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와 함께하는 그림 명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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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자르기 달인 - 모더니즘의 아버지 : 에두아르 마네

에두아르 마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분입니다. 물론 어떤 분을 한마디로 재단한다는 게 말이 안되긴 하지만요. 사실 저는 이 분을 싫어했었습니다. 인상주의를 만들다시피 한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또한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풀밭 위의 점심식사》나 《올랭피아》가 미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그다지... 별로... 라는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마네에 대한 글을 좀 더 읽어보고, 작품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나서야, 에두아르 마네를 왜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에두아르 마네는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판사였고 어머니는 스웨..

인상주의를 거부한 인상주의자: 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는 전형적인 인상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클로드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자는 주로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드가 드가는 야외 사생을 기피하고 주로 실내 풍경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드가 드가는 사실주의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도 사실주의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화가입니다.드가도 당대의 다른 화가들처럼 신고전주의 - 낭만주의 - 사실주의에 이르는 전통적인 미술을 추구하였습니다. 아래는 당시 이탈리아에 살고있던 이모네 가족을 그린 가족 초상화인 《벨렐리 가족》입니다. 이 그림은 내용상 심리적으로 깊이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와는 달리 오른쪽에 있는 이모부가 왼쪽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

알프레드 시슬레는 인상주의 풍경화가입니다. 클로드 모네가 인물화는 별로 안그렸고 그 분야로는 그다지 성공도 못했다고 했지만, 시슬레는 정물화를 조금 남겼을 뿐 인물화는 전혀 그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슬레의 작품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 중에서 가장 풍경화에 진심이었던 분이 시슬레였습니다. 한편, 시슬레는 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을 쉽지 않아해서 거의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사실 알프레드 시슬레는 제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렇게 글로 정리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정한 기준은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가 10개 이상인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화가"이거든요. 그런데,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중 가..

죽음의 순간조차 빛을 쫓았던 집념의 화가: 클로드 모네

클로드 모네는 가장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사실상 인상주의를 개척했다는 의미에서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고, 평생 인상주의 철학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제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한 화가였습니다.클로드 모네는 18살이던 1858년에 풍경화, 특히 해양 풍경화를 그리던 외젠 부댕(당시 33세)을 만나 야외 사생을 배웠습니다. 함께 그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래가 그 당시 그린 《루엘에서 본 풍경》입니다. 깔끔한 풍경화네요. 그외에도 정물화도 그렸는데 그다지 많은 칭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클로드 모네는 정통 아카데미즘 교육을 싫어하고, 이론에서 벗어나 "나는 새가 노래하듯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식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는 않았지만(혹은 못했지만), 아카데미 쉬즈, 샤를..

위키 백과로 알아본 위대한 화가 200인

얼마전, '위키백과 데이터로 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서양화 200선"'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위키백과에서 언어링크 수가 높을수록 유명한 그림이라는 가정하에 1위부터 200위를 뽑아본 것이었습니다.마찬가지로 화가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표에서 1위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239개 의 언어로 별도의 페이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이 숫자 자체는 계속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고 상대적인 순위만 확인하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제가 맨 처음 미술 공부를 시작했을 때 바로 이런 내용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작가들이 있고, 작가들마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어떤 작가나 작품을 빠뜨리면 안될지를 알고 싶었..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28점)

두달만에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2026.03.21 ~ 07.04) 입니다. 톨레도(Toledo)는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 남쪽에 있는, 한때 스페인의 수도였던 고도입니다만, 이번 전시에 나온 톨레도 미술관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털리도(Toledo)라는 도시에 있는 털리도 미술관입니다. 저는 톨레도 미술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ㅠㅠ이번 전시회는 털리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3만 여점의 작품중에서 약 50여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회 홍보 기사에 따르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중추를 이루는 거장들의 회화를 조망하는 전시"로 "3세기에 걸친 유럽 미술사의 장대한 서사를 총망라"한다고 하지만 너무 과장된 표현인 것 같고..

빛과 행복의 화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년~1919년,78세)는 18세기 말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어릴적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프랑스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24살이 되었던 1865년부터 파리 살롱에 여러번 입선했으며, 1867년 《양산을 쓴 리즈》로 비평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벌써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니,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 보다는 훨씬 빠르게 성공하였고,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손자들까지 화가 또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였으니 정말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사실 르누..

페미니스트? 치열함이 부족했던 여류화가: 메리 카사트

메리 카사트(Mary Cassartt, 1844년~1926년)은 프랑스 인상주의자 화가였습니다.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살 때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당찬 여성입니다. 그렇지만 카사트는 베르트 모리조 등의 여성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1986년 타마르 가브의 《여성 인상주의자》가 출판되기 전까지 인상주의 작가들을 다루는 미술사 교과서에서 대부분 누락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술사 관련 서적중 가장 유명한 교양 서적이라 할 수 있는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초판에는 여성 화가들이 한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16판에 겨우 한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라도 메리 카사트가 결혼도 하지 않고 독립적인 화가로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환경..

위키백과 데이터로 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서양화 200선"

얼마전에 "어떤 작품이 명화인가? 꼭 봐야 할 그림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간단히 요약해서, 제가 생각하는 "명화"란, "위키백과에서 많은 언어로 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즉, 어떤 작품의 위키백과(또는 wikipedia 등)에 들어 갔을 때(예를 들어 아래는 한번쯤 보셨을 피에트 몬드리안 작가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입니다) 오른쪽위에 나타난 언어수가 많을 수록 명화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뜻입니다.이러한 기준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제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이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사실 이 기준에 따라 정리하다보면 영 아니다 싶은 작품이 높은 값을 가진 경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

치열함 대신 자유를 택한 인상주의 후원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인상주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의 정통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여, 인상주의가 자리잡는데 많은 공헌을 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상당한 수입과 부모의 유산으로,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유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래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입니다. 인상주의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대적입니다. 사진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그림을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몸이 반으로 잘린 크로핑(cro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