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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공부/화가

영국 아카데미즘의 대표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

하늘이푸른오늘 2026. 9. 4. 12:19

속이 살짝 비치는 주황빛 드레스를 걸친 관능적인 여인이 하트 모양의 자세를 하고 소파에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뒤로는 황금빛이 녹아내린 듯한 일몰이 가득차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투명한 옷감, 놀랍도록 풍부한 색채, 완벽하게 재현된 대리석 배경이 이 그림의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영국 왕립미술원의 회장을 역임했던 프레더릭 레이턴 경의 말년 걸작 《불타는 6월》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중의 하나고요. 프레더릭 레이턴 경은 이 여인의 자세를 결정하기 힘들어서 여러점의 습작을 제작한 끝에 완성했다고 하며, 그 자신도 아주 좋아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불타는 6월》(Flaming June), 프레더릭 레이턴, 1895년, 120 x 120 cm, 푸에르토리코 폰세 미술관

그런데 이 작품에도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1930년대에 사라졌다가 30년 후에 발견되었는데, 최저 낙찰가인 미화 140달러(현재 가치로 150만원 정도)에도 판매되지 않았서 결국 카리브해 한 구석에 있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까지 팔려간 것입니다. 아카데미즘 미술을 추구했던 당시의 거장들이 거의 모두 평가가 급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전 소개시켜드린 장레옹 제롬, 알렉상드르 카바넬,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등도 똑같은 어둠의 질곡을 넘어왔죠. 하여튼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다보니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 그림을 직접 영접할 가능성이 한없이 낮다는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ㅠㅠ

프레더릭 레이턴은 다른 아카데미즘을 표방한 누드화의 대가들과 마찬가지로 누드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프레더릭 레이턴은 좀더 수줍은 모습의 여인의 누드를 많이 그렸습니다. 아래처럼요. 특히 아래 제일 왼쪽의《다글강의 크레나이아》와 같이 몸매가 살짝 드러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제가 더 좋아하는 그림은 제일 오른쪽에 있는 나우시카입니다. 아련한 슬픔에 잠겨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특히 몸매가 살짝비치는 하반신의 묘사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보는 듯합니다.

다글강의 님프 크레나이아》(Crenaia, the Nymph of the Dargle), 프레더릭 레이턴, 1880년, 75 x 25 cm, 개인 소장 프시케의 목욕》(The Bath of Psyche), 프레더릭 레이턴, 1890년, 189.2 x 62.2 cm,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나우시카》(Nausicaa), 프레더릭 레이턴, 1878년경, 144.7 x 66.9 cm, 개인 소장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아카데미즘 화가들이 누드화를 많이 그렸던 것은 시대의 변화때문이라고 보입니다. 프랑스 혁명후 1970년 제2제국까지 끝나면서 기존의 역사화의 수요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형 역사화는 왕궁의 알현실이나 연회실 같은 곳에 걸어서, 왕조의 위대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었는데, 공화정 들어서면서는 이런 그림이 거의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게다가 그 즈음에 귀족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부르주아지들은 더 이상 신화적인 그림이나 역사적 그림을 자신의 거실에 걸어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 대신 풍경화나 정물화를 더 원했습니다. 게다가 사진이 등장하고 인상주의자들이 새로운 화풍의 그림들을 그리면서 아카데미즘 화가들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우월함을 주장할 수는 있었죠. 그래도 시장의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원하는 주제를 그려야 했습니다. 제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였고요. 그가 누드화, 그리고 정반대의 소재인 자연속의 순수한 소녀들 그림처럼 양 극단의 그림을 그렸던 것은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프레더릭 레이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래는 고대 그리스의 일상을 묘사한 《실 타래 감기》입니다. 사실 이런 풍속화 혹은 인물화를 빙자한 풍경화라면 구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냥 그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의 시골 풍경으로 묘사해도 충분했겠죠. 하지만 레이턴은 아카데미즘이라는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 시대의 복장을 한 소녀들을 묘사했습니다. 

배경이야 어쨌든 색채는 아름답게 대비를 이루며, 의자 아래로 맨발을 교차하고 앉아 실타래를 들고 있는 소녀의 자연스러운 자세가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소녀들이 실감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도 너무 자연스럽고요. 사랑스러운 그림이네요.

《실타래 감기》(Winding the Skein), 프레더릭 레이턴, 1878년경, 100.3 x 161.3 cm,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프레더릭 레이턴의 10대 대표작

아래는 프레더릭 레이턴의 작품을 언어링크 순으로 정렬한 결과입니다.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은 3개뿐이 없네요. 부그로제롬과 같은 프랑스의 아카데미즘 화가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이나 이정도면 대가라고 부를만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불타는 6월》 이 1위를 차지하고 있네요. 그 아래로는 거의 역사화나 신화를 묘사한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누드화들은 별로 보이지 않네요.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프레더릭 레이턴의 상황이었습니다. 세점이 정리되어 있는 상태였네요.

아래는 제가 정리한 후의 상황입니다. 번역이 안된 작품들은 언어링크가 1이었던, 그러니까 영어 문서만 존재하는 작품들입니다. 기타 언어링크가 5 이상인데도 영어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하나도 없어서 추가된 작품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