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2025.11.05부터 2026.02.22까지 열리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었습니다.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사실 예매는 일찍해뒀는데 이런저런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오늘 실행에 옮겼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안내문과 전시도록에 따르면 총 60명의 화가의 작품 65점이 전시가 되었습니다. 이중에는 해외로 처음 나오는 작품이 25점이 있다고 하고요. 머... '2025년 하반기, "명화 중의 명화"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라고는 하는데 좀 과장섞인 문구고요. 작년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렸던 오랑주리 -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세잔, 르누아르 전,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올 3월까지 진행중인 국립중앙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과 경쟁중이라 사실 어떤 전시회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겠죠. (물론 저는 세군데 모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다른 전시회에 비해 해당 미술관의 유명한 작품이 많이 전시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긴 합니다.
좋았던 작품
저와 안주인이 가장 좋았던 작품은 라울 뒤피(Raoul Dufy)의 《화가의 집》(The house of the artist)이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빨간색 지붕과 하늘색의 대비가 눈에 띄며 옆의 그림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안주인님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샤갈의 색감이 느껴진다고 했고, 저는 반 고흐의 생생한 느낌이 난다고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 봐도 고희의 붓터치나 색감과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네요) 사실 이 작품은 제가 꼭 봐야 한다는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은 작품이었고, 전시회에 가기전에는 이 화가도 몰랐었습니다. 전혀 기대를 안했는데 보물을 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위키피디아에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Wikimedia 에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샌디에이고 미술관으로 검색했을 때도 나타나지 않았고요. 전시 도록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총 65점 중 61번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림에 대한 기본 정보외에는 아무 해설도 없습니다. "예술은 주관"이 가슴에 닿네요.
다음은 제가 원래 제일 보고 싶어했던 그림입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어린 양치기 소녀》입니다. 소녀의 오른쪽으로 양이 몇 마리 보이네요. 이 작품은 1885년 작품입니다. 1886년에 마지막이자 제8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있었으니, 프랑스 미술계에 인상주의가 확실히 자리잡아가던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이분은 파리살롱 중심의 아카데미즘 양식의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은 바르비종 화파에서 추구하였던 사실주의적 풍경화가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위한, 순수하고 목가적이고 이상화시킨 인물과 자연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에 유행했던 장르였고, 부그로도 잘 팔리는 작가였습니다만, 몇 년 뒤 인상주의가 주류가 되자 구시대의 인물로 폄하되었죠. 1980년대 재평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분이 그린 수백점의 그림이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해도, 저는 이 분 작품 좋아합니다. 아름답잖습니까? 그림이 아름다워야지...라고 생각하는게 초보자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뭘 그렸는지 이해하려고 힘쓰는 건 사절입니다.
세번째 작품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1630년대 그림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반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스페인에서 종교화를 그리던 분이었습니다. 사실 한해 뒤에 태어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명성이 워낙 높은지라,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였고 이 분은 주로 수도원을 돌며 종교화를 그리던 분이니까 맞부딛칠 일은 많지 않았을 것 같지만요.

하느님의 어린 양은 요한복음 1:29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칭호입니다. 즉,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입니다.《하느님의 어린 양》은 여러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몇가지 버전이 소개되어 있는데, 대부분 후광이 없어서 정물화와 종교화의 성격이 모두 있는데, 샌디에이고 버전은 그림에는 잘 안보이지만 아래쪽에 "TANQUAM AGNUS"('어린 양처럼)이라는 비문까지 있어서 종교화의 특성이 확실한 두 가지 버전 중 하나입니다.
네번째는 엘 그레코의 《성 베드로의 눈물》입니다.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지나고 라파엘로를 극복하고자 했던 매너리즘의 화가입니다. 마치 HDR 사진을 보는 듯한 특이한 색감, 그리고 길쭉길쭉한 신체 비율이 특징입니다. 이 분도 반 종교개혁의 선봉이었던 스페인에서 활동하였지만, 이분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깡그리 잊혀졌습니다. 300년 이상 흐른 뒤, 그림이 현실의 재현을 벗어난 근대 미술시대에 재평가받았고 피카소, 마티스 같은 분들이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의 그림은 지금봐도 독특한 색감이 느껴집니다. 모든 작품이 그렇죠.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둡고, 밝은 부분은 더 밝게 처리를 하여 마치 번쩍이는 느낌이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미술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작년 5월, 스페인으로 여행갔을 때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됩니다. ㅎ
전시회 평가
이번 전시회 평가 점수는 47점입니다. 점수를 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독자적으로 위키백과 페이지를 가진 작품의 모든 언어링크 수를 더한 값입니다. 이번 65개의 작품중에서 위키미디어 항목에 있는 작품은 48점인데, 이중에서 자체 위키피디어 페이지를 가진 작품은 10점 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색칠된 부분이 자체 페이지를 가진 작품이고, 이 작품들의 lan 값 즉, 언어링크의 수를 모두 합산한 값이 47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식으로 평가해갈 예정입니다.

아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에서 보유중인 작품을 유명한 순으로 (위키백과 언어링크가 많은 순으로) 정리한 겁니다. 가운데 있는 "lan"열이 언어링크 수 입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은 총 14가지 언어로 페이지가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맨 오른쪽에 전시라고 되어 있는 항목은 전시도록에 나온 번호입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어린 양치기 소녀》의 경우 전시도록 56번 항목, 즉 이번 전시회에 포함된 작품이란 뜻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포함된 작품은 색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가장 유명한 작품 13점 중에서 이번 전시회에 포함된 작품이 8점이나 포함되었습니다. 이 정도를 빼왔으면 샌디에이고 미술관엔 뭐가 전시되고 있을까... 싶을 정도네요. ㅎㅎ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중인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회에 비하면 이 전시회가 더 알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자체의 위상은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훨씬 높지만(좋은 작품이 훨씬 많지만), 이번에 전시된 작품만 따지면 세종문화회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전시회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있는 괜찮은 작품을 많이 가져왔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 샌디에이고 특별전이 도쿄와 쿄토를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들어온 거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전시회에도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관람하는 건 사실인데, 일본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저도 몇번 가봤는데... 거의 앞뒤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가득찬 걸 여러 번 봤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자금 문제때문에 우리나라엔 좋은 작품들이 들어올 기회가 적은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많이 아쉽죠.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세계적인 명작이 우리나라에 전시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