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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공부/화가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그린: 헨리 홀리데이

하늘이푸른오늘 2026. 8. 11. 13:14

아래는 단테 알리기에리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의 만남을 그린, 라파엘 전파 화가 헨리 홀리데이의 《단테와 베아드리체》입니다. 단테는 베이트리체를 단 두번 만났습니다. 첫번째는 단테가 9살 때의 일로, 단테보다 몇 달 어린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했습니다. 두번째는 9년뒤인 18살 때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후 베아티르체가 24살이 되던 1290년에 베아트리체가 병에 걸려 죽었고, 단테는 "어떤 여성에 대해서도 쓰인 적이 없는" 시를 쓰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베아트리체를 찬양하며 썼던 다른 시들을 모아 《새로운 삶》(La Vita Nuova)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그림은 이 《새로운 삶》에 나오는 한 장면을 그렸습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이미 각각 정략결혼한 상태였는데, 단테는 베아트리체로 향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다른 여자와의 염문을 퍼뜨렸고, 이에 우연히 만나게 되자 베아트리체(가운데 흰옷)가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Dante and Beatrice), 헨리 홀리데이, 1883년, 142.2 x 203.2 cm, 영국 리버풀 워커 미술관

사실 베아트리체를 제일 많이 묘사한 라파엘 전파 화가는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였습니다. 이름부터가 단테입니다(철자로는 동일합니다). 아버지가 이탈리아에서 망명한 학자였기 때문에 이름을 단테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래는 그중 한 작품인 《베아타 베아트릭스》(축복받은 베아트릭스라는 뜻)로, 베아트리체의 죽음의 순간을 묘사합니다. 모델은 로세티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였던 엘리자베스 시달이었습니다. 결혼한지 2년만에 죽은 엘리자베스 시달의 마지막을 베이트리체에 투영한 그림이죠.

《베아타 베아트릭스》(Beata Beatrix),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1864년–1870년경, 86.4 x 66 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아래도 로세티가 그린 《단테의 꿈》입니다. 단테가 베아트릭스의 임종을 지키는 꿈을 꾼다는 내용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단테가 지켜보고, 붉은 옷의 천사가 베아트리체에게 입맞춤을 하는 가운데 베아트릭스가 숨을 거둡니다. 좌우로 녹색옷을 입은 두 여인은 그녀 위로 천을 덮고 있습니다(이 두 시녀의 모델은 라파엘 전파의 모델 중 가장 지적이었다고 하며, 그녀 자신도 나중에 화가가 되는 마리 스파르탈리 스틸먼이었습니다).

《단테의 꿈》(Dante's Dream)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1871년, 216 x 312.4 cm, 영국 리버풀 워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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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헨리 홀리데이도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책의 삽화도 많이 그렸고 영국 각지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 등재된(독자적인 페이지가 있는) 작품은 맨 위에 말씀드린 《단테와 베아트리체》단 한 점입니다. 아래는 홀리데이의 작품중 위키백과 전체에 등록된 모든 작품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맨 위에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보이고, 그 아래 위키백과 페이지는 없는 작품 4개가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도 대단한겁니다. 이 세상에 활동했던, 그리고 지금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 중 위키백과에 등재된 화가가 몇명이나 있을까? 그러한 화가중 자신의 작품이 하나 이상 등재된 화가는 몇명 있을까? 그리고 그 작품의 언어링크 수가 10 이상인 작품이 1개 이상있는 화가는 몇명일까...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단 한점만 등재된 헨리 홀리데이도 대단한 화가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제가 대략 정리한 걸로는 200명정도 입니다) 뭐... 이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마지막으로 아래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체자레 사카지의 1903년 작품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순간을 묘사합니다(다만 9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보여서...). 정말 어떤 남자라도 반할 것 같은 베아트리체의 모습이네요. ㅎㅎ

《새로운 삶의 시작》(Incipit vita nova), 1903년, 120 x 92 cm, 체자레 사카지, 개인 소장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