됩니다.

아래는 르누아르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입니다. 위 그림을 그린 다음 해에 그린 작품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당시에는 파리 외곽이었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풍차로서 주말이면 많은 파리 시민들이 갈레트 빵과 와인과 춤을 즐겼던 곳이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 인근에 방을 세들어서 몇 달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인상주의자들의 삶의 스냅 사진으로, 풍부한 형태, 부드러운 붓놀림, 그리고 깜박이는 햇빛을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나뭇잎을 통과한 햇빛을 사람들의 옷과 피부에 "얼룩덜룩"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래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이레느 카앙 당베르의 초상》입니다. 2018년, 일본 국립신미술관에서 전시되면서 "회화 사상 최고로 유명한 소녀상"라며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습니다. 이레느는 당시 8살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르누아르는 실질적으로 엄격한 의미의 인상주의는 버렸습니다. 르누아르를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중 한명으로 소개했지만, 사실 인상주의자들이 인상주의를 추구했던 기간은 겨우 10년 남짓했습니다. 평생동안 인상주의 전통을 지켜간 화가는 클로드 모네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르누아르는 자신이 평소에 존경했던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스타일로 돌아갔다가 평소에 추구하던 인물화를 그렸고, 나중에는 죽을 때까지 여성 누드에 심취했었습니다. 또 다른 인상주의 대표화가라 불리는 에드가 드가는 원래부터 야외 사생을 싫어했기도 하거니와, 완벽한 소묘를 추구하기도 했고 인상주의 전시회 중에는 다른 스타일의 화가들을 끌여들여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르누아르의 스타일 변화는 1880년대 초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떠난 여행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타일의 그림은 맨 위쪽에서 소개시켜드린 《우산》 과 《대수욕도》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후 르누아르는 전통 인상주의와는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여성의 인물은 뽀샤시하게 묘사를 하고, 배경은 흐릿한, 하지만 인상주의와는 달리 짧고 굵은 붓터치가 아닌 부드럽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선회합니다. 머... 그렇다고는 해도 대부분 이러한 그림들도 인상주의 작품이라고 표현하긴 하죠.
아래는 얼마전에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열렸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리만 컬렉션 특별전에 등장했던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입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도 오랑주리 버전이 전시되어 세가지 버전 중 두가지가 동시에 전시되어 화제가 되었었죠. (나머지 한 점은 오르세 미술관 버전으로 그때 일본에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침 일정이 맞아 세가지 버전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아주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 초부터 르누아르는 재정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했고, 유명 화가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즉, 인상주의가 처음 나올 때는 극렬한 비판을 받았지만, 벌써 10년정도만에 인상주의가 전통 화단이 아닌 일반인들 특히 새로운 신분의 컬렉터들인 부르주아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도 프랑스 정부로부터 생존 예술가들을 위한 박물관인 뤽상부르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정식으로 의로받아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르누아르가 여러점의 습작을 거쳐 두 점을 제작한 것입니다(오랑주리 버전은 사실 유화 스케치 버전입니다.)
이후 르누아르는 많은 인물화와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아래는 아내 알린 샤리고의 사촌 동생이자 아들의 보모, 그리고 때때로 모델이 되어주었던 《가브리엘 르나르와 아들 장》입니다.

이상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르누아르는 여성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것도 통통한 분위기의 여성들을 좋아했죠. 그가 좋아했던 리즈 트레오, 잔 사마리, 수잔 발라동, 그리고 아내가 된 알린 샤리고까지 거의 대부분 그런 스타일입니다.
원래부터 르누아르는 여성 누드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말년에 들어서는 거의 집착에 가까웠고, 이러한 여성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아래 그림들에서 왼쪽 위부터 젊었을 때부터 순서대로 나열한 겁니다. 제일 처음 《디아나》는 여신을 묘사한 전형적인 아카데미즘 스타일의 그림이고, 그다음 《토르소, 햇빛 효과》는 전형적인 인상주의 스타일, 그 아래 《금발의 목욕하는 여인들》부터는 르누아르 스타일로 그려진 누드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르누아르의 60대 이후의 그림들입니다.
![]() 디아나, 1866,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 토르소: 햇빛의 효과, 1875-1876, 오르세 미술관 ![]() 금발의 목욕하는 여인, 1881, 개인 소장 ![]() 풍경 속의 누드 여인, 1883, 개인 소장 |
![]() 《누워있는 누드여인》, 1906-1907, 오랑주리 미술관 ![]() 《목욕후》, 1910,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 《다리를 닦으며 앉아 있는 목욕하는 여인》, 1914, 오랑주리 ![]() 《목욕하는 여인들》, 1918, 반스 재단 ![]() 《목욕하는 여인들》, 1918-1919, 오르세 미술관 |
그런데... 미학적으로나 미술사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르누아르가 60대 이후 1919년에 78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렸던 많은 작품들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슨일인지 색감이 점점 붉어집니다. 맨 마지막에 있는 목욕하는 여인들의 경우엔 "거대한 팔과 다리, 빈약한 살결함, 모델들의 분홍빛 피부색"을 비판 받았다고 하는데, 저도 딱 그런 기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붉은 색이 강해졌을까요? 클로드 모네의 경우엔 말년에 심한 백내장에 걸려 거의 잘 안보이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만, 수련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색감 자체는 큰 변화가 없는데, 르느아르는 왜 이렇게 붉은색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된 걸까요? 나이가 들면 원래 눈의 노화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붉은 색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림 대상뿐만 아니라 물감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기 떄문에 결과적으로 (뇌의 인지에의한 결과인) 그림의 색감 자체는 변화가 없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아무튼 르누아르 말년에 관절염을 앓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당연히 존경해야겠지만, 그 결과물 자체는 그다지 정이 안가는 게 사실입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3월말 본격적으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정리하기 전까지 틀: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꽤 많이 번역되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아래는 2026년 4월 14일 현재의 상태입니다. 제가 정한 기준에 따라 언어페이지가 5개 이상인 문서는 모두 번역했고, 나머지의 경우엔 필요에 따라 추가했습니다. 즉, 아래에서 빨간색으로 남아 있느 것들은 이러한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문서들 혹은 그림에 관한 문서가 아닌 경우입니다.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