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카메라2011. 11. 24. 11:52
독일 광학회사인 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 AG)는 라이카(Leica) 카메라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전신인 에른스트 라이츠(Ernst Leitz GmbH)는 현재 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 AG), 라이카 지오시스템즈(Leica Geosystems AG), 라이카 마이크로시스템즈( Leica Microsystems AG) 등 3개사로 분사되었는데, 각각 카메라, 측량기기, 현미경을 생산한다. 이중 라이카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모회사로서, 라이카 카메라 및 라이카 지오시스템즈에 저작권을 제공하고 있다.

라이카 카메라의 역사(History)


이차세계대전 이전(Before WWII)


1913년, 독일 베츨라(Wetzlar)에 위치한 에른스트 라이츠 광학(Ernst Leitz Optische Werke)에 근무하던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은 최초의 라이카 원형을 제작하였다. 이 카메라는 원래 풍경사진 (특히 등산시)을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를 개발하고자는 목적이었는데, 영화용 표준 35mm 필름을 사용한 최초의 실질적인 35mm 카메라였다. 영화용 카메라는 필름을 수직방향으로 배송하여 프레임 크기가 18x24mm 이지만, 라이카 카메라는 수평방향으로 배송하여 프레임의 크기를 24x36mm (비율 2:3)로 확장시켰다. 

Ur-Leica ("original Leica"), from 1914

라이카는 여러가지 실험을 거친후, 1923년 바르낙이 사장인 에른스트 라이츠 2세를 설득하여, 공장내부 테스트 및 외부 사진사의 테스트를 위하여 31대의 양산전 원형(pre-production prototype)을 생산하였다. 이 원형에 대해 평판은 여러가지로 갈렸지만, 1924년 에른스트 라이츠는 판매용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카메라는 1925년 라이프치히 봄 박람회(Leipzig Spring Fair)에서 Leica I (LEItz CAmera)란 이름으로 출품하여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20초 ~ 1/500초를 지원하는 포칼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를 장착하였고, 노출시간 조정 다이얼에는 Zeit(시간)을 의미하는 Z가 표기되어 있었다.

Ur-Leica replica, on display at Vevey photography museum
Reproduction of the Leica Prototype, 1913, 1:3,5

Leica I

라이카에 대한 바르낙(Barnack)의 개념은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은 음화(negative)를 촬영한 후, 확대로 큰 사진을 만드는 것("작은 음화, 큰 사진(small negative, large picture)" 개념)으로, 선명한 음화를 얻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렌즈가 필요했다. 바르낙은 초기 원형 카메라에 자이스 테사르(Zeiss Tessar)를 시험해 봤으나, 테사르는 18x24mm 영화포맷용으로 설계되어, 라이카의 24x36mm 음화용으로는 부적당하였다. 라이츠 수마르(Leitz Summar) 렌즈도 테스트해 보았지만, 바르낙이 염두에 둔 해상도를 얻기 위해서는 특별히 설계된 렌즈가 필요하였다.

최초의 라이카 렌즈는 1893년 라이카의 맥스 베렉(Max Berek) 교수가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에 기반하여 수정한 50mm f/3.5 렌즈였다. 이 렌즈는 5매/3군 렌즈로서 3번째 그룹은 세개의 렌즈를 접착한 것으로 처음에는 라이츠 아나스티그마트(Leitz Anastigmat, 비점수차 보정 렌즈)라고 불리었다. 다른 삼중렌즈와는 달리 라이츠 아나스트그마트는 조리개가 첫번째와 두번째 그룹 사이에 위치했다. 라이카가 발매될 때 이 렌즈의 이름이 ELMAX(E Leitz and MAX Berek)으로 개칭되었다. 1925년 라이츠 연구소에서는 광학성질이 향상된 유리를 생산하자, 베렉 교수는 ELMAX를 개량하여 ELMAR라는 4매/3군 렌즈를 개발하였다. ELMAR의 3번째 그룹은 2개의 렌즈를 접착한 것으로, 제작하기가 쉬워 생산비용도 절감되었다. 베렉 교수는 헥토르(Hektor)와 렉스(Rex)라는 두 마리의 개가 있었다. 첫번째 개의 이름은 Hektor는 라이카 렌즈 시리즈에 사용되었고, 두번째 개의 이름은 수마렉스(SummaREX)에 사용되었다.

1930년에 직경 39mm 나사식 마운트(screw thread)에 기반한 렌즈교환형인 Leica I Schraubgewinde 가 출시되었다. 이 마운트를 일반적으로 "라이카 쓰레드 마운트(Leica Thread Mount)" 혹은 LTM 이라고 한다. 50mm 표준렌즈외에도 35mm 광각 및 135mm 망원렌즈도 제공되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전설적인 연초점(soft-focus)렌즈인 Thambar 90mm f2.2 가 설계되었고, 1935년부터 1949년까지 3000 개 이하의 적은 수만 생산되었다. 현재 이 렌즈는 수집가들이 열망하는 희귀 아이템이다.

1932년에는 거리계(rangefinder)를 렌즈초점조절장치와 결합시킨 Leica II가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별도의 뷰파인더(작은 영상을 보여줌)와 거리계를 가지고 있었다. 1932년에는 플렌지(flange)와 필름면과의 거리가 28.8mm 로 표준화되었는데, Leica 모델 C에서 최초로 적용된 후, 다음해 Leica Standard 이후로 계속하여 적용되었다.

Leica III 에는 저속셔터(1초)가 추가되었으며, IIIa에는 1/1000 초가 추가되었다. IIIa는 바르낙 생전의 마지막모델로, 바르낙이 전적으로 책임진 마지막 모델이다. 라이츠는 1957년까지 원래 모델을 계속 수정해나갔다. 마지막 버전인 IIIg에는 여러개의 프레임 선들이 새겨진 커다란 뷰파인더가 포함되었다. 이들 모델은 모두 원형 다이얼과 사각 윈도의 기능적 조합이었다.

스크류 마운트 중 거의 마지막 모델인 Leica IIIf (1950), 렌즈는 50mm/f1.5 Summarit

초기의 Leica 카메라에는 1945년 5월전 독일 특허를 의미하는 D.R.P. (Deutsches Reichspatent)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아마도 1923년 11월 3일에 베츨라(Wetzlar)의 에른스트 라이츠 광학(Ernst Leitz, Optische)에 부여된 독일 특허  No. 384071 "Rollfilmkamera"를 참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차세계대전 이후(After WWII)


전쟁 후에도 라이츠에서는 1950년대까지 최신 Leica II와 Leica III 모델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1954년 라이츠에서는 새롭게 바요넷(bayonet)형 렌즈 마운트인 라이카 M 마운트와 함께 라이카(Leica) M3를 발표하였다. 새로운 카메라는 또한 거리계(rangefinder)와 뷰파인더를, 가운데에 밝은 이중상이 있는 하나의 밝고 큰 뷰파인더로 결합하였다. 이 시스템은 또한 시차 보정(parallax compensation) 시스템도 도입하였다. 아울러, 새로이 고무처리한 안정적인 포컬플레인 셔터(focal-plane shutter)가 장착되어 있었다. 라이카 M은 계속 개선되었다. 최신 버전은 M7 과 MP로서 둘다 28, 35, 50, 75, 90, and 135 mm 렌즈를 위한 프레임이 있는데, 다른 렌즈를 끼우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Leica MP(2003)와 M3(1954)

전후 모델에는 DRP 대신 Deutsches Bundespatent (연방독일특허, Federal German Patent)를 의미하는 DBP가 새겨져 있다. 수많은 카메라 회사들이 라이카 거리연동계 카메라를 기반으로한 모델을 제작하였다. Leotax, Nicca, Canon 초기모델, 미국 Kardon, 영국 Reid, 소련의 FED 및 Zorki 등이 그러한 예이다.

Factory Upgrades


라이츠에서는 초기모델 카메라에 대해 적어도 1950년대 중반까지 factory upgrade(공장으로 보내어 기능을 개선)를 제공하였다. 많은 카메라들이 공장으로 보내져 최신 모델의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렇게 개조된 카메라에는 원 카메라의 시리얼 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일안반사식 카메라(Single-lens reflex cameras)


1964년부터 라이카에서는 일안반사식 카메라를 생산하였다. 라이카플렉스(Leicaflex)를 시작으로 Leicaflex SL와 Leicaflex SL2 가 뒤를 이었고, 그후 미놀타(Minolta)와 협력하여 R3로부터 R7까지 R 시리즈를 생산하였다. Leica R8은 다시 라이카에서 완전히 설계하고 제작하였다. 현재 모델은 Leica R9으로, 디지털 모듈 백(Digital Module back)을 장착할 수 있다. 라이카는 자동노출(auto-exposure)모델 생산에는 늦었으며, 자동초점을 지원하는 R 시리즈는 생산하지 않았다. 라이카 미국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2009년 3월 25일, R시리즈 생산을 중단한다고 고지하였다. 그 이유는 "새로운 카메라 개발이 Leica R 카메라와 렌즈 생산에 영향을 미쳐, 판매량이 급감했다. 따라서 슬프게도 더이상 라이카 생산체계에서 Leica R-시스템을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사라졌다."

좌 : The Leica R4 (1980) 80, 90년대의 라이카 SLR의 대표적 모습
우 : The Leica SL2 MOT (1974) Leicaflex 의 최고전성기

개념적으로 라이카 비조플렉스(Leica Visoflex)는 거리계연동(rangefinder)와 SLR을 연결해준 시스템이었다. 비조플렉스는 Leica 거리계연동 카메라의 렌즈마운트(스크류 마운트와 M시리즈 각각 별도의 버전)에 장착하여, 이 시스템용으로 만들어진 렌즈를 붙일 수 있는 거울 반사통(mirror reflex box)이었다. 초점은 카메라에 달려있던 거리계가 아니라, 간유리 초점스크린(groundglass screen)을 이용해 설정했으며, 연결장치를 통해 거울과 셔터를 동시에 눌러 촬영하였다. 카메라 거리계는 원래 초점거리가 긴 렌즈에 대해 거리를 정확하게 맞출 수 없었으나, 비조플렉스는 훨씬 초점이 긴 렌즈도 사용할 수 있었다.

The Leica Visoflex II (1960)

라이츠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광학적 발명을 이루었다. 비구면 렌즈, 멀티코팅렌즈, 희토류 렌즈 등이 그 예이다. 라이카 광학은 최대구경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여, 자연광 사진에 잘 어울린다고 선전하였다.

최초의 라이카 반사식 케이스는 1935년 200mm f/4.5 Telyt 렌즈와 함께 출시된 PLOOT이었다. (이 제품을 SLR로 볼 수 있다면 라이카가 최초의 SLR을 생산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964년 라이카플렉스(Leicaflex)가 나올 때까지, PLOOT 와 Visoflex는 SLR에 대한 라이카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1951년 PLOOT를 개조한 Visoflex I 이 출시되었다. 1960년에는 이보다 훨씬 소형화된 Visoflex II 가 나왔다. 비조플렉스 II는 LTM(스크류마운트)와 M-바요넷을 동시에 지원한 유일한 Visoflex 버전이있다. 1964 년에는 즉시반환거울이 탑재된 Visoflex III가 출시되었다. Visoflex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라이카 렌즈로는 65, 180 (희귀함), 200, 280, 400, 560, 800mm 등이 있었다. 아울러 여러가지 거기계연동 카메라용 렌즈들도 어댑터를 사용하면 Visoflex에 장착할 수 있었다. Visoflex는 1984년 단종되었다.

Leica의 SLR에 대한 대응: Leica IIIf (65mm f/3.5 Elmarit)에 Visoflex II

라이카에서는 다양한 악세서리를 제공하였다. 예를 들어 어댑터를 사용하면 LTM(스크류마운트) 렌즈를 M 카메라에 쉽게 장착할 수 있다. 비슷하게 Visoflex 렌즈도 어댑터를 사용하여 Leicaflex와 R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LTM 및 M 거리계연동 렌즈의 경우, 라이카플렉스나 R 카메라는 물론이고, 일부 광학부를 제거하고 어댑터를 끼우면 Visoflex에 장착할 수 있어, SLR 렌즈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회사 구조변경(Company changes)


라이츠(Leitz)는 1986년, 유명해진 라이카 브랜드를 감안하여 사명을 라이카(Leica)로 변경하였다. 이때 라이카는 회사를 베츨라(Wetzlar)에서 인근의 솔름(Solms)로 이전하였다. 1996년에는 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가 라이카 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공개회사가 되었다. 1998년에는 라이카그룹이 라이카 마이크로시스템즈(Leica Microsystems)와 라이카 지오시스템(Leica Geosystems)으로 분리되었다. 

라이카 카메라의 활용(Use)


라이카 카메라는 특히 거리사진과 관계가 깊다. 그중에서도 20세기 중반에서 말까지, 예를 들어 유명 사진작가인 Cartier-Bresson 의 경우 라이카를 애용하였다.

Henri Cartier-Bresson 의 최초의 라이카

라이카 카메라, 렌즈, 악세서리, 판매용 인쇄물 등은 모두 수집품이다. 현재 수십종의 라이카 책과 수집가 가이드가 나와 있는데, 그중에서도 James L. Lager 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역사를 표현한 3권짜리 책(Leica An Illustrated History)이 가장 유명하다. 초기의 카메라나 희귀한 카메라아 악세서리는 시장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팔린다. 군용 표식이 달린 라이카 카메라는 매우 프리미엄이 높다. 가짜 표시를 한 소련산 개조 복제품 시장도 있다고 한다.

라이카와 파나소닉(Leica and Panasonic)


라이카 브랜드의 렌즈가 현재 여러 파나소닉 디지털 카메라(Lumix)와 비디오 카메라에 사용되고 있다. 이 렌즈들은 파나소닉에서 라이츠 품질 기준에 따라 제작되고 있다. 두 회사간의 협력은 모든 레벨에 걸쳐있다. 여러 엔지니어링 팀이 각각의 전분야에서 기여를 하고 있다. 파나소닉/라이카 모델은 디지털 카메라의 광학 영상 안정화장치(optical image stabilization)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라이카 카메라 및 렌즈 목록(List of Leica cameras and lenses)


초기 모델(Early models)

  • 라이카(Leica) I — 1925년 라이프치히 봄 박람회(Leipzig Spring Fair)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모델로, 1913년 바르낙이 개발한 Ur-Leica와 1923년의 Prototype 1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뒤를 이어 Leica Luxur 와 Leica Compur 가 시판되었다. Leica I, Luxur, Compur 모델을 모두 합하여 60,586 대가 제작되었다.) 이들을 위한 교환형 렌즈는 1930년에 처음 나왔다.
렌즈교환식 스크류마운트 바디의 라이카 35mm 시리즈:
  • 라이카 스탠다드(Leica Standard) — 1932. 필름에서 렌즈플랜지(lensflange)까지의 거리가 28.8mm로 설계된 최초의 라이카 카메라.
  • Leica II — 1932. 최초로 렌즈초점조절장치와 거리계(rangefinder)가 통합된 라이카 카메라
  • Leica III — 1933. 이 모델에서 슬로 셔터(slow shutter)가 도입됨.

라이카 IIIf 거리계연동 카메라 (Summarit 50mm f/1.5), 외장 뷰파인더


C 시리즈(똑딱이)

  • Z2X
  • C1
  • C2
  • C3
  • Leica Minilux 40mm
  • Leica Minilux Zoom
  • Leica CM 40mm
  • Leica CM Zoom

M 시리즈(거리계연동)

  • M3 — 1954년 독일 포토키나 전시회(German Photokina exhibition)에서 처음 소개된 M3는 현재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라인인 라이카 M 시리즈의 최초의 모델으로서, 바요넷 형 마운트가 채택된 최초의 라이카 바디였다. 1956년 광고에서는 "완벽한 사진에 대한 평생의 투자(lifetime investment in perfect photography)로 취급되었다. M3는 .92배의 파인더가 달려있는데, 모든 M 카메라중 가장 비쌌다. 이 이유는 35mm 렌즈에 좀더 넓은 화면이 가능하도록 뷰파인더/레인지파인더 화면 앞에 "고글(goggle)"을 끼워야 했기 때문이다. M3는 회전식 다이얼(knob) 대신 레버(lever)로 필름을 감았는데, 최초의 M3에서는 2번을 감아야 했으나, 1958년부터는 한번에 감을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초기의 M3에는 프레임선을 바꿀 수 있는 프레임 미리보기 선택 레버(frame preview selector lever)가 없었다.
  • MP — 1956–57 (총 402 세트가 제조됨). 오리지널 MP는 M3를 기반으로, 라이카비트(Leicavit) 방아쇠식 필름감기장치를 장착할 수 있었다. MP는 원래 "M Professional"이라는 뜻으로 사진기자용으로 의도된 카메라였다. 이 시리즈의 M은 원래 거리계(rangefinder)와 뷰파인더(viewfinder)를 결합한 독일어인"Meßsucher"로부터 유래되었다.

    Leicavit MP 
     
  • M2 — 1958–67 (88,000 세트). M3를 간소화한 저가형 버전인 M2는 35mm 렌즈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0.72배의 간단한 거리계(rangerfinder)가 달려 있었다. 이후 0.72배는 이후의 M 카메라의 표준 뷰파인더 배율이 되었다. M2에는 M3로부터 자동 재설정 필름 프레임 카운터가 생략되었다.
  • M1 — 1959–64 (9,392 세트). 과학용/기술용으로 M2를 간소화한 모델로, 거리계가 없는 뷰파인더 카메라였다. 1965년에 MD(뷰파인더가 없음)와 1967년 MDa(M4 기반)로 대체되었고, 1980년에는 M4-2를 기반으로한 MD-2로 최종 대체되었다.
  • M4 — 1967–75 (50,000 세트); 1974–75 (6,500 세트). 35mm 및 135mm 렌즈에 대한 거리계 프레임선을 추가. 튀어나온 되감기 크랭크(canted rewind crank)가 도입됨. (이전 M 시리즈엔 다이얼 방식이었음) M5와 함께 타이머가 장착된 최후의 M 카메라임
  • M5 — 1971–75 (31,400 세트). 통합형 TTL 측광기가 추가됨. 렌즈 뒤쪽에 위치한, 기계식 흔들리는 팔형태의 CDS 셀의 측광계를 가진 최초의 Leica 카메라. 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기존 M3 보다 바디가 커져야 했음. 렌즈 후면요소나 측광기구가 망가질 우려때문에 일부 광각렌즈(초기의 21mm f4.0 과 f3.4)는 사용할 수 없게 됨. 비슷한 이유로 M5에서는 침동식렌즈가 접어들어가지 못하였음. 이러한 제한은 Leica CL에도 적용됨. M4와 함께 타이머를 가진 최후의 M 카메라임 
  • CL — 1973–76 (Compact Leica).  Leitz-Minolta CL, 40mm Summicron-C f2 와 90mm Elmar-C f4 등 이 카메라 전용 2가지 렌즈와 함께 출시됨. M5와 비슷한 내부 측광기 - 흔들리는 막대 위에 CDS 셀. 아울러 CL은 수직주행 셔터를 가진 유일한 M-바요넷 카메라로 유명함. 미놀타는 후일 향상된 전자식 버전인 Minolta CLE를 제작 판매함. CLE에는 자동노출, 필름에서 떨어진 TTL 측광, TTL 플래시 측광 등을 탑재했으며, 40mm/f2, 28mm/f2.8, 90mm/f4 등 세가지 M-Rokkor 렌즈가 제작되었다. 
  • M4-2 — 1977–80 (17,000 세트). 1975부터 생산. 모터 채용으로 더 강한 장치. 전기식 플래시용 핫슈를 탑재한 최초의 M. 타이머 없음. 캐나다에서 생산
  • M4-P — 1980–86. 28mm 및 75mm 렌즈용 거리계 프레임선을 추가함
  • M6 — 1984–98. M3 형태에 현대식이며, 셔터와 분리되고, 움직이는 부분이 없고 뷰파인더에 LED를 넣은 측광기를 최초로 결합한 카메라. 비공식적으로 "M6 TTL"과 구분하고 "Classic" M3 디자인을 유지했음을 알리기 위해 M6 "클래식"으로 지칭됨.

  • Leica M6 Black Chrome

  • M6J — 1994. Leica M 시스템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수집가용 한정판으로 1,640대 제작됨. 1966년 이래 고배율 파인더인 0.85배 파인더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함. 1998년부터 시작된 0.85 카메라의 기반이 됨.
  • M6 0.85 — 1998. M6의 경우 초점거리가 긴 렌즈의 촛점을 쉽게 맞추고,  50mm/f1.0 Noctilux, 75mm/f1.4 Summilux와 같이 빠른 렌즈를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85 배율의 뷰파인더를 별도 주문할 수 있었다. 이 모델에는 28mm 프레임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3,130 세트가 제작(모두 블랙크롬)되었으며, 한정판 M6를 제외하면 상당히 드문편이다.
  • M6 TTL — 1998–2002. .72 및 .85 뷰파인더 버전이 있다. 2000년부터 안경쓴 사람을 위해 .58 뷰파인더 라인이 추가되었다. TTL 플래시를 지원. 전자장치가추가되면서 2mm 만큼 높아졌으며, 셔터 다이얼이 이전 모델과 반대방향이다. (전통적으로 시계반대방향이 셔터스피드를 증가시킴) 
  • M7 2002. TTL 노출, 조리개 우선방식과 매뉴얼 노출. 전자식 셔터와 1/60 및 1/125 등 두가지 기계식 속도가 있었다. .58, .72, .85 뷰파인더 포맷 버전이 있었으며, 각기 다른 프레임라인이 그려져 있었음. M6 TTL과 동일한 높이와 반시계방향 셔터 다이얼. 고체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M7을 생산하고 1개 이상의 티타늄색 렌즈와 함꼐 공급하였음 
  • MP — 2003 — 현재 (2008년 당시). 오리지널 MP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새로운 MP(이번에는 "기계적 완벽(Mechanical Perfection)"의 의미)는 외형에서는 오리지널을 닮았지만(되감기 크랭크를 다이얼 방식으로 되돌리기까지함) 기능적으로는 M6 클래식에 가깝다. M6에 비해 뚜렸한 기능적 향상으로는 거리계(rangefinder)를 개조하여 플래어를 줄인 것이다. 라이카비트(Leicavit) M은 새로운 MP용 악세서리로서, 오른손으로 이 방아쇠형 필름감기를 돌리면 초당 2-2.5 프레임까지 촬영가능하다. 새로운 MP는 크롬색 및 검은색이 있으며, 뷰파인더 배율은 .58, .72, .85 등이 있다.
  • A La Carte Program 2004 — 현재. 금속외장, 가죽종류, 뷰파인더 배율, 사용자 식자 등을 조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
  • M8 — 2006–09. M8은 10.3 메가픽셀 센서를 채용한 최초의 디지털 M 카메라이다. 이센서는 표준 35mm 필름의 1.3배 크롭으로서, 그 이전의 제품에 비해 화각이 넓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 M8.2 — 2008–09. Leica M8을 약간 개조한 버전으로 조용한 셔터, 사파이어 글래스 LCD 스크린 커버, 새로운 가죽 코팅 등의 특징이 있다.
  • M9 — 2009 — . 2009 년 9월 9일 발표된, 최초의 풀프레임 디지털 M 카메라

  • Leica M9 with a Summicron-M 28/2 ASPH Lens

  • M9-P — 2011 — 현재. 2011 6/7월에 발표된 클래식 스타일의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 

R (35mm film SLR 과 dSLR) 시리즈

  • 라이카플렉스(Leicaflex) — 1964/5 — 스탠다드로 불리기도 함 — 외장 측광기, 중앙부 마이크로 프리즘을 채택한 깨끗한 초점 스크린 등이 포함됨. 니콘(Nikon) F(1959)의 경이적인 성공으로 인하여 Leica 이안반사식(SLR)에 대한 요구가 많았음.
  • Leicaflex SL and SL MOT — 1968 — TTL selective-area 측광, 스탠다드보다 바디가 약간 높았음. 오랫동안 잘 사용됨. MOT 모델은 크고 무거운 모터 드라이브를 장착한 모델로 약 1,000개의 SL MOT가 생산됨.
  • Leicaflex SL2/SL2 MOT — 1974 — SL 모델을 측광기를 좀더 민감하게 개선하고, 바디 모양이 예쁘게 바꾼 모델. 가장 강인한 35mm SLR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Leica Solms 박물관에는 25,000 피트(7600미터) 상공의 팬텀 II 전투기에서 떨어진 후, 부서지기는 했지만 수리가 가능할 정도로 살아남은 SL2 MOT (35mm Summicron) 가 진열되어 있다. SL2는 라이카플렉스 시리즈의 최고봉이다. SL2는 판매가격보다 제조비가 높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다음 전자식 카메라 시리즈는 미놀타와 협력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SL2는 이후 14년간 최후의 기계식 라이카 SLR이 되었다.
  • Leica R3 — 최초의 전자식 Leitz SLR — 1976 - 1980, Minolta XE1/7 에 기반함. 처음 몇개는 독일에서 생산되었으나, 라이츠 포르투갈 회사로 생산이 이전되었다. 
  • R4MOT/R4/R4S/R4S Mod2 — 1980–87 미놀타 XD11에 기반한 컴팩트 모델. R4의 디자인이 R7까지 이어짐. R4 에는 프로그램모드, 조리개 및 셔터 우선 그리고 수동 모드, 그리고 스팟측광 및 중앙중점측광이 있었다. R4 이후는 모두 모터와 와인더를 지원했다. R4S와 R4S Mod2 는 약간 간소화한 모델이다.
  • Leica R4.[10]
  • Leica R5 and R-E — 1987 —  전자기기를 개선한 버전(R5에는 TTL 플래시 기능). RE 는 간소화한 모델
  • Leica R6 — 1988–92 기계식 셔터. 배터리는 내장 측광기에만 사용됨
  • R6.2 — 1992 — R6와 비슷하나, 1/2000 셔터 등 몇가지 개선이 이루어짐
  • Leica R7 — 1992 —  좀더 전자기기가 개선됨
  • Leica R8 — 디자인이 전면 바뀜. 모든 생산이 독일로 돌아오고 미놀타의 흔적이 사라짐
  • Leica R9 — 무게 100g 줄고 새로운 피니시 적용 이모델 및 렌즈들은 2009년에 생산중단
  • R8/R9 DMR Digital Module-R — R8/R9 용 디지털백으로서, 최초의 필름/디지털 겸용 카메라가 됨. 2008년 생산중단 
  • Leica R10 — 2009년 10월 R10 이 생산 중단된다고 고지

S (중형 dSLR) 시리즈

  • Leica S1 — 라이카 S1 프로는 1996년 출시된 고해상도 (26메가픽셀) 스캐너 카메라로서, 기본적으로 정지상태로 사용해야 한다. 센서의 크기는 5140×5140 픽셀의 36×36 mm2로 연결된 컴퓨터에 광학적으로 전송되었다. 대물렌즈 어댑터가 교환가능하여, 라이카 R, 라이카 M, 핫셀블라드, 마미야 4, 기타 캐논(FD) 및 니콘의 기계식 대물렌즈를 사용할 수 있다. S1용 소프트웨어는 SilverFast 특별버전으로 원래 고급 스캐너용으로 LaserSoft Imaging에서 개발되었다. 약 160대가 제작되었으며 대부분 박물관, 문서보관소, 연구소 등에 판매되었다. 후일 라이카에서는 속도가 빨라진 S1 Highspeed와 해상도가 절반인 S1 Alpha를 출시하였다. 
  • Leica S2[12] —  2008년 라이카에서는 코닥의 주문형 CCD(30x45mm, 37메가 픽셀)을 채택한 "S 시리즈" DSLR을 생산한다고 공지하였다. 이 센서는 24mm x 36mm DSLR 센서에 비해 대각선방향으로 26%가 길고 면적으로는 56% 크고, 해상도는 5000x7500 정도가 될 것이다. S2에 사용될 "Maestro" 이미지 프로세서는 후지스에서 개발했으며, 자동초점시스템(라이카에서는 최초)은 자체 개발되었다. S2 시리즈 몸체, 렌즈, 악세서리는 2009년 10월 출시될 것이다. S2를 위해 특별한 렌즈가 새로 제조될 예정으로 라이카에서는 모든 구경 및 거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를 보일 것이며, 심지어는 센서의 해상도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S2용 렌즈로는  표준 Summarit-S  (70 mm), 광각(35 mm), 마크로(120 mm) 등과, Tele-Elmar (180 mm) 인물용 망원렌즈가 공급될 것이다. 아울러 카메라 몸체의 포컬플레인 셔터 외에도 통합형 다중 리프셔터도 넣어 플래시 싱크 속도를 높인 버전도 제공될 것이다.

Leica S2 

Digilux (디지털) 시리즈

  • Digilux
  • Digilux Zoom
  • Digilux 4.3
  • Digilux 1
  • Digilux 2
  • Digilux 3
오리지날 Digilux 모델

디지털 컴팩트 카메라 시리즈(Digital compact camera series)

  • C-Lux 시리즈.
  • D-Lux 시리즈
  • V-Lux 브릿지 카메라 시리즈
  • X 시리즈. 2009년 9월 9일 Leica X1 이 최초임. APS-C 크기의 센서. 뷰파인더가 없음(핫슈에 파인더 악세서리를 붙일 수 있음). 고정초점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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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Leica_Camera 를 번역한 문서입니다.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와 일안반사식카메라 첫번째두번째 그리고 이안반사식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 렌즈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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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4 22:45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6 21:55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11.12.06 19:25 [ ADDR : EDIT/ DEL : REPLY ]
  4. MARA

    재밌는 글 보고 갑니다. 언젠가는 갖고 싶은 기기이긴 한데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네요.
    참.. 감성이라는 게 뭔지.

    2011.12.18 19:28 [ ADDR : EDIT/ DEL : REPLY ]
  5. 너무 훌륭히 잘 정리하셨네요! 저도 D-LUX 디카로 하나 갖고 있습니다.
    년말 잘 지내시고 새해에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 인사도 드릴겸 차 한잔하러 찾아 뵙겠습니다.

    2011.12.23 21:18 [ ADDR : EDIT/ DEL : REPLY ]
  6. leejula

    전 leica III 모델 소유하고 있습니다 ^^ 저희 할아버지가 중학교2학년때 받으신거네요 ㅎㅎ

    2012.02.15 23:50 [ ADDR : EDIT/ DEL : REPLY ]
  7. 아이코나

    잘 보고 배워 갑니다 그런데 m7이 일찍 단종된 이유나 m6가 인기좋은 이유도 궁금하네요...

    2016.10.17 14:52 [ ADDR : EDIT/ DEL : REPLY ]

사진/카메라2011. 10. 14. 15:17
일안반사식(SLR)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반자동으로 움직이는 거울시스템을 사용하여, 필름 또는 디지털영상센서에 포착되는 상을 사진사가 똑같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를 말한다. SLR 이전의 카메라는 주로 뷰파인더를 통해 보므로, 필름에 촬영되는 영상이 많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SLR이 개발되기 전, 뷰파인더가 달린 모든 카메라에는 광학 경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렌즈로 들어오는 경로이며, 다른 하나는 그 위쪽(이안반사식(TLR)) 또는 옆쪽(거리계연동(rangefinder))이다. 뷰파인더와 필름렌즈의 광 경로가 다르므로, 뷰파인더용 렌즈의 광경로를 카메라 앞쪽 어디쯤에선가 필름렌즈와 마주치도록 설계된다. 어느 정도 먼 거리에 있는 물체을 촬영할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가까운 물체를 촬영할 때는 시차(parallax)로 인해 프레임 차이가 커진다. 

제가 1988년에 구입해서 지금도 가지고 있는 Pentax K1000 SE

대부분의 SLR 카메라는 반사거울(reflex mirror)과 뷰파인더(viewfinder)의 광경로 사이에 위치한 루프 오각프리즘(roof pentaprism)을 통하여 상하 좌우를 똑바로 볼 수 있다. 처음에 렌즈를 통과하면서 상하좌우가 뒤집혀진 상은 반사거울에 의해 위쪽에 있는 오각프리즘으로 들어가고, 여기에서 여러번 반사되면서 뒤집힌 상이 바로잡힌 후 뷰파인더에 상이 정렬된다. 셔터를 누르면 거울이 위로 올라가고 빛이 직접 필름(DSLR의 경우엔 CCD 또는 CMOS 센서)을 비추게 된다. 캐논 펠릭스(Pellix)만 예외로서, 거울대신 반투명의 광선분리 박막(beamsplitting pellicle)을 사용, 고정되어 있었다.

초점은 사진사가 수동으로 잡을 수도 있고, 자동초점시스템(autofocus system)이 잡을 수도 있다. 뷰파인더에는 빛을 산란시키기 위해 거울 시스템 바로 위에 무광택 초점스크린(matte focusing screen)을 설치되기도 한다. 무광택 초점스크린은 상을 확인하거나 구도나 초점을 잡을 때 좋은데, 특히 렌즈교환식에서 매우 유용하다.

1990년대까지는 SLR이 가장 진보된 영상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했지만, 디지털 영상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미리보기용 LCD가 SLR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거의 모든 저가형 컴팩트 카메라까지 LCD가 붙어 있어, CCD에 촬영된 내용을 즉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LR은 교환가능한 렌즈, 플래시 등 이 많은 시스템 카메라이기 때문에, 고급 전문가용 카메라로 인기가 높다. 또한 셔터랙(shutter lag)이 적어서 원하는 사진을 좀 더 쉽게 촬영할 수 있다. 아울러 LCD의 해상도나 대비, 재생속도(refresh rate), 색상재현(color gamut) 등은 SLR 뷰파인더의 명료함과 세밀도에 전혀 경쟁할 수 없다.

광학 요소(Optical components)


아래의 전형적인 SLR카메라의 단면을 보면서 빛의 흐름을 살펴보자. 우선 렌즈뭉치(1)를 통해 들어온 빛이 45도로 설치된 거울(2)에 반사되어, 무광택 초점스크린(5)에 투영된다. 압축 렌즈(condensing lens)(6)를 통과한 영상은 상단에 있는 루프 오각프리즘(7) 내부에서 반사되어 접안렌즈(eyepiece)(8)에 도달하게 된다. 촬영 시에는 거울(2)이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가고, 포컬 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3)가 열리며 필름이나 센서(4)에 투영된다. 이와 같이 사진사가 뷰파인더로 본 그대로 필름이나 센서에 기록되는 것이, SLR을 다른 카메라와 구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SLR 시스템의 단면:1 - 렌즈뭉치, 2 - 반사거울, 3 - 포컬 플레인 셔터, 4 - 필름 또는 센서, 
5 - 초점스크린, 6 - 압축렌즈, 7 - 루프 오각프리즘 또는 오각거울, 8 - 접안렌즈

오각프리즘과 오각거울(Pentaprisms and penta-mirrors)


대부분의 35mm SLR은 루프 오각프리즘(roof pentaprism)이나 오각거울(penta-mirror)을 사용하여 빛을 접안렌즈로 보내는데, 1949년 동독에서 생산된 콘택스(Contax) S 에 최초로 적용되었다. 일본에서 오각프리즘을 최초로 적용한 일안반사식 카메라는 1955년 미란다(Miranda) T 였으며, 이어 아사히 펜탁스(Asahi Pentax), 주노(Zunow), 니콘(Nikon) F, 야시카 펜타마틱(Yashica Pentamatic) 등이 뒤를 이었다. 일부 SLR은 오각 프리즘을 제거하고 허리높이 파인더(waist-level finder)와 같은 뷰파인더로 바꿔 끼울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교환가능식 스포츠파인더는 캐논 F1, F1n, F1; 니콘 F, F2, F3, F4, F5; 펜탁스 LX 등에서 사용되었다.

세계최초로 오각프리즘을 채택한 Contax S의 광고(1950년 9월) : 여기에서 가져옴

기타 올림푸스(Olympus) Pen F, Pen FT, Pen FV 등의 하프 프레임 35mm SLR 카메라는 포로프리즘(porro prism)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포로프리즘은 올림푸스 EVOLT E-3x0 시리즈, 라이카 Digilux 3, 파나소닉 DMC-L1 등에도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SLR과 D-SLR에는 접안렌즈에 직각 파인더(right-angle finder)를 끼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허리높이 뷰파인더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EVF remote 기능을 제공하는 파인더도 있다.

직각 파인더(right-angle finder)의 예

셔터 장치(Shutter mechanisms)


포컬 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


거의 모든 현대식 카메라는 필름면 바로 앞에 포컬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가 설치되어 있다. 이 셔터는 촬영을 위해 셔터를 누른 순간 외에는 (렌즈를 빼낼 때에도) 필름에 빛이 닿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포컬 플레인 셔터는 여러가지 디자인이 있다. 1930년대에 개발된 초기의 모델은 수평방향으로 움직이는 2장의 커튼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셔터 속도를 빠르게 설정할 경우, 두번째 커튼이 첫번째 커튼 바로 뒤로 쫒아감으로써 세로로 좁은 틈(slit)을 만들게 되며, 이 틈은 수평방향으로 이동한다. 셔터속도가 빠를수록 이 틈이 좁아진다. 처음에는 천 소재로 커튼을 만들었지만(나중에는 고무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음), 다른 소재를 사용하는 제작사도 있었다. 예를 들어 니폰 코가쿠(Nippon Kōgaku, 현재의 니콘)에서는 니콘 F, F2, F3와 같은 플래그십 SLR카메라에서는 티타늄 박막(titanium foil)셔터를 사용했다. 현재 라이카 M 시리즈 거리계연동(rangefinder) 카메라를 제외하면 수평이동방식 셔터를 사용하는 SLR은 거의 없다.

수평 포컬플레인 셔터, 좌측은 1/500, 우측은 1/250으로 간격이 두배임

Copal Square와 같은 포컬 플레인 셔터(focal plane shutter)는 수직뱡향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동거리(24mm)가 수평이동방식(36mm)에 비해 짧아, 노출시간을 줄일 수 있고 플래시 동기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이 방식의 셔터는 대부분 금속으로 제작되는데, 작동원리는 수평이동방식과 동일하다. 단, 수평이동방식은 두장의 커튼을 이용하는 데 비해, 촬상면 위아래에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러개의 블레이드(blade)으로 제작된다. 수직 셔터는 1980년대에 들어 널리 사용되었다.

코니카(Konica), 마미야(Mamiya), 코팔(Copal)등에서 1950년대, 60년대에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새로운 카메라에 거의 독점적으로 적용하였다. 니콘에서는 Nikomat/Nikkormat에 코팔에서 제작한 수직방식 셔터를 사용하여, 당시 대부분의 카메라가 1/60 플래시 동조속도(x-sync speed)만 지원할 때, 1/30부터 1/125까지 지원하였다. 후일 니콘에서는 "날"에 특수한 벌집모양을 새겨 무게를 가볍게 한 티타늄 소재 수직플레인셔터를 최초로 개발하여, 1982년에 최고 속도 1/4,000초와 플래시 동조속도 1/250초라는 세계최고 기록을 달성하였다. 요즈음에는 일부 고급 카메라에서 탄소섬유나 케블라(Kevlar) 섬유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제작한다.

회전식 포컬플레인 셔터(Rotary focal-plane shutter)


일본에서 제작된 올림푸스(Olympus) Pen half-frame 35mm SLR은 매우 독특한 설계를 채택하였다. 극히 단순하고 멋진, 회전식 포컬플레인 셔터 방식이 그것이다. 이 셔터는 티타늄박막을 사용하지만, 한장으로 구성되며 구멍도 고정되어 있는데, 플래시 동기화가 최대 1/500초 까지 가능하여 리프셔터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다.

Robot Royal 카메라도 회전식 셔터를 사용하는 35mm 카메라로서 대부분 거리계연동식이다. 일부는 full-frame 이고 일부는 half-frame 인데, Robot 카메라중 적어도 한가지는 보기드물게 35mm 프레임에서 정사각형 영상을 촬영한다.

1946년 생산된 Mercury II 도 회전식 셔터를 사용하는 half-frame 35mm 카메라이다. 

Mercury II, 위쪽 둥근부분이 회전식셔터의 영향이다.

리프셔터(Leaf shutters)


또 다른 셔터시스템으로 리프셔터(leaf shutter)가 있다. 리프셔터는 조리개 비슷한 "날"로 구성되며, 렌즈 속 혹은 뒤에 위치한다. 셔터가 렌즈뭉치의 일부라면 노출과 노출 사이에 빛이 필름에 닿지 않게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렌즈 뒤에 리프셔터가 있는 예로는, 코닥의 Retina Reflex 35mm SLR, 탑콘(Topcon) Auto 100, 코와(Kowa) SE-R, SET-R reflexes 등이다. 렌즈 내부에 리프셔터가 있는 중형 SLR의 주요 예로는 핫셀블라드(Hasselblad) 500C, 500CM, 500 EL-M 등 모터식 기종과 6 x 6cm 모델이다. 핫셀블라드는 렌즈마운트와 반사거울 뒤에 필름 김서림 방지를 위하여 보조 셔터차폐막(blind)이가 설치되어 있다.

리프셔터를 사용하는 또다른 중형 SLR중에는, 현재 단종된 Zenza-Bronica 시리즈인  브로니카(Bronica) ETR과  ETRs'i (6 × 4.5 cm), SQ 와 SQ-AI (핫셀블라드처럼 6 × 6 cm) 그리고 Zenza-Bronica G system (6 × 7 cm)등이 있었다. 일부 마미야(Mamiya) 중형 SLR 중에서, Kowa 6 을 비롯한 현재 단종된 몇몇 기종도 리프셔터 내장형 렌즈를 사용하였다.

리프 셔터는 셔터 속도와 관계없이 플래시와 동기화되므로 (1/500 이상인 경우도 포함) 복잡한 스튜디오 전자 플래시 시스템을 사용하는 스튜디오 사진사의 경우 리프셔터가 훨씬 바람직하다.

일부 120 필름용 중형 SLR 제작사도 포컬플레인 셔터(focal-plane-shutter) 모델용 리프셔터(leaf-shutter) 렌즈를 제작하였다. 롤라이(Rollei)에서는 포컬플레인 셔터 SLR인 Rolleiflex SL-66 용으로 그같은 렌즈를 최소한 두개 제작했다. 롤라이는 나중에 카메라 시스템을 리프셔터 형으로 바꾸어, 현재 롤라이의 중형 SLR은 모두 렌즈내장형 셔터방식이다.

기타 발전(Further developments)


1970년대 들어 SLR 기술이 보편화되자, SLR은 헌신적인 아마추어나 전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물(건축물, 풍경, 혹은 상업적 주제)을 촬영하는 일부 사진사들은 투시법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뷰카메라(view camera)를 선호한다. 3방향 확장(??triple-extension) 주름상자가 있는 Linhof SuperTechnika V 등  4" × 5" 카메라를 사용하면, (건물 꼭대기가 나오도록 카메라를 올려 찍으면 흔히 발생하는) 사진의 선이 모이는 사다리꼴 현상(keystoning) 등의 왜곡을 보정할 수 있다. 35mm 및 중형 카메라에는 이러한 오차를 수정할 수 있도록 투시법 교정렌즈(Perspective correction lens)가 있으며,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엔 사진용 소프트웨어로 보정할 수도 있다. 또한 주름상자를 최대한 길게 확장하고 전면판( front standard)을 기울이면 마크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데, 조리개에 관계없이 심도가 깊은 명료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Linhof SuperTechnika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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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Single-lens_reflex_camera 를 번역한 것중 첫번째 부분입니다.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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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길재

    잘 읽었습니다. 지식이 없어서 아직 어렵네요. 잘읽고 갑니다.

    2011.10.14 19:32 [ ADDR : EDIT/ DEL : REPLY ]
  2. 상아

    와우 너무 잘 보았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11.10.15 03:44 [ ADDR : EDIT/ DEL : REPLY ]

사진/카메라2011. 10. 5. 10:09
카메라의 역사는 사진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사진용 카메라의 기원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이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s), 칼로타입(calotypes), 건판(dry plates), 필름(film),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s)와 같은 다양한 기술로 변화를 계속해왔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s)


사진용 카메라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부터 개발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기원은 고대 중국 및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바깥경치가 바늘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투사면에 도립상(아래위를 뒤집은 영상)으로 투영되는 장치이다. 과학자이자 승려인 로저 베이컨(Roger Bacon)도 이에 대해 연구하였다. 1267년 출간된 베이컨의 원근법(Perspectiva)에는 어떻게 악마가 마술로 바늘구멍을 통해 자기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기술하는 이론적 소재가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직접 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544년 1월 24일, 수학자이자 기기제작자인 루벤대학교(Leuven University) 라이너 겜마 프리시우스(Reiners Gemma Frisius)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일식을 관측하고, 다음해 출간한 "De Radio Astronimica et Geometrico"에 그 방법을 도면으로 남겼다. 1588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ovanni Batista della Porta)는 이 장치가 그림을 그릴때 유용하다고 최초로 추천하였다. 

사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손으로 따라 그리는 것 이외에 이 장치에 투영된 영상을 보존하는 방법이 없었다. 초기의 카메라는 한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방 크기였으나, 점차 작은 형태로 진화하여 니엡스(Niépce) 당시에는 사진 촬영에 적합할 정도의 휴대용 카메라를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1685년 요한 잔(Johann Zahn)은 사진용으로 적합한 소형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하였지만, 사진술은 그로부터 150년 후에야 실용화 되었다.

초기의 사진


1817년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는 직접 제작한 카메라를 이용해 최초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하지만 이 사진은 영구적이 아니었고, 빛을 받으면 희미해졌다. 1827년 그는 프랑스 파리의 찰스 쉬발리에 및 빈센트 쉬발리에(Charles and Vincent Chevalier)가 제작한 슬라이딩방식 나무박스 카메라를 사용해 최초로 영구적인 영상을 제작하였다, 그 사진은 백랍판에 역청(bitumen, 아스팔트)을 코팅한 후 빛에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다. 빛을 쏘인 역청은 굳어지는데, 굳지 않은 부분을 녹여내면 사진이 완성된다.

"르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 (1827년), 니세포르 니엡스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s)과 칼로타입(calotypes)


루이스 다게르(Louis Daguerre)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 다게르의 동업자이지만 발명이 완성되기전 세상을 뜸)는 1836년 최초의 실용적 사진기술인 다게레오타입을 발명하였다. 구리판에 은을 코팅한 후 요오드 증기를 쏘이면 빛에 민감하게 된다. 촬영후 수은 증기를 이용해 현상하고, 진한 소금물로 정착시켰다. 윌리엄 폭스 탈보트(William Fox Talbot)는 1840년 칼로타입(calotype)이라는 다른 프로세스를 개발하였다. 이때 사용된 카메라는 잔(Zahn)이 개발한 모델을 기반으로, 촬상면 앞에 감광판 또는 감광용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슬라이딩 박스를 사용하여 초점을 맞첬다.

습판(Wet plates)


1851년에 개발된 콜로디온 습판법(Collodion wet plate process)은 영국의 조각가였던 프레드릭 스코트 아처(Frederick Scott Archer)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초상사진가들이 사진을 찍기위해서 칼로타입을 응용할 경우 특허료를 지불해야만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점차 콜로디온 습판 프로세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들이 부각되어 인기를 누렸다. 콜로디온은 알콜과 에테르에 니트로셀룰로스를 녹여만든 점액질 용제로, 빠른 시간내에 건조되어 방수막을 띤 막을 형성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유리판에 유제를 바를때 손가락과 손목을 매우 유연하게 움직여야 했으며, 콜로디온이 건조해지기 전 축축한 상태에서 노출과 현상과정을 끝내야만 했다.

이로 인해 콜로디온 습판법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으려면 완전한 암실이 바로 옆에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특히 야외촬영을 나갈때는 사진을 찍는 장소마다 암실 전체를 운반해야 하는 수고를 치뤄야만 하나의 사진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콜로디온 습판은 다게레오 타입에서 이룰 수 없었던 복제 가능성과 칼로타입에서 이룰 수 없었던 정밀함 이 두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건판(Dry plates)


1855년 Désiré van Monckhoven에 의해 콜로디온(Collodion) 건판이 개발되었으나, 1871년 리차드 리치 매독스(Richard Leach Maddox)가 젤라틴(gelatin) 건판을 개발한 이후에야 습판식에 비해 품질과 속도가 경쟁력이 갖춰졌다. 아울러 카메라를 손에 들거나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었다. 이때로 부터 단렌즈반사식, 이렌즈반사식 에서 아주 큰 현장 카메라, 포켓용 카메라, 심지어는 시계나 모자 등의 물건 모양을 한 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가 제작되었다. 노출시간이 짧아지자 캔디드(candid)사진이 가능해지면서 또다른 발명품이 기계식 셔터가 필요하게 되었다. 최초의 셔터는 별도의 악세서리였지만, 19세기말에는 내장형 셔터가 널리 사용되었다.

코닥과 필름의 탄생(Kodak and the birth of film)


사진 필름은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1885년 종이 필름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889년 샐룰로이드(celluloid)로 전환했다. 이스트만 최초의 카메라 "Kodak"은 1888년 발매되었다. 고정초점렌즈에 셔터스피드가 하나뿐인 아주 간단한 박스카메라였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일반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Kodak 카메라에는 100장을 촬영할 수 있는 필름이 미리 탑재되어, 모두 촬영하면 공장에 보내 현상, 필름을 재탑재 해야했다. 19세기말까지 이스트만은 박스카메라 및 주름식 카메라를 포함한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였다.

1900년, 이스트만에서는 스냅샷 개념을 소개한, 간단하면서 매우 저렴한 브라우니(Brownie)로 대량시장을 열었다. 브라우니는 매우 인기가 높았고, 1960년대까지 여러가지 모델이 판매되었다.

필름은 또한 영화용 카메라를 비싼 장난감이 아닌 실용작인 상업적 도구로 거듭날 수 있게 하였다.

이스트만에 의하여 저가 사진 시장이 커졌지만, 건판 사진기는 고품질 인화를 제공하여 20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한번 탑재하면 여러장을 촬영할 수 있는 롤필름 카메라에 대항하기 위해, 이 시대부터 많은 저가형 건판 사진기에 여러장의 건판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매거진(magazine)을 장착하였다. 건판 사진기에 롤필름을 사용할 수 있거나, 롤필름 카메라에 건판을 사용할 수 있는 보조백(back)도 판매되었다.

슈미트 카메라(Schmidt cameras)와 같은 특수 카메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문 천문카메라(astrograph)는 전자 사진기가 등장할 때까지 건판을 사용하였다.

35 mm


라이쯔(Leitz) 연구개발 책임자인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은 고품질 확대가 가능한 컴팩트 카메라를 개발하던중, 35mm 영화용 필름을 일반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는지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1913년경 35mm 카메라 원형(Ur-Leica)를 개발했지만, 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몇년간 개발이 연기되었다. 라이쯔에서는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시제품을 개발 시험했는데,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1925년에 Leica I 이라는 명칭으로 양산에 들어갔다. 라이카의 성공으로 많은 경쟁자가 생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경쟁자는 콘택스(Contax, 1932년부터 생산)였다. 이후 35mm 는 고급형 컴팩트 카메라를 위한 포맷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Leica I, 1925

코닥은 1934년 Retina I 모델로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모든 현대 35mm 카메라가 사용하고 있는 135 카트리지를 최초로 적용하였다. 레티나가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35mm 카메라는 언감생심이었고, 대부분 롤필름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936년 처음 소개된 저렴한 아르구스 A(Argus A)에 의해 변하기 시작하였고, 1939년 매우 인기가 있었던 아르구스 C3(Argus C3)의 등장이후 한층 더 많이 변화하였다. 저렴한 카메라는 계속 롤필름을 사용했지만, 1966년 C3가 단종될 당시에는 35m 필름이 거의 시장을 장악하였다.

일본의 카메라 산업은 1936년 캐논 35mm 거리계연동 커메라(rangefinder) 로 시작하였다. 이것은 1933년 콰논(Kwanon) 시제품을 개선한 것이었다. 일본 카메라는 한국전쟁에 참여하려고 일본에 주둔했던군인들이 미국 등지로 가지고 들어오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일안 반사식(SLR) 및 이안 반사식(TLR) 카메라


최초의 실용적 반사식 카메라는 1928년 Franke & Heidecke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중형 이안반사식(TLR) 카메라이다. 그 이전에도 일안반사식과 이안반사식 카메라는 수십년간 존재했지만, 대중적이기엔 너무 부피가 컸다. 그러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는 어느 정도 소형화에 성공하여 널리 인기를 얻었으며, 중형 TLR 카메라가 고급형 및 저급형 양쪽 모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일안반사식에서도 127 롤필름을 사용한 소형 SLR인 Ihagee Exakta 가 시판되면서 이와 비슷한 혁명이 일어났다. 이어 3년후에는 서방 최초의 35mm 용 SLR인 Kine Exakta 가 발매되었다. (세계 최초의 35mm SLR은 소련의 "Sport" 였지만, 고유한 필름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35mm SLR 카메라는 즉시 인기를 얻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양한 모델과 혁신적인 기능이 도입되었다. 35mm TLR도 몇몇 있었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35년 콘타플렉스(Contaflex) 였지만 성공을 거둔 제품은 거의 없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SLR에 반영된 가장 중요한 혁신은 눈높이에서 촬영가능한 뷰파인더(eye-level viewfinder)로서, 1947년 헝가리산 듀플렉스(Duflex)에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1948년에 발매된 콘택스(Contax) S에는 오각프리즘(pentaprism)이 최초로 적용되었다. 이 이전의 모든 SLR은 허리높이의 초점스크린만 있었다. 듀플렉스는 또한 최초로 즉시반환거울(instant-return mirror)이 탑재되어 매번 촬영할 때마다 뷰파인더가 닫히는 불편을 없앴다. 아울러 이 시대에 수십년간 중형 카메라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Hasselblad 1600F가 출현했다.

1952년에는 아사히광학(후일 펜탁스(Pentax)카메라로 유명해짐)에서 일본 최초로 35mm를 사용하는 SLR인 아사히플렉스(Asahiflex)를 출시하였다. 또한 1950년대에는 캐논(Canon), 야시카(Yashica), 니콘(Nikon) 등 여러 일본 회사들이 SLR 시장에 뛰어들었다. 니콘의 신작인 Nikon F는 여러가지 교환 가능한 구성품과 악세서리가 갖추어져 있어, 일반적으로 최초의 시스템 카메라라고 불린다. 거리연동계식(rangefinder) 카메라인 S 시리즈와 함께 F 시리즈는 니콘(Nikon)이 고급 장비 제작사라는 명성을 획득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Nikon F of 1959 — the first system camera

즉석 카메라(Instant cameras)


일반 카메라들이 점점 정밀해지고 복잡해지는 동안, 1948년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카메라가 등장하였다. 세계 최초의 즉석 카메라인 폴라로이드 Model 95가 바로 그것이다. 발명가인 에드윈 랜드(Edwin Land)를 따라 랜드카메라라고도 불렸는데, 특허를 받은 화학공정을 이용해 촬영 1분만에 양화사진을 제작하였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랜드 카메라(Land Camera)는 많은 인기를 끌어, 1960년대 폴라로이드 모델은 수십가지에 달하였다. 대중 시장을 향한 최초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1965년 발매된 Model 20 Swinger 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최고판매고를 달성한 카메라중의 하나이다.

자동화(Automation)


최초로 자동노출 기능이 들어간 카메라는 셀레늄 측광기(selenium light meter)를 탑재한 1938년에 나온 전자동 슈퍼 코닥(Super Kodak) Six-20이었지만, 매우 고가($225, 현재가로 $3,507)이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저가의 전자부품이 흔해지고 측광기와 자동노출계를 탑재한 카메라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다음번 기술적 진보는 1960년대로서, 정확한 측정을 위하여 렌즈 뒤쪽에 측광기를 설치한 독일의 초소형카메라(subminiature) Mec 16 SB 이었다. 그러나, 렌즈를 통한(TTL: through-the-lens) 측광은 SLR에 널리 적용된 기술로, 최초의 TTL 탑재 SLR은 1962년산 탑콘(Topcon) RE Super 이었다.

Digital cameras


디지털카메라는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주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메모리카드나 내부저장장치에 보관한다는 차이가 있다. 디지털카메라는 운영비용이 낮아 화학식 카메라를 틈새 시장으로 밀어내었다. 현재 디카에는 사진의 공유나 인쇄를 위하여 Wifi, 블루투스(Bluetooth) 등 무선통신기능을 탑재하는 등 많은 기능이 포함되고 있으며, 모바일폰에도 널리 탑재되고 있다.

아날로그 전자카메라(Analog electronic cameras)


들고 다닐 수 있고 필름카메라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기라는 의미의 "포켓용 전자 카메라"는 1981년 소니 마비카(Mavica:  Magnetic Video Camera)로 처음 나타났다. 이 카메라는 비디오테이프 기기와 마찬가지로 픽셀 신호를 연속적으로 저장하며, 디지털화 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카메라이었다. 2 × 2 인치 "video floppy"에 텔레비전과 비슷한 신호를 저장하였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프레임을 저장할 수 있는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의 품질은 그 당시의 텔레비전과 동일하였다.

 Sony Mavica, 1981

최초로 출시된 아날로그 전자 카메라는 1986년의 캐논 RC-701 이다. 1984년 올림픽 당시 시제품을 선보이고, 그 사진을 요미우리 신문에 실었다. 미국에서 이 카메라를 실제 리포트에 사용한 것은 USA Today의 월드시리즈 야구시합이었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우선 가격($2만 이상)이 비싸고, 품질이 필름에 비해 형편 없었으며 적당한 프린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진을 뽑아내려면 프래임그래버(frame grabber)같은 장비가 필요했으나, 일반인들은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후일 "video floppy"를 읽을 수 있는 장비가 여러가지 등장했지만, 컴퓨터 주변기기로 표준화되지는 못하였다.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는 주로 언론사로서, 영상을 전화로 송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가격이 비싸다는 약점을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 품질이 떨어져도 신문에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위성을 통하지 않고 영상을 보내는 장점은 1989년 천안문 사태나 1991년 걸프전때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 정부기관에서도 정지비디오(still video)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미해군은 실시간 공대해(air-to-sea) 감시체계에 응용하고자 하였다.

최초의 소비자용 아날로그 전자 카메라는 1988년에 출시된  Canon RC-250 Xapshot 이었다. 주목할만한 아날로그 카메라는  Nikon QV-1000C로서 방송용으로 설계되었으며, 일반인에게 판매되지 않아 수백대 가량만 판매되었다. 이 제품은 영상을 흑백 계조로 저장하여 신문에서는 품질이 필름 카메라와 동일하였다. 생김새는 현대식 DSLR과 비슷하였고, 이미지는 video floppy disk에 저장되었다. 

1988년 후반에는 35mm 필름 카메라에 끼우기만하면 디지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실리콘필름(Silicon Film)이라는 디지털 센서 카트리지가 소개되었다. 실리콘필름은 렌즈 뒤쪽에 130만화소의 센서가 있고, 카메라 필름 홀더엔 건전지와 저장장치가 있는 형태로, 35mm 필름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었다. 그러나이 제품은 발매되지 않았고,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발전 및 가격하락에 따라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 기술을 소유한 모회사는 2001년 파산하였다.

진짜 디카의 출현(The arrival of true digital cameras)


이미지를 컴퓨터 파일로 저장하는 최초의 진정한 디지털카메라는 1988년의 후지사의 DS-1P인 듯하다. 이 카메라는 영상을 배터리가 있을 때만 저장할 수 있는 16MB 내부메모리에 저장하였다. 미국에는 판매된 적이 없으며, 일본에서 판매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1991년 코닥에서는 전문가용 DCS SLR 시리즈의 첫제품인 Kodak DCS-100을 출시하였다, DCS 시리즈는 니콘 등의 필름 카메라 바디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Kodak DCS-100 는 130만 픽셀로 가격은 $13,000 이었다.

1988년 JPEG 및 MPEG 표준이 제정됨으로써, 디카의 파일 포맷이 쉽게 정착될 수 있었다. 카메라 뒷면에 최초로 LCD(liquid crystal display)을 부착한 디카는 1995년의 Casio QV-10 이었고, 컴팩트플래시(compact flash)를 최초로 채택한 것은 1996년의 코닥 DC-25 이었다.

일반소비자용 디카 시장은 원래 저해상도이었다. 1997년에야 1백만 화소를 초과한 소비자용 디카가 판매되기시작했다.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최초의 디카는 1995년의  Ricoh RDC-1이었다.

1999년에는 274만 픽셀의 니콘 D1이 출시되었다. 최초로 대형 카메라업체가 단독으로 제작한 SLR로서 가격도 $6,000 이하로 전문가 혹은 고급아마추어가 구입가능한 수준이었다. 또한 이 카메라는 니콘 F마운트를 사용함으로써, 필카 사용자들이 기존 보유한 렌즈를 사용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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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camera 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카메라의 역사를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문서도 있습니다. 

민, 푸른하늘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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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메라2011. 9. 30. 10:41

사진과 카메라의 역사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한 그림입니다. 그림만 있어서는 별로라고 생각해서 맘 내키는 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원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민,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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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400-500 - 중국 철학가인 Mo Di 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가 광학(Optics) 이론을 세움

- 기원전 300년경 -  아리스토텔레스, "태양은 왜 사각형 구멍을 통과했는데도 동그란 영상이 만들어지는가?"
   이 연구로 인해 미래의 모든 렌즈는 원형으로 제작됨

- 서기 1000년경 - 이븐 알 하심(Ibn-Al-Haytham, Alhazen), 광학에 대해 심층연구. 최초의 바늘구멍사진기(Pinhole Camera), 즉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발명함. 

- 1665년 - 아이작 뉴턴, 빛이 여러가지 색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

- 1727년 - 요한 하인리히 슐체(Johann Heinrich Shulze), 질산은이 빛에 노출되면 검게 변화하는 것을 발견함. 이 광화학효과가 필름릴을 제작하고 사진이 종이에 인쇄되는 돌파구를 엶

- 1760년 -  프랑스 작가 티페뉴 들 라 로오슈(Tiphaigne de la Roche), 소설 지판티(Giphanite) 에서 사진이라고 해석 될 수 있는 것을 기술함 (여기를 참고 할 것)

- 1814년 -  조셉 니엡스(Joseph Niepce), 카메라 옵스쿠라로 최초의 사진 촬영. 큰 진전이지만 8시간동안 노출해야 했음. 이전에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지도나 스케치에서만 사용

- 1837년 - 루이스 다게르(Louis Daguerre) 다게레오타입의 사진술 개발. 30분만 노출. 선명한 사진. 사진의 혁명이 시작됨.

- 1840년 - 알렉산더 월코트(Alexander Wolcott), 사진에 관한 최초의 특허 획득.

- 1841년 - 윌리엄 탈보트(William Talbot), 칼로타입(Calotype) 사진술 특허. 최초로 음화->양화 제작 프로세스. 사진 복제가 가능해짐.

- 1843년 - 필라델피아에서 최초의 사진관련 광고

- 1844년 - 프리드리히 본 마르텐(Friedrich von Martens), 최초의 성공적인 파노라마 사진기 메가스콥(Megaskop) 개발

- 1851년 - 프레드릭 스코트 아처(Frederick Scott Archer), 콜로디온(Collodion) 기법 개발. 노출시간이 2-3초로 줄어듦

- 1855년 - 물리학자 제임스 클락 맥스웰(James Clark Maxwell), RGB 삼원색 분리 이론 정리

- 1861년 - 최초의 칼라사진

- 1865년 - 사진과 음화가 저작물에 포함됨

- 1871년 - 리차드 리치 매독스(Richard Leach Maddox), 젤라틴 건판 브롬화은(Gelatin Dry Plate Silver Bromide) 기법 개발. 음화를 즉시 현상할 필요가 없어짐. 따라서 이동식 암실 사라지게 됨.

- 1888년 - 이스트만(Eastman), 코닥 롤필름 카메라 특허 획득.

- 1900년 - 최초의 소비자용 카메라(Brownie) 양산되기 시작

(-1913년 - 오스카 바르낙(Oscar Barnack), 최초의 35mm 카메라(Ur-Lieca) 개발. 1925년 Leica I 으로 양산 시작) 
   
- 1927년 - 제네럴모터스에서 현대식 플래시 개발

(-1936년 - Kine Exakta - 최초의 35mm SLR)

- 1948년 - 에드윈 랜드(Edwin Land), 폴라로이드 개발

- 1960년 - EG&G, 미 해군을 위하여 심해용 카메라 개발

- 1968년 - 달에서 지구를 촬영

- 1978년 - Konica, 최초의 자동초점 카메라 

- 1984년 - Cannon, 최초의 디지털 전자 카메라

- 1991년 - Kodak DCS-100 최초의 DSLR

- 2011년 - Giga pixel 카메라. 

- 2050년 - 눈속에 칩이 장착되어 생각만으로 사진 촬영. 입으로 출력 :)

참고로 조금 더 자세한 카메라의 역사는 여기를 확인하세요. 다만, 상세한 내용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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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드 치기 불편하실텐데 보기 쉽게 정리하셨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2050년 입으로 출력 대박입니다. ;-)

    2011.09.30 20:5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