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달만에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2026.03.21 ~ 07.04) 입니다. 톨레도(Toledo)는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 남쪽에 있는, 한때 스페인의 수도였던 고도입니다만, 이번 전시에 나온 톨레도 미술관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털리도(Toledo)라는 도시에 있는 털리도 미술관입니다. 저는 톨레도 미술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ㅠㅠ
이번 전시회는 털리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3만 여점의 작품중에서 약 50여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회 홍보 기사에 따르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중추를 이루는 거장들의 회화를 조망하는 전시"로 "3세기에 걸친 유럽 미술사의 장대한 서사를 총망라"한다고 하지만 너무 과장된 표현인 것 같고, 다만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의 소장품을 국내에 처음 엄선해 선보인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라고 제목을 붙인 건 정말 마음에 안듭니다. 미술 전시회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어야 할테니 제일 유명한 화가들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워야 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이 미술 전시회의 모든 홍보물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리고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가 제목에서 언급되지 않은 건 무척이나 유감스럽습니다. 또, 제목에서 언급된 렘브란트 나 프란시스코 고야가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아주 유명한 화가에는 틀림없지만, 이번에 전시된 렘브란트의 《깃털 모자를 쓴 청년》이나 프란시스코 고야의 《수레를 탄 아이들》은 대표작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작품이거든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하지만,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을 내세우지도 못하는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명백한 사례라고 보여 많이 안타깝습니다.
제일 좋았던 작품
이번 전시회에서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 쏙 들었던 작품은 테오도르 루소의 《자작나무 아래에서, 저녁》이었습니다. 테오도르 루소는 프랑스 파리 남서쪽에 있는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서 야외 사생을 추구하며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렸던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이었습니다.

다만, 이 그림은 샌디에고 미술관 특별전에서 제가 제일 좋았다고 했던 라울 뒤피의《화가의 집》처럼 전시장에서 확 눈에 띈 그림은 아닙니다. 전시회에 가기 전, 미리 어떤 그림이 있는지 조사하다가 발견하고는 묘하게 끌린다고 생각했던 그림입니다. 나무가 듬성듬성해서 숲도 아닌데 늦가을 저녁 노을에 물든 단풍이 쓸쓸하게 느껴졌고, 그 나무 아래를 말타고 지나는 사람(본당 신부)가 외롭게 느껴져서 관심이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림은 훨씬 색조가 어둡습니다.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세척을 하지 않아 때가 앉은 듯, 위의 그림보다 훨씬 어두워서 실제로 보면 실망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보고 싶었던 그림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자, 제가 제일 보고 싶었던 그림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였습니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는 18세기 귀족 문화의 우아함과 쾌락적 분위기를 담아낸 로코코(Rococo)양식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로코코 양식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방탕한 귀족 문화가 사라지면서 함께 잊혀져버렸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귀족 문화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고 끝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로코코 문화가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다시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게 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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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막잡기》(Blind Man's Bluff),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1750~1752년경, 116.8 x 91.4 cm, 오하이오주 털리도 미술관 | 《시소》(The See-Saw),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1750~1752년경, 120 x 94.5 cm,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
이번에 전시된 그림은 위 왼쪽의 《까막잡기》입니다. 오른쪽은 이 작품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아마도 동일한 사람에게 의뢰받아) 제작된, 한쌍을 이루는 그림인 《시소》입니다. (오른쪽 시소 놀이는 남녀가 몸을 섞는 것을 은유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한 쌍을 이루는 예술 작품을 펜던트 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 거실 양쪽에 걸기위해 비슷한 주제의 그림이나 조각 등을 배치한 것을 말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그림이 분홍분홍하고 주제는 아주 가볍고 남녀간의 사랑 놀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이 가장 대표적인 로코코 그림이죠. 이런 그림이다보니 프랑스 혁명 이후 사라지는게 숙명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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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엘 그레코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수련한 뒤,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페인 톨레도에서 활동했던 화가의 작품이 하필 미국 오하이오주 '털리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게 묘하게 운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림의 내용은 최후의 만찬 직후, 예수가 십자가형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왼쪽 아래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잠들어 있고, 오른쪽에는 유다와 로마 병사들이 예수를 체포하러 다가오고 있습니다. 엘 그레코의 화풍은 처음 보는 사람에겐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과장된 인물 비례, 충돌하는 듯한 색채, 일부러 혼란스럽게 처리한 공간감이 특징입니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을 이어받되 HDR 사진을 보는 듯한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엘 그레코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작품을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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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카날레토의 《베네치아 리바 델리 스키아보니의 풍경》입니다. 그림 왼쪽에 반쯤 잘려 있는 건물이 두칼레 궁전이라고 아주 유명한 관광명소입니다. 구글 스트리트뷰에 들어가면 이 그림과 거의 비슷한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유럽 귀족들은 베네치아를 포함한 이탈리아 여행이 붐이었다고 합니다. 소위 그랜드 투어(Grand Tour) 라고 불렀는데, 로마시대의 유적과 예술품을 관람하는 여행이었죠. 이 여행에서 베네치아에 들리면 반드시 위와 같은 그림을 구입해왔습니다. 이렇게 도시나 마을의 특정 장소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풍경화를 '베두타(veduta)'라고 불렀는데 카날레토는 이러한 베투타에 특화된 18세기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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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도 베네치아를 그린 그림이지만, 완전히 분위기는 다릅니다. 위 그림을 그린 110년 후에 그려진 그림으로,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작품《베네치아의 캄포 산토》입니다. 터너는 19세기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빛과 대기를 거의 추상에 가깝게 녹여내는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합니다. 말년에 베네치아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베네치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베네치아의 캄포 산토》는 그 중 하나입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베네치아 시가지가, 오른쪽에는 역사적인 수도원 부지에 새로 조성된 묘지섬 산 미켈레(캄포 산토)을 묘사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 풍경화가 많았지만, 묘지섬을 그린 작품은 아주 드물었죠. 이는 19세기 들어 베네치아가 서서히 쇠락해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화면 앞쪽에 떠다니는 부유물과 초라한 배들도 그러한 분위기를 은근히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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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와 함께, 영국 풍경화의 쌍두마차였던 존 컨스터블의 마지막 작품 《아런델의 방앗간과 성》입니다. 전경에는 방앗간이, 멀리 언덕 위로는 아런델 성이 보입니다. 두 사람은 라이벌이었습니다. 터너는 빛 속에 자연을 용해시키지만 컨스터블은 생각하는 것같이 자연을 그리고, 터너는 세부를 버리지만 컨스터블은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자연에 대한 관찰은 깊고, 더불어 근대 풍경화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소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전형적인 영국 시골 풍경이 펼쳐집니다. 구름이 흘러가며 빛이 시시각각 변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불고, 움직이는 수면 위로 햇빛이 반짝이는 순간들을 컨스터블은 누구보다 섬세하게 포착했습니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은 이처럼 다른 스타일의 풍경화를 미쳤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는 1870년경 보불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하는 동안 터너의 작품을 보았고, 이것이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유명합니다. 한편 존 컨스터블의 경우, 제가 맨위에서 소개했던 테오도르 루소 등의 바르비종 화파에게 기법이 전해졌고, 바르비종 화파는 야외 사생으로 자연을 묘사하는 기법으로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로 경쟁하고 각자의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결국 예술이라는 큰 줄기에서 볼 때 잔 물줄기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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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에 전시된 작품중 원본이 아닌 작품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이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 시대의 관제화가이자 낭만주의의 시작을 알린 앙투안장 그로의 《에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입니다. 두 작품 모두 원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일단 크기가 다릅니다. 《호라티우스의 맹세》 원본은 330 x 425 cm짜리이고, 《에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의 경우엔 521 x 784 cm로 크기가 훨씬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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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30.2 x 166.2 cm, 털리도 미술관 | 앙투안장 그로, 《에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 105x145 cm, 털리도 미술관 |
그렇다고 해서 털리도 미술관 버전들이 가짜도 아니고, 제자들 등이 그린 모작도 아닙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의 경우엔 제자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화가가 직접 그린 게 맞습니다. 다만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가 보니 동일한 작품을 새롭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서 하나의 작품이 여러가지 사본이 존재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전시회 평가
이 전시회 평가 점수는 28점입니다. 점수를 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독자적으로 위키백과 페이지를 가진 작품의 모든 언어링크 수를 더한 값입니다. 이번 50여의 작품중에서 자체 위키피디어 페이지를 가진 작품은 7점 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색칠된 부분이 자체 페이지를 가진 작품이고, 이 작품들의 lan 값 즉, 언어링크의 수를 모두 합산한 값이 28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식으로 평가해갈 예정입니다.

민, 푸른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