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누드의 비너스 여신 조개 껍질 위에 고혹적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서 긴 곱슬 머리를 매만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상징인 돌고래가 이들을 이끌어 키프로스 섬에 도착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주변에 여러 천사들, 님드와 켄타우로스 등이 비너스의 도착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켄타우로스 중 두 명은 나팔고둥을 불어 그녀의 도착을 알리고 있네요.
이 작품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부그로는 이 그림과 같이 신화 속의 여성 누드화를 전문으로 그렸습니다. "부그로는 확고한 전통주의자였으며 그의 풍속화와 신화적 주제들은 이교도적이든 기독교적이든 고전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특히 여성의 나체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비너스의 자세는 "비너스 아나디오메네(Venus Anadyomene)"라고 합니다. Anadyomene는 그리스어로 "떠오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대부분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물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말하며, 특히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거나 짜는 자세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너스를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세죠. 얼마전 소개시켜드린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자세는 비슷하지만 누워있는 자세로 표현해서 파격적이었고, 그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래는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가 그린 나체의 여성 그림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하루의 네 시간" 연작입니다. 1881년부터 4년간 매년 한점씩 그렸는데, 이중에서 《새벽》과 《황혼》이 가장 매혹적이며 가장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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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Dawn), 1881년, 214.9 x 107 cm, 버밍햄 미술관 | 《낮》(Day), 1884년, 207 × 120.5 cm, 개인 소장 | 《황혼》(Dusk), 1882년, 207.5 x 108 cm, 쿠바 아바나 국립미술관 | 《밤》(Night), 1883년, 208 × 108 cm, 미국 워싱턴 D.C., 힐우드 박물관 |
그렇다고 부그로가 누드화로만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아래는 최소 7가지 종류 이상이 있는 양치기 소녀 주제의 그림들입니다. 왼쪽에 있는 샌디에고 미술관의 《어린 양치기 소녀》는 올해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미국 샌디에고 뮤지엄 특별전〉(2025.11.05(수) ~ 2026.02.22(일))에 전시되었던 작품입니다. 이러한 양치기 소녀들은 거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청소년기의 소녀를 맨발로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비슷한 주제의 그림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수집가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누드화를 멀리하고자 했던 수집가들이 좋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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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양치기 소녀》(The Young Shepherdess), 1885년, 157.5 x 72.4 cm, 미국 샌디에고 미술관 | 《양치기 소녀》(The Shepherdess), 1889년, 158.75 x 93.35 cm, 미국 오클라호마주 필브룩 미술관 |
이와는 다르지만, 부그로가 즐겨 그렸던 주제가 언니가 동생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이 그림들도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순수한 소녀들을 그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마찬가지로 누드화를 싫어했던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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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언니》(The Elder Sister), 1869년, 130.2 x 97.2 cm, 미국 휴스턴 미술관 | 《브르타뉴의 남매》(Breton Brother and Sister), 1871년, 129.2 x 89.2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누드화와 이런 전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들은 완전 상반된 느낌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저는 대중의 취향을 따라야 하고 대중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 삽니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바꾼 이유입니다."라는 부그로의 말처럼, 그저 대중이 원했던 것을 그렸을 뿐입니다.
이처럼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그림을 주로 그렸기에 부는 쌓았지만, 동료화가들과 비평가들에겐 좋은 소리를 못들었습니다. 에드가 드가와 그의 동료들은 "매끄럽고 인위적인 표면", 즉 핥은 듯한 마무리에 의존하는 예술 스타일을 "부그로풍(Bouguereauté)"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는 모호한 분홍빛 님프들을 대량 생산했고, 때로는 그것들에 옷을 입혀 성녀이나 성모로 둔갑시켜 묘사했으며, 전시회를 압도하는 큰 규모로 그려 그만큼 대가를 받았다. 나는 부그로의 누드가 검은 호두나무 세대 뉴욕 증권 중개인의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미리 준비된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년까지도 일주일에 6일 동안 새벽에 일어나 밤이 올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에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죠.
"매일 나는 기쁨에 가득 차 화실로 갑니다. 어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하는 저녁이 되면 다음 날 아침이 오기를 참을 수 없이 기다립니다... 나의 소중한 그림에 전념할 수 없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그림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가 23세에 그린 데뷔작《죽음 앞의 평등》입니다 . 옆으로 긴 캔버스에 검은 날개를 한 죽음의 천사가 벌거벗은 채 죽어있는 젊은 남자의 몸 위로 수의를 덮고 있습니다. 배경은 황량한 들판으로 이제 막 해가 진 듯 황혼이 드리고 있습니다. 사회 초년병이라 할 수 있는 나이에 죽음을 묘사해서 파리 살롱에 데뷔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부그로는 살아 생전 인기가 많은 작가였지만, 알렉상드르 카바넬. 장 레옹 제롬과 같은 다른 아카데미즘 화가들처럼 19세기 말 20세기 초가 되면서 평가가 급락했다가 20세기 후반이 되어서 다시 인기를 회복했습니다. 그래도 행복하셨겠네요. 자신의 죽음 이후를 알 수 있지 않다면요.
이상입니다.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10대 대표작
아래는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작품을 언어링크가 많은 순으로 정리한 표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비너스의 탄생》이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사실 제일 위와 마지막에 소개시켜드린 《죽음 앞의 평등》은 이 목록에 포함되지도 않았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느낌이 왔던 작품이라서 소개시켜드린 것 뿐입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대표작 10점은 모두 언어링크 수가 10개 이상씩이네요. 제 기준으로 엄청난 화가분입니다. 이런 분이 사실 3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중에 한번 화가들 순위도 정리해봐야겠네요. ㅎㅎ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상태였습니다. 다른 화가분에 비하면 정리된 문서가 많은 편입니다. 저도 한 두개 정리했던 기억도 있고요.

아래는 제가 정리한 결과입니다. 언어링크 수가 1~2인 경우에만 생략하였고, 빨간 네모 박스는 언어링크 수가 5 이상인데도 영어 위키백과에는 없어서 프랑스 판을 참고로 생성한 경우입니다. 또한 《밤》과 《낮》은 《새벽》과 《황혼》의 연작이어서 추가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