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소박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앙리 루소 위키백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결과는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소박파 는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독학한 화가들을 말하며, 특히 그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과 솔직함이 특징입니다. 르네상스 이래로 정식 아카데믹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근법이었는데,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래는 앙리 루소의 1895년 작 《바위 위의 소년》입니다. 초상화인 것 같기는 한데, 바위위에 앉은 건지 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신체 비율도 이상하고, 신체 비율로 보면 어린아기 같기는 한데 얼굴을 보면 어른 같고... 등등 어디로 봐도 잘 그렸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딘가 그리다만, 혹은 이리저리 연습하다가 팽겨쳐둔 습작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앙리 루소가 1890년, 《나 자신, 초상-풍경》을 《앙데팡당전》 (독립 예술가 협회 전)에 전시한 후 5년 이상 지난 시점의 작품입니다. 아무리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 세금 징수원이라는 뜻의 "르 두아니에 루소"(세관원 루소)라는 이름으로 불렸기는 했어도, 아무리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도, 연습만 충분히 했다면 이것보다는 잘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에서도 심하게 조롱 및 멸시를 당했죠.

사실 저는 이 그림이 화풍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봅니다. 오른쪽은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과학과 자선》이라는 작품입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을 비롯한 피카소의 대표작들이 뭔가 마구 찟어 붙인 듯 해도, 이렇게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분이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전통적인 회화스타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청색시대, 입체파 등 여러가지 실험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할 수 있었죠.
피카소와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해도, 앙리 루소는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냥 그림을 못그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 루소는 멸시와 조롱속에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이 되었고, 결국 그가 죽고 난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피카소 등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도 (특히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그림을 못그린 건 확실합니다.
앙리 루소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정글 연작》으로, 그는 평생 30점 이상의 정글 관련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일 처음 알려진 정글 그림은 아래의 《열대 폭풍 속의 호랑이》였습니다. 1891년 작인데 평생 그렸던 정글 연작의 특성이 이 그림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뭔가 묘사가 엉성한 듯하고 원근감은 전혀 안느껴지고, 특히 여러가지 색을 사용해 나뭇잎들을 엄청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죠.

그러나 이 그림을 앙데팡단전에 《놀람(Surpris!)》 란 제목으로 처음 전시했을 때 대부분의 평론가, 동료 화가들이 비웃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0년 넘게 정글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1904년부터 세상을 떠난 1910년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아래는 그 중 몇 점을 선택한 겁니다. 여전히 뭔가 어색하고... 색칠이 오래 전 솜이불에 놓인 수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만 아름다운 건 사실입니다. 보면 볼 수록 뭔까 끌려들어가는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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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1905, 바이엘러 재단 | 《플라밍고》, 1907, 개인 소장 | 《꿈》, 1910, 뉴욕 근대 미술관 |
그런데, 인간적으로는 별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앙리 러셀은 주변 사람들에게 1860년 멕시코에서 군악대원으로 복무하던 시절 정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그는 한번도 정글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에 나가 본 적도 한번 도 없었죠. 정글 그림들은 모두 파리 식물원이나 동물 박제를 참고해서 그린 것입니다.
아래는 제일 초기작인 《나 자신, 초상-풍경》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제목에 "초상-풍경"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이는 앙리 루소가 자신이 "초상 풍경화(Portrait-paysage)" - 즉 "인물과 관련된 특정 장소를 마치 인물의 얼굴을 그리듯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했다는 주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뭐... 이런 주장이야 할 수는 있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해주느냐가 문제일 뿐.
그런데 이 그림 중 앙리 루소의 양복 단추 구멍에 파란색 동그라미 모양의 "학술훈장" 휘장을 그려넣었는데, 사실 앙리 루소는 이 훈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동명 이인이 받았는데 자기가 받은 것처럼 꾸민 겁니다.

또 한가지 에피소드. 앙리 루소가 현재 이렇게 유명하게 된 데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역할이 컸습니다. 피카소가 우연히 길을 가다가 덧칠용 캔버스로 팔리고 있던 루소의 그림에 반해서 그를 찾아 갔고, 그를 초대해서 "루소의 파티"를 열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루소는 자신과 피카소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두 화가라네. 자네는 이집트 양식으로, 나는 현대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자의식 과잉인거죠. 어쨌든 이후 피카소가 유명해지면서, 피카소가 루소의 작품 몇점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정도로 루소를 좋아하다보니 루소의 유명세가 올라간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요.
이런 몇가지 에피소드로 앙리 루소를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되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력은 떨어지면서도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본인은 전혀 죄의식도 느끼지 않은... 사실은 그런 성격 때문에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고, 생활비 걱정할 정도로 힘들었으면서도 꾸준히 화가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앙리 루소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입니다. 고요한 사막의 밤에 사자 한마리가 잠들어 있는 집시의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정말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초현실적인, 한번 보면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그림입니다. 이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실력에 관계없이 앙리 루소는 이후 현대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카소나 앙리 마티스 같은 위대한 화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소박파로 붙류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소박파의 어린아이같은 단순한 그림에 이끌려 이런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많은 화가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을 원시주의나 의사 소박파( pseudo-naïve art) 등으로 부릅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에 틀:앙리 루소를 캡처한 화면입니다.

아래는 제가 정리를 끝낸 결과입니다. 위에서 빨간 색으로 표시된 3개의 문서를 번역하고, 추가로 아래 빨간색 박스로 표시한 4개의 문서를 프랑스어 위키에서 가져와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 기준은 여기를 보시면 되는데, 간단히 틀:앙리 루소의 영문판에 포함된 모든 문서를 번역하고, 루소의 작품을 모두 검색해서 언어링크가 6개 이상인 문서들만 추가로 프랑스어 페이지에서 가져와 번역한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