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시슬레는 인상주의 풍경화가입니다. 클로드 모네가 인물화는 별로 안그렸고 그 분야로는 그다지 성공도 못했다고 했지만, 시슬레는 정물화를 조금 남겼을 뿐 인물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슬레의 작품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 중에서 가장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분이 시슬레였습니다. 한편, 시슬레는 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을 쉽지 않아해서 거의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실 알프레드 시슬레는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렇게 글로 정리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정한 기준은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화가"이거든요. 그런데,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래의 《빌뇌브라가렌의 다리》도 언어링크 수가 9입니다. 딱 하나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준 미달이었는데, 그래도 인상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분이라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이 좋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냇물에 비친 다리와 배들 그리고 하늘의 반영이 너무나 예뻐서요. 집 스타일이 다르긴 해도, 우리나라 어느 시골 마을에 가도 쉽게 볼 수 있을 듯한 광경입니다. 이 그림은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리기 2년 전의 그림입니다. 짧은 붓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인상주의 그림과는 약간 차이가 있어도 인상주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연작 중 하나인 아래의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전혀 비슷한 점은 없는데도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요? 아마도 냇물에 비친 다리의 잔영이 비슷하다고 느껴서가 아닌가... 싶네요.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시슬레의 작품은 비슷한 풍경을 그린 《겨울의 루앙 운하》와 《루앙 운하》 입니다. 제가 앙상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제 마음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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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루앙 운하》(The Canal du Loing in Winter), 1891, 73 x 60 cm, 알제 국립미술관 | 《루앙 운하》(The Canal du Loing), 1892, 73 x 93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얼마전 다녀온 털리도 미술관 특별전에서 제가 제일 좋았다고 말씀드린 테오도르 루소의 《자작나무 아래에서, 저녁》도 분위기는 다르지만 쓸쓸한 나무들 모습이었거든요.

사실 늘어선 나무들 그림중에서 제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그림은 16세기 말 활동했던 네덜란드 화가 마인데르트 호베마(1639년~1709년)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였습니다. 이 그림은 언제 처음 봤는지는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처음 보았을 때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로 기억됩니다. 특히 2/3 이상을 차지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가 거의 없이 외목대로 뻗은 가느다란 나무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지금 보아도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이런 풍경화를 좋아했던 것은 모두 이 그림 때문인 것 같네요. ㅎㅎㅎ

마지막으로 한 작품을 더 소개 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햄프턴 코트 다리 아래》라는 작품입니다. 제가 그림 공부를 시작하면서 다리 아래쪽을 그린 이러한 구도의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자마자 저는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진 작품 표절사건(노컷뉴스)이 생각났습니다. 2014년이니까 벌써 12년전 사건이네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세월호 관련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라는 제목의 40초 길이의 TV 공익 광고를 제작하였는데,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잠실대교 장면이 어느 대학생의 졸업 작품과 유사하다는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학생에 따르면 "광고 제작사가 저작권료를 줄 테니 그 장면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해 거절했더니 똑같이 찍어서 사용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아래 왼쪽이 한 대학생 졸업작품 속 잠실대교(왼쪽)와 문체부의 세월호 치유 TV광고 속 잠실대교입니다. 소재와 구도가 비슷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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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상당히 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작권 보호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런 사건을 벌였다는 점에서요. 그때는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검색을 해보니 기사가 거의 없네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관련 법률 자문을 거쳐 문제 없다는 확인을 거쳤다고 하고, 나중에 저작권 소송을 진행했다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기사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햄프턴 코트 다리 아래》를 보면서, 만약 이 대학생이 시슬레의 그림을 보고 이런 영상을 제작한 거라면(아마도 아니었겠죠), 저작권 보호 기간은 지났으니 아무 관계가 없겠지만 창작성을 인정 받았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독창성 혹은 저작권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알프레드 시슬레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30살 정도까지는 풍족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이 파리 살롱의 문턱을 거의 넘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이후 죽을 때까지 어렵게 어렵게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높은 가격으로 팔리게 된 것은 화가가 죽은 이후였죠.
이렇게 시슬레가 생전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클로드 모네의 아류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제까지 제가 여러 미술관을 다니면서 많은 인상주의 풍경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멀리에서 보자마자 인상주의 작품이다! 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는데, 가까이 가서 명판을 읽어보기 전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명판에 쓰인 이름을 읽어도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더 많았고요.
대부분의 경우 인상주의 화가라고 하면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정도를 꼽습니다. 르누아르와 드가 작품은 독특한 화풍이 있어 쉽게 구분이 됩니다. 이분들은 풍경화보다는 인물화에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외에 꽤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 (프레데리크 바지유, 귀스타브 카유보트, 요한 용킨트, 베르트 모리조, 카미유 피사로 등)의 작품의 경우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린 풍경화라면 화풍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듧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많고, 이들이 그린 야외에서 그린 인상주의 풍경화는 많은 경우 정말 거기서 거기입니다.
알프레드 시슬레를 비롯한 더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 목록이었습니다.

아래는 현재의 상태입니다. 위키백과 언어링크 수가 5 이하인 작품 중 몇몇을 번역하지 않은 것 빼고는 모두 정리했습니다. 따로 언어링크 수가 6이하인데도 영어 위키백과 문서가 있는지 검색해 봤는데, 시슬레의 경우엔 없었습니다. 시슬레가 프랑스에서 활동했긴 하지만 영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네요. ㅎ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