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카메라2011. 11. 7. 20:09
이 문서의 첫부분과  두번째 부분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보조렌즈(The supplementary lens)


보조렌즈는 메인 렌즈 앞에 덧붙여서 렌즈의 유효 초점거리를 바꾸어주는 악세서리 렌즈이다. 볼록렌즈로만 구성된 경우, 초점거리를 줄이게 되어, 메인렌즈의 초점을 무한대로 둘 때 그 초점거리가 보조렌즈의 초점거리로 설정된다. 이와 같은 소위 접사(close-up) 렌즈는 보정되지 않은 1매짜리 메니스커스(Meniscus)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초점을 잡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된 렌즈를 접사가 가능하도록 바꿀 수 있는 저렴한 방법이다.

무한초점(afocal) 보조렌즈는 좀더 복잡하다. 갈릴레오식 망원경 악세서리(Galilean telescope accessory)라고도 하는데, 렌즈앞에 설치하여 렌즈의 유효 초점거리를 바꿔주지만 촛점면은 변하지 않는다. 망원보조렌즈와 광각보조렌즈, 두가지가 있다. 망원형은 전면에 확대군, 후면은 축소군을 배치하여 영상의 크기를 키우는 보조렌즈이며, 광각형은 이와 반대로 전면에 축소군, 후면에 확대군을 배치하여 영상의 크기를 축소한다. 두가지 모두 렌즈 군간의 간격을 전후면군의 초점거리 차이만큼 떨어뜨림으로써 초점면을 유지한다.

무한초점 보조렌즈는 주렌즈 공식에 통합되지 않아 영상의 품질을 떨어뜨리므로, 중요한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아마추어 영화나 비디오, 카메라용으로 개발되어왔다. 줌렌즈가 나오기 전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렌즈교환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줌렌즈 시대에 들어와서는 낮은 비용으로 줌 적용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Franke and Heidecke의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120 롤필름 이안반사식 카메라와 같은 고정 초점식렌즈를 위해 개발된 무한초점 보조렌즈 중에는, 예를 들어 자이스(Zeiss) Tele-Mutar 1.5× 와 Wide-Angle-Mutar 0.7× (1963) 와 같이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도 비싼 것도 있었지만, 영상 품질 면에서는 진짜 교환식렌즈에 미치지 못했다. 부피가 큰 이 Mutar 보조렌즈를 사용하면 롤라이플렉스 3.5E/C의 Heidosmat 75mm f/2.8 렌즈나 자이스 플래나(Zeiss Planar) 75mm f/3.5 렌즈를 115mm 혹은 52m 로 바꿀 수 있었다. 무한초점 보조렌즈는 현재 디지털 똑딱이(point-and-shoot) 카메라에도 사용되고 있다.  
Zeiss Tele-Mutar and Wide-Angle-Mutar        Schneider Retina-Xenon C system

1954년 생산된 접이식 렌즈식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인 코닥 레티나(Retina) IIIc and IIc 의 경우, 보조렌즈를 교환가능 렌즈 "콤포넌트"이란 아이디어로 극단적으로 확대하였다. 이 시스템은 표준렌즈인 슈나이더(Schneider) Retina-Xenon C 50mm f/2 렌즈(더블 가우스식) 의 전면군을 슈나이더 Retina-Longar-Xenon 80mm f/4 망원렌즈 또는 슈나이더 Retina-Curtar-Xenon 35mm f/5.6 광각 렌즈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콤포넌트 방식은 재사용가능한 후면군이 매우 제한적이며, 렌즈가 극히 크고 거리가 제한되며 완전 교환가능렌즈보다 복잡하지만, 렌즈교환이 제한되었던 주 요인은 Retina의 interlens Synchro-Compur 리프셔터이었다.

줌렌즈의 등장(The zoom lens arrives)


줌렌즈는 망원렌즈의 자연적 결과로 탄생했다. 망원렌즈는 전면 확대부와 후면 축소부의 거리를 변화시키면 확대비율이 변하는 렌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초점 및 수차 최적화가 흐뜨러지고 실타래형 왜곡(pincushion distortion)을 유발하였다. 진정한 줌렌즈가 되려면 초점면을 적당한 위치로 물려둘 수 있는 보정 렌즈군(compensating cell)이 필요한데, 실용적이 되기까지 수십년이 필요하였다. 1929년에서 1932년에 등장한 전문 영화용 카메라를 위한 초기 줌렌즈는 "Traveling," "Vario" 및 "Varo" 렌즈로 불리기도 했다.

일반카메라용 최초의 줌렌즈는 1959년에 개발된 보이그랜더(Voigtländer) Bessamatic 시리즈 35mm 리프셔터 SLR용 Voigtländer Zoomar 36-82mm f/2.8 렌즈(미국/독일)이었다. 이 렌즈는 미국 Zoomar가 설계하고 독일 Kilfitt 에서 제조하였다. Zoomar 36-82 는 초점거리에 비해 매우 크고 무거웠다. 

Voigtländer-Zoomar 36-82mm f/2.8 

초기 줌렌즈의 승자는 Frank Back (미국/독일)으로, 16mm 영화 카메라용 Zoomar 17-53mm f/2.9 (1946)을 필두로 이후의 줌렌즈 개발 및 대중화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초기 줌렌즈의 영상품질은 아주 좋지 않았다. Zoomar 렌즈가 "아주 썩었다(pretty rotten)"라고 말해지곤 했을 정도였다. 

일본 광학산업의 번성(The rise of the Japanese optical industry)


일본의 사진렌즈 생산은 1931년 Konishiroku(코니카, Konica)의 소형 건판카메라인 Tropical Lily용 Konishiroku  Hexar 10.5 cm f/4.5 렌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일본은 빠르게 발전하여 1950년대에는 매우 고품질의 렌즈를 생산하게 되었다. LIFE 지의 사진기자인 David Douglas Duncan이 니코르(Nikkor) 렌즈를 "발견"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1954년 일본 카메라산업협회(JCIA,  Japan Camera Industry Association)에서는 일본의 전후 경제부흥의 일환으로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고품질 사진 산업 개발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하여 일본 기계디자인센터(JMDC, Japan Machine Design Center)와 일본 카메라검사협회(JCII, Japan Camera Inspection Institute)는 수출허가서 발급 전 검사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독창성없는 복제품과 조잡한 사진기기의 수출을 금지하였다.

1950년대 말이되자 일본은 독일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니콘 F 35mm SLR (1959) 용 Nippon Kogaku Nikkor-P Auto 10.5 cm f/2.5 렌즈는 뛰어난 선예도와 보케를 가진 사상 최고의 인물사진용 렌즈로 명성을 얻었다. 이 렌즈는 Nikon S 시리즈 거리계연동 카메라용 Nikkor-P 10.5 cm f/2.5 (1954)로 개정되고, 1971년 광학적으로 개선된 후 2006년까지 시판되었다.

Nippon Kogaku Nikkor-P Auto 10.5cm f/2.5

1963년에는 35mm SLR인 Topcon RE Super/Super D과 함께 Tokyo Kogaku RE Auto-Topcor 5.8 cm f/1.4 렌즈가 출시되었다. 이 Topcor 렌즈는 사상 최고의  표준렌즈라는 명성을 얻었다. 니코르(Nikkor)와 탑코르(Topcor)
는 일본 광학산업이 독일을 앞질렀다는 확실한 징표였다. 특히 탑콘(Topcon)은 R-Topcor 300 F2.8 (1958) 렌즈와 R-Topcor 135 F2 (1960) 등의 매우 빠른 렌즈를 생산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중 300mm 렌즈는 1976년까지도 계속 생산되었다. 독일은 100여년 간 광학분야의 지도자였으나 2차세계대전이후 보수적으로 변하였고, 목표나 혁신 혹은 시장상황에 대한 대응 등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1962년에는 일본의 카메라 생산이 독일을 추월하였다.

초기 일본 렌즈의 설계는 그저 그런 정도였다. 헥사(Hexar)는 테사르(Tessar) 계열이었고, 니코르(Nikkor)는 조나(Sonnar)계열, 탑코르(Topcor)는 더블가우스(Double Gauss) 계열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 이 한계가 극복되었다. Nikon F 용 Nippon Kogaku Auto-Nikkor 8.5–25 cm f/4-4.5 (1959) 는 최초의 35mm 카메라용 망원 줌렌즈 였다. (두번째는 Zoomar를 본딴 zoomNikon F)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인 Canon 7 용 초대형 구경의 Canon 50mm f/0.95 (1961)은 사진사의 필수 렌즈가 된 최초의 일본 렌즈였고, 처음에는 Nikkorex Zoom 35mm SLR에 장착되었다가 나중에 Nikon F용으로 발매된 Nippon Kogaku Zoom-Nikkor Auto 43-86mm f/3.5 (1963)는 평범한 영상품질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대중적인 줌렌즈였다. 

 Nippon Kogaku Zoom-Nikkor Auto 43-86mm f/3.5

이 시점에서 독일 렌즈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60년대의 영업부진 후, 1970년대에 들어서는 킬피트(Kilfitt), 라이츠(Leitz), 마이어(Meyer), 슈나이더(Schneider), 슈타인하일(Steinheil), 보이글랜더(Voigtländer), 자이스(Zeiss) 등 유명 독일 렌즈 브랜드들은 파산, 합병되거나, 동아시아로 생산을 맡기거나 부티크 브랜드로 바뀌었다. 이 시점에서 렌즈 설계 종류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관습도 사라졌다. 일본인들이 이를 싫어하여, 이후 생산된 렌즈에는 브랜드 명과 코드 만을 사용하였다.

JDMC/JCII 테스트 프로그램은 그 목적을 달성하여 1989년 종료되고, 금색 "PASSED" 스티커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JCIA/JCII 는 2002년 카메라영상제품협회(CIPA, Camera & Imaging Products Association)로 재탄생하였다.

반사굴절식 렌즈(The catadioptric "mirror" lens)


반사굴절식 카메라렌즈(Catadioptric photographic lense, 간단히 CAT)는 로렌트 카세그레인(Laurent Cassegrain)의 카세그레인 망원경(Cassegrain telescope,1672)을 비롯한 여러가지 역사적인 발명, 예를 들어 반사굴절식 만진 거울(Catadioptric Mangin mirror, 1874), 슈미트 카메라(Schmidt camera, 1931), 막스토프 망원경(Maksutov telescope,1941) 등을 조합한 렌즈이다. 카세그레인 시스템은 광경로를 접을 뿐 아니라, 볼록거울 2차경이 망원렌즈로 작용하여 일반 렌즈보다 초점거리가 훨씬 길면서도, 초점을 1차경 뒤쪽(필름면)에 맺을 수 있다. 반사굴절식 시스템은 구면반사경이 구면수차제거용 렌즈와 결합되어 있어, 일반적인 반사경 관련 광학오류를 수정함으로써, 카메라와 같이 대구경의 수차없는 장비용으로 적합하다.

최초의 범용 굴절반사식 카메라 렌즈는 드미트리 막스토프의 1944년 작 MTO (Maksutov Tele-Optic) 500mm f/8 이다. 이 렌즈는 막스토프-카세그레인 방식으로 1941년 제작된 막스토프 망원경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 이후 슈미트(Schmidt) 방식이나 고체-반사굴절식(solid catadioptric) 등 여러가지 방식의 설계가 뒤따랐다. 1979년 탐론(Tamron)에서는 뒷면을 은도금한 거울을 사용하여 소형 경량의 반사굴절식 렌즈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 만진(Mangin) 거울 방식은 빛이 거울 유리 자체를 통과하면서 수차가 보정하는 방식으로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반사굴절식 카메라 렌즈의 전성기는 비점수차제거형 굴절식 망원렌즈(apochromatic refractive telephoto lense)가 등장하기 이전인 1960년대 및 70년대였다. 초점거리 500mm 짜리 CAT가 흔했으며, 일부는 1979년의 Minolta RF Rokkor-X 250mm f/5.6 (만진 거울방식으로 크기는 거의 50mm f/1.4 수준) 와 같이 250mm 이하인 것도 있었다. 현재도 1000 mm 이상의 렌즈는 CAT 방식이 가장 적당하다.

Minolta RF Rokkor-X 250mm f/5.6

전용 반사식 카메라 렌즈는 1980년대에 여러가지 이유로 인기를 잃었다. 그러나, 주반사경이 14인치에서 20인치 혹은 그 이상되는 상용 막스토프-카세그레인, 슈미트-카세그레인 천문 망원경은 여전히 판매되며, 카메라 어댑터를 부착하면 4000mm f/11 to f/8 정도에 상당한다.

줌렌즈의 전성기(The zoom lens comes of age)


초기 줌렌즈의 품질은 대부분 그저 그런 정도 혹은 별로 좋지 않았다. 따라서 텔리비전이나 아마추어 영화카메라등 저해상도 기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진용으로는 불충분했다. 예를 들어, Nippon Kogaku에서는 최초의 대중적 줌렌즈인 Takashi Higuchi의 Zoom-Nikkor Auto 43-86mm f/3.5 에 대해 일반적인 영상품질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사죄하듯 공지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개선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1974년 Ponder & Best (Opcon/Kino)에서 발매된 Vivitar Series 1 70-210mm f/3.5 Macro Focusing Zoom 렌즈는 35mm 줌렌즈를 위한 최초의 전문가급 품질의 근접초점 "마크로"렌즈로 널리 환영을 받았다. Ellis Betensky의 Opcon Associates 에서는 최신 디지털 컴퓨터의 계산을 통해 Series 1의 15매/10군/4그룹 공식을 완성하였다. 1960년대의 지리한 수작업 계산에서 벗어나자, 초기의 광학기술자들은 꿈도 꾸기 힘들었던 다양하고 고품질의 설계가 가능해졌다. 현대식 컴퓨터 설계기반 줌렌즈는 너무나 복잡하여 그 이전 인간이 수작업으로 설계했던 어떤 렌즈와도 거의 닮은 점이 없다.

Vivitar Series 1 70-210mm f/3.5

Series 1의 광학 줌 동작은 Zoomar와 같은 거의 모든 초기 줌 렌즈와 달랐다. Zoomar는 "광학적으로 보정된(optically compensated)" 줌이었다. 줌용 그룹과 초점면 보정 그룹은 상호 고정되어 있어, 고정되어 있는 그룹 사이를 함께 이동하였다. 반면 Series 1은 "기계적으로 보정된(mechanically compensated)" 줌이었다. 즉 줌용 그룹은 초점면 보정 그룹과 캠(cam)으로 연결되어 이동속도가 달랐다. 이처럼 광학적 설계의 자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다 더 복잡해 진 것이다.

Series 1은 외부 조정방식에서도 Zoomar에 비해 기계적으로 좀더 복잡했다. 초기 줌렌즈는 대부분 초점 조절용 링과 줌거리 조절용 링이 분리된 "투터치" 줌이었다. 반면 Series 1은 링이 하나로서 돌리면 초점 조절, 밀고 당기면 줌이 되는 "원터치" 줌이었다. 잠시동안(1980-1985) 원터치 줌은 사용편이성으로 인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85년 Minolta Maxxum 7000 (일본에서는 Alpha 7000, 유럽에서는 7000 AF)를 시작으로 렌즈교환식 자동초점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초점조절과 줌조절이 분리되어야 했고, 그 즉시 투터치 줌이 대세로 복귀했다.

1977년에는 Fuji Fujinon-Z 43-75mm f/3.5-4.5 가 렌즈교환식 카메라인 Fujica AZ-1 35mm SLR에서 단초점 렌즈대신 주 렌즈로 판매될 정도로 줌렌즈가 진화하였다. 1980년이 되면서 35-70mm 정도의 빠르게 프레임을 잡을 수 있는 "슈퍼노멀" 줌이 50mm 렌즈를 거의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70-210mm 망원줌렌즈가 세컨드 렌즈로 인기가 높았음에도 그다지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높은 카메라였던, 최초의 줌렌즈 장착형 35mm 똑딱이(point-and-shoot) 카메라는 Asahi Optical Pentax의 IQZoom (1987) 으로서, Pentax Zoom 35-70mm f/3.5-6.7 Tele-Macro 렌즈가 탑재되었다.

Fuji Fujinon-Z 43-75mm f/3.5-4.5

두번째 기념비적 줌렌즈는 1981년의 Sigma 21-35mm f/3.5-4 이었다. 이 렌즈는 최초의 35mm SLR용 초광각 줌렌즈였다. 이 이전에는 초광각 직교렌즈(rectilinear super-wide angle lense), 역초점(retrofocus) 렌즈 및 줌렌즈의 복잡성을 모두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시그마 사의 11매/7군/3그룹 전가동 렌즈는 컴퓨터기반 설계 및 멀티코팅의 승리였다.

Sigma 21-35mm f/3.5-4

Sigma 줌렌즈의 광학적 복잡성과 함께 세개의 그룹이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복잡성은 최첨단 제작 기술이 필요하였다. 초광각 줌렌즈는 대부분의 현대 디지털 SLR의 경우, 이미지 센서가 대부분 35mm 보다 작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 동등한 화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점거리가 훨씬 짧아야하지만, 기존의 35mm SLR 마운트를 계속 활용하기 위해서는 백포커스(back-focus) 거리가 동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렌즈교환식 줌렌즈 생산은 1982년을 기점으로 단초점렌즈 생산을 추월하였고 오늘날에는 어디에나 줌렌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줌렌즈에 의한 단초점렌즈의 진화(The zoom influenced prime lens)


줌렌즈의 매우 복잡한 내부 운동은 단초점 렌즈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고정식 카메라의 단초점렌즈를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렌즈 전체를 피사체 가까이 이동시켜야 했다.(주름식 카메라의 경우, 렌즈를 앞쪽으로 전진) 그러나, 수차 보정을 위한 구성렌즈간의 간격은 피사체 거리별로 다른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시대의 일부 단초점렌즈는 "부유 렌즈(loating elements)" -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출 때 줌렌즈 방식으로 일부 렌즈군을 이동시킴 -를 채택하였다. 예를 들어, 역초점 광각렌즈는 가까운 거리에서 구면수차와 비점수차가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처리하기 위하여 Nikon 35mm SLR를 위해 1967년 개발된 Nippon Kogaku Nikkor-N Auto 24mm f/2.8 렌즈는, 후면에 있는 3개의 렌즈가 전체 렌즈와는 별개로 이동하도록 하여, 30cm 정도의 근접 초점시 대구경상태에서도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Nippon Kogaku Nikkor-N Auto 24mm f/2.8

1977년에 출시된 Kiyoshi Hayashi's Nippon Kogaku Nikkor 200mm f/2 ED IF 와 같은 단초점렌즈의 경우 "내부 초점조절(internal focusing)"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체 렌즈를 이동시키지 않고, 내부에 있는 일부 렌즈만 이동시킴으로서 초점을 맞추는 동안에 무게 중심이 이동되지 않도록 하였다.

Nippon Kogaku Nikkor 200mm f/2 ED IF

내부초점은 원래 전문 기자, 스포츠, 야생 사진 전문가 등을 위한 무거운 대구경 망원렌즈에 인기가 높았다. 조작이 쉬웠기 때문이다. 내부초점 방식은 특히 자동초점시대에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전원소비도 줄어들고 초점조절용 모터의 부담도 줄기 때문이다.

참고로 부유 렌즈(floating elements)와 "내부 초점조절(internal focusing)"은 줌효과를 만들게 되어, 최근접 거리에 대한 실질 초점길이가 표시된 초점거리보다 1/3정도 짧아질 수 있다.

보케(Bokeh)


보케(Bokeh)란 영상에서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부분에 대한 주관적인 품질이다. 전통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수작업 계산으로 렌즈를 설계할 때는 초점이 맞는 부분에 대한 수차보정에만 신경을 쓰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해진 심도를 벗어나면 수차가 중첩되어 렌즈의 유형에 따라 다른 영상이 만들어진다.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의 영상의 차이는 전체적인 영상의 품질에 대한 느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모든 심미적인 판단과 마찬가지로, 보케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객관적인 테스트 방법도 없다. 그러나, Rapid-Rectilinear/Aplanat 렌즈와 더블가우스(Double Gauss)와 같은 대칭 렌즈의 경우 보케가 기분을 좋게한다고 여겨지고, 역초점 광각(retrofocus wide angle)렌즈나 망원렌즈와 같은 비대칭 렌즈의 경우 거칠다고 평가된다. 2차 거울의 광경로 차단으로 인하여 생기는 반사식 렌즈의 "도넛" 형 보케는 평가가 양극단으로 나뉜다.

1970년대에 강력한 컴퓨터가 증가하면서 일본의 광학회사에서는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초기 결과가 Minolta 35mm SLR 을 위한 1978년의 Minolta Varisoft Rokkor-X 85mm f/2.8 렌즈였다. 이 렌즈는 초점이 맞는 부분의 수차에는 영향을 주지 않은 상태로, 부유 렌즈군(floating elements) 을 사용하여 렌즈의 구면수차를 고의로 덜 보정하여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드러운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어주는 렌즈이다. 이 Varisoft 렌즈 및 이후의 여러가지 연초점 인물렌즈(soft focus portrait lense)들은 벳시바르 인물렌즈가 우연히 얻었던 품질을 재현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참고로 Varisoft는 부유 렌즈군을 제외하면 테사르(Tessar) 렌즈이다.

Minolta Varisoft Rokkor-X 85mm f/2.8

보케는 매우 고품질 렌즈의 경우 일반적인 렌즈설계요소이다. 그러나, 보케는 매년 수백만대씩 팔리고 있는 센서가 작은 디지털 똑딱이 카메라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카메라들은 초점거리가 짧고 구경이 작아 심도가 매우 깊어서 아웃포커스되는 영역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품질 수준의 향상(Improving standards of quality)


옛날 렌즈가 더 좋았다는 전통주의자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렌즈는 점점 향상되어 왔다. 평균적으로 현재의 렌즈는 과거의 렌즈보다 더 선명하다.

이를 증명할 가장 쉬운 방법은 지난 200년간 표준적인 인쇄물 크기는 동일한데도 카메라의 필름(센서)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줄었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인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비해 확대비율이 더 높음을 의미하고, 이는 현재의 렌즈가 옛날 렌즈보다 해상도가 높은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약 30cm 정도의 거리에서 1mm 당 5개의 줄을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24x36mm 필름으로 촬영하여 8x10 인치(약 20x25 cm)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약 8배 확대하므로, 렌즈 해상도가 최소한 1밀리미터당 40선 이상이 되어야 한다. APS 사이즈(약 16x24mm)의 디지털 SLR 센서용 렌즈의 경우, 8x10 인치에 선명한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밀리미터당 52개의 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렌즈가 어떻게 성능이 향상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렌즈설계를 위한 해석 수준을 아는 것이다. 19세기에는 수학적으로 3차 수차에 해당하는 자이델 수차(Seidel aberrations)와 기본적인 비점수차(anastigmatic) 보정을 처리하였다. 20세기 중반까지는 고품질 렌즈 생산을 위하여 5차 수차까지 계산해야 했으며, 현재의 렌즈는 7차 수차 해법이 필요하다.

참고로 이미 40-50년 전부터 최고의 사진렌즈는 아주 높은 품질(위에서 언급한 해상도의 최소 2배)을 갖고 있으므로, 20x30인치(약 50x75cm) 크기로 동일한 피사체를 직접 대조해 보지 않는한, 오늘날의 렌즈가 더 우월하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저가형 비구면렌즈(The inexpensive asphere)


일반적으로 렌즈는 표면이 구면이다. 그러나 구면렌즈는 중심축에서 벗어날 수록 들어오는 광선을 초점보다 앞쪽에 맺게 하며(구면수차, spherical aberration), 특히 광각렌즈나 대구경렌즈의 경우 심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포물선 등의 비구면(asphere) 렌즈요소를 사용하면 막을 수 있다. 이 사실은 1637년 René Descartes 에 의해 이미 이론적으로 증명되었지만, 비구면 표면의 가공은 극히 힘들었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저가의 대량생산형 몰딩방식의 유리 구면 렌즈요소를 사용한 최초의 카메라렌즈는 1982년 Kodak Disc 4000, 6000, 8000 등에 사용된 12.5mm f/2.8 렌즈였다. 이 렌즈는 밀리미터당 250선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렌즈는 4매인데, 3중렌즈 후면에 field-flattener 를 덧댄 형태이다. Kodak Disc 카메라는 매우 복잡하게 제작되었다. 아울러 리튬 밧데리, 마이크로칩, 자동 노출, 필름자동감기 등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가격은 $68 에서 $143 선이었다. 다만, 이 카메라의 필름은 250 lpm을 기록할 수 없었다.

Kodak (Disc) aspheric 12.5mm f/2.8

코닥은 1957년부터 뷰파인더에 대량생산형 플라스틱 비구면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에 $87.50 짜리 Ektramax (USA) Pocket Instamatic 110 카트리지 필름 카메라에는, 주조방식 플라스틱 비구면렌즈가 포함된 Kodak Ektar 25mm f/1.9 렌즈가 장착되어 있었다. 플라스틱은 장착용 테두리를 포함한 복잡한 형태도 쉽게 주조할 수 있다. 그러나 굴절률, 온도항상성, 기계적 강도 및 재료의 다양성 등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가 플라스틱보다 우월하다.

Kodak Ektar 25mm f/1.9

이와 같은 고정밀의 주조방식 플라스틱/유리 비구면 렌즈를 저비용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20세기 후반부터 렌즈 설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렌즈가 생산되었다.

줌렌즈의 승리(The zoom lens triumphant)


하나의 렌즈로 모든 것 - 적어도 가능하면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바램도 지난 25년간의 렌즈 설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85년의 Kino Precision Kiron 28-210mm f/4-5.6 렌즈는 최초의 카메라용 초점거리 비율이 매우 큰 "슈퍼줌" 렌즈이었다. 14매/11군의 Kiron 렌즈는 표준 광각에서 망원까지 확장할 수 있는 최초의 35mm SLR 줌렌즈로서, 크기/무게/가격 등을 적정선내에 들면서도(129×75 mm, 840 g, 72mm filter, US$359) 28, 35, 50, 85, 105, 135, 200 mm 단렌즈를 대체할 수 있었다. 

Kiron 28-210mm f/4-5.6 (on a Nikon FM2N)

초기의 35mm SLR 줌렌즈의 초점거리 비율은 3:1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영상 품질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학적으로 복잡해지고 제작 허용도가 엄밀해짐에도 불구하고 줌렌즈는 더 다양해졌다. 영상 품질에 약간의 타협이 필요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35mm SLR을 위한 아마추어용 편리한 슈퍼줌(때로 비율이 10:1을 넘으며, 4-5 그룹이 독립적으로 움직임)이 널리 사용되었다. 현재의 아마추어 디지털 SLR에서도 표준렌즈로 남아 있다. 탐론(Tamron) AF18-270mm f/3.5-6.3 Di II VC LD Aspherical (IF) MACRO 의 경우엔 2008년에 15배 비율을 달성하였다. 또한 슈퍼줌은 디지털 똑딱이(point-and-shoot) 카메라와 함께 수백만개가 판매되고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렌즈에 대한 갈망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현재 대형 필름 사진사들이 계속 사용하고 있는 "전환(Convertible)" 렌즈는 서로 분리해서도 사용할 수 있고 결합해서도 사용할 수 있어 3개의 렌즈 역할을 하는데, 이는 적어도 1894년 Zeiss Convertible Protar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의 토키나(Tokina) SZ-X 70-210mm f/4-5.6 SD 줌렌즈는 또다른 종류의 편리함을 가져왔다. 이 렌즈는 최초의 극소형줌(ultra-compact zoom (85×66 mm, 445 g, 52mm filter))으로서 이전의 70-210mm 줌에 비해 크기가 절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3세대 Vivitar Series 1 70-210mm f/2.8-4 (1984) 렌즈는 139×70 mm, 860 g, 62mm filter 이었다. 토키나(Tokina)는 Kiron 28-210mm 와 같이 12매/8군/3그룹 으로 소형 최대구경을 가졌지만, 저분산유리와 새로운 양방향 비선형 줌 액션(bidirectional nonlinear zooming action)을 추가하여 크기와 무게를 최소화하였다.

Tokina SZ-X 70-210mm f/4-5.6 SD 

소구경 35mm 포맷 렌즈는 1980년대 스냅샷 품질(snapshot quality) 및 고민감 ISO 400 칼라필름과 내장 플래시 장착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실용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소구경 줌렌즈를 장착한 똑딱이 카메라가 가장 흔한 카메라가 되었다. 컴팩트한 변동구경 줌렌즈(일부는 슈퍼줌렌즈)는 현재의 디지털 똑딱이 카메라에도 표준렌즈로 남아 있다. 이때쯤 줌렌즈의 영상 품질은 표준렌즈의 품질과 비슷해졌다.

참고로 현재의 슈퍼줌(superzoom) 렌즈중에는 "parfocal(초점면이 동일한)"이 아닌, 즉, 진짜 줌렌즈가 아닌 것이 많다. 이들은 "varifocal(초점거리에 따라 초점위치가 이동)"로 설계와 제작이 쉽다. 하지만 이러한 렌즈는 자동초점 카메라에 설치되어 초점 이동이 일어나더라도 자동으로 초점조절이 되므로 일반 사용자들은 알기 힘들다.

자동초점 렌즈(The autofocus lens)


자동초점은 주로 전기-기계적인 문제이고 광학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렌즈 설계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만 AF로 인한 변화라면 기계적 적응이다. 즉, "내부 초점조절(internal focusing)"의 대중화, "투터치" 줌 의 재등장, AF 모터나 구동축, 그리고 렌즈 내부에 기어 및 전기제어 칩 내장 등의 변화이다.

그러나, 기록을 위하여, 사진 카메라용 최초의 자동초점렌즈는 Konica C35 AF 똑딱이 카메라(1977)에 탑재된 Konishiroku Konica Hexanon 38mm f/2.8 이었다. 최초의 SLR 카메라용 자동초점렌즈는 즉석필름 SLR인 Polaroid SX-70 Sonar (1978)에 탑재된 116mm f/8이었다. 최초의 렌즈교환식 자동초점 SLR 렌즈는 Ricoh AF Rikenon 50mm f/2 (1980, 펜탁스 K 마운트)로서 렌즈 위쪽 상자에 수동식 전자 거리계 자동초점시스템(passive electronic rangefinder AF system)이 붙어 있었다. 최초의 전용 자동초점 렌즈 마운트는 5개의 접점을 가진 K-F 마운트로서, TTL 콘트라스트 감지 AF 시스템(contrast detection AF system)이 달린 Asahi Optical Pentax ME F (1981)에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이 카메라에 부착된 렌즈는 SMC Pentax AF 35mm-70mm f/2.8 줌렌즈였다. 

최초의 내장형 TTL 자동초점 SLR 렌즈는 Opcon/Komine/Honeywell Vivitar Series 1 200mm f/3.5 로서, 이 렌즈 아래쪽 박스에 TTL 수동 페이즈 감지 AF 시스템(passive phase detection AF system)이 달려 있었다. 최초의 완벽한 자동초점렌즈 라인은 Minolta Maxxum 7000 (1985, Japan) 35mm SLR 및 TTL 수동 페이즈 감지 AF 시스템과 함꼐 소개된 12개의 미놀타 AF A 마운트 렌즈(24mm f/2.8, 28mm f/2.8, 50mm f/1.4, 50mm f/1.7, 50mm f/2.8 Macro, 135mm f/2.8, 300mm f/2.8 APO, 28-85mm f/3.5-4.5, 28-135mm f/4-4.5, 35-70mm f/4, 35-105mm f/3.5-4.5 and 70-210mm f/4)이었다. 

진동방지 렌즈(The image stabilized lens)


아무리 고급 광학렌즈를 사용할지라도 결함있는 사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노출 오류는 1970년대 전기식 자동노출로 해결되었고, 초점 오류는 1980년대 자동초점 시스템으로 해결되었다. 

1994년 35mm 똑딱이인 니콘 Zoom-Touch 105 VR 에 설치된 38-105mm f/4-7.8 렌즈가 최초의 진동방지장치가 내장된 최초의 소비자용 렌즈이었다. 이 렌즈의 진동방지 시스템은 카메라의 흔들림을 감지하여 반대작용을 함으로써, 삼각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정도의 느린 속도에서도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진동방지가 광학이 아닌 전기-기계적 발전이었지만, 1990년대의 가장 새로운 기능이었다.

1995년 Canon EF 75-300mm f/4-5.6 IS USM 은 최초의 진동방지방치가 내장된 렌즈교환식 렌즈였다. 진동방지는 처음에는 매우 고가여서 대부분 전문 사진사만 사용하였으나, 2006년에 아마추어 디지털 SLR 시장에도 파고들었다. 그러나, Konica Minolta Maxxum 7D 디지털 SLR은 2004년에 바디기반 진동방지장치를 채택했으며, 이로 인해 현재 렌즈기반이 좋은지 바디기반이 좋은지 기술적, 마케팅적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회절광학렌즈(The diffractive optic lens)


컴퓨터 설계, 비구면렌즈, 멀티코팅, 고굴절저분산유리 등의 도움으로, 모노크롬 수차는 거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 물리적 법칙에 따른 절대적 회절한계(diffraction limit)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분야에서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는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2001년에 출시된 Canon EF 400mm f/4 DO IS USM 렌즈는 소비자용 카메라(캐논 EOS 35mm SLR)용 최초의 회절광학렌즈였다. 일반적으로 사진카메라는 굴절식 렌즈(가끔 반사 거울)를 영상 형성용 광학시스템으로 사용한다. 400 DO 렌즈는 동심원형 회절격자(concentric circular diffraction gratings)를 포함하는 다중레이어 회절요소(multilayer diffractive element)가 있는데, (굴절과 비교해) 반대방향의 색분산 특성을 이용하여 보다 낮는 분산 유리와 적은 수의 비구면과 작은 부피로 색수차 및 구면수차를 보정한다.

Canon EF 400mm f/4 DO IS USM

2010년 현재 일반 소비자용 카메라를 위한 고가의 전문가급 수준의 회절광학렌즈는 단 2가지만 있지만, 이 기술의 유용성이 알려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좀더 다양한 렌즈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시대의 렌즈(Lenses in the digital era)


얼핏 생각해 보면 디지털 사진은 렌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은 영상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부분일 뿐 영상을 만드는 것과 관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처리기법은 영상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04년 Kodak (Sigma) DSC Pro SLR/c 디지털 SLR은 110개 렌즈에 대한 광학성능 프로파일을 탑재하여 영상을 기록하는 과정중에 실시간으로 이들 렌즈에 대한 횡방향 색수차(lateral chromatic aberration)를 수정하였다. 또한 2004년 DO Labs DoX Optics Pro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모듈이 출시되었는데, 특정한 카메라와 렌즈 정보를 탑재하여 왜곡, 비네팅, 흐려짐(blur), 횡방향 색수차 등을 후처리에서 수정할 수 있다.

필름 시절에 영상 품질이 허용범위에 들지 못했던 렌즈들이 디지털 시대에는 허용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카메라에서 이들 렌즈의 결함을 자동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 마이크로포서드(Micro Four Thirds) 디지털 포맷에서는 자동 소프트웨어 영상처리가 표준기능이다. 2009년 Panasonic의 14-140mm f/4-5.8 G VARIO ASPH. MEGA O.I.S. 렌즈와 2010년 올림푸스(Olympus)의 M. Zuiko Digital 14-150mm f/4-5.6 ED 렌즈의 경우 광각설정에서 술통형 왜곡(barrel distortion)이 매우 심하지만, 각각 Panasonic LUMIX DMC-GH1 카메라와 Olympus Pen E-P2 카메라에서 자동적으로 이를 감소시키고 있다. 파나소닉(Panasonic) 14-140mm 렌즈는 색수차도 보정한다. (올림푸스는 아직 색수차를 보정하지 못하고 있다.)

====
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Camera_lens 를 번역한 문서중 마지막입니다. 첫부분은 여기를 보시고, 두번째는 여기를 보세요.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와 일안반사식카메라 12 그리고 이안반사식 카메라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진/카메라2011. 10. 26. 20:41
이 문서의 앞부분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카메라 렌즈의 역사 및 기술 개발(History and technical development of photographic camera lenses)


완벽한 렌즈라면 한점을 한점으로 (상대적 공간에서 절대적 정확도 이내로) 상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크기나 무게, 비용 등 실질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물리학 법칙, 우리 지식의 한계, 공법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완벽한 렌즈는 불가능하다. 카메라 렌즈 역사중 최초의 100년은 렌즈의 여러가지 렌즈 수차(optical aberration)를 무난한 정도 까지 떨어뜨리면서, 광학 지식이 천천이 축적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100년은 그 지식을 기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렌즈가 다양해지면서도 다재다능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아래에 있는 그림에서 렌즈 곡률이나 간격 등은 모두 개략적이다. 재료도 유리가 아닐 수도 있다. 즉, 이 그림만으로는 실제 렌즈를 제작할 수 없다. 참고로, 렌즈의 이름은 모두 상표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중 많은 렌즈가 아직 지적재산권에 걸려 있는 상태로, 이 글에서는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한다.

초기의 카메라 렌즈(The earliest photographic camera lenses)


카메라 렌즈의 역사는 월라스톤(Wollaston)의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로부터 시작된다. 1804년 영국의 윌리엄 월라스톤(William Hyde Wollaston)은 1매짜리 메니스커스 렌즈(Meniscus lens, 요철렌즈)를 발명하였다. 처음에는 안경에 사용되었다. (자신이 원시라면 안경알을 시험해 보시길) 이 렌즈는 상당히 넓은 범위(f/16에서 약 50° 정도)에서 어느 정도 뚜렷한 상을 맺는 최초의 렌즈였다. 월라스톤은 1812년 이 렌즈를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장착시켰다.

메니스커스 요철렌즈는 오목한 면을 앞쪽으로 하고 그 앞에 조리개를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사진용 렌즈로 불리우게 되었다. 프랑스의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최초의 사진 기법인 "heliography"을 시험한 몇몇 카메라 옵스큐라에 이 렌즈를 부착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역사 참조) 메니스커스 렌즈는 1550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델라 포스타(Giambattista della Porta)가 카메라 옵스큐라에 부착한 간단한 양면볼록렌즈(biconvex lens)의 한계였던 상면만곡(field curvature)을 해결하였다. 참고로, 니엡스는 1828년까지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다. 즉, 1827년 경 역청(bitumen)을 사용한 최초의 사진을 촬영할 때는 양면볼록 렌즈를 사용했다. 메니스커스 렌즈는 코닥의 베스트셀러였던 브라우니(Brownie)와 같이 간단한 박스형 사진기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월라스톤의 메니스커스 (Meniscus, 요철)렌즈 

니엡스와 루이스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프랑스)는 동일한 업자(샤를 세발리에, Charles Chevalier, 프랑스)로부터 렌즈를 공급받았다.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사진도 메니스커스(Meniscus)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하여 실험하였다. 하지만, 유리는 빨강 스펙트럼에서 파랑 스펙트럼으로 갈수록 굴절률(refractive index)이 커지고, 그 결과 파란색은 앞쪽에 초점이 맺히고, 빨강색은 상 주변에 무지개 장식 같은 얼룩을 만들게 된다. 이는 색 수차(chromatic aberration)에 의한 영향이다. 메니스커스 렌즈에는 이와 같은 색 수차를 보정할 방법이 없어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다게레오타입은 파란색에 감광하는데, 사람의 눈은 주로 노란색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세발리에(Chevalier)는 1829년 돌랜드(Dollond)의 아크로매트 이중렌즈(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원래는 망원경용)를 사용하도록 제안했다. 이 렌즈는 원래 메니스커스 렌즈보다 선명도가 떨어졌지만, 굴절률이 낮고 분광(dispersion)이 낮은 크라운(crown (소다석회, soda-lime)) 렌즈와 굴절률이 높고 분광(dispersion)도 높은 플린트(flint (납, lead)) 렌즈를 결합함으로써, 개별 색수차를 상쇄시키고 파란색과 노란색을 한군데에서 초점이 맞도록 한 렌즈이다.

현대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약 1900년 이후)는 파란색과 빨간색-특히 486 / 656 나노미터-을 한 점에 모으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존 돌랜드(John Dollond, 영국)가 1754년에 이 사실을 발견하여,1758년에 영국 왕립 학회(British Royal Society)로부터 코플리 메달(Copley Medal)을 수상하였지만,(1966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색수차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음) 아크로매트(Achromat) 렌즈를 개발한 사람은 1729년 체스터 홀(Chester Moor Hall)이었다.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 렌즈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 렌즈는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공식 다게레오타입 설명서에 지정된 렌즈였다.  세발리에는 1839년 말부터 아크로매트 렌즈에 메니스커스 렌즈를 추가하여, 상면만곡(field curvature)과 색수차(hromatic aberration)를 조절함으로써, 19세기 야외용 표준 렌즈인 아크로매트 풍경(Achromat Landscape)렌즈를 개발하였다.

세발리에의 아크로매트 풍경(Achromat Landscape)렌즈

벳시바르 인물 렌즈(Petzval portrait lens)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최대구경이 f/16 으로, 야외 다게레오타입 촬영에 20-30분 소요될 정도로 느렸다. 그래서 1840년 프랑스 국가산업진흥회(Society for the Encouragement of National Industry)에서는 밝은 렌즈를 국제공모하였다. 조셉 벳시바르(Joseph Petzval, 현재 헝가리)은 광학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수학교수였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의 "인간 컴퓨터(human computer)"의 도움을 받아 다게레오타입 인물촬영(daguerreotype portrait)에 적합할 정도로 빠른 렌즈에 도전하였다.

그는 1840년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 개발에 성공하였다. 전면은 접합식 아크로매트(색지움) 렌즈, 후면은 간격을 떨어뜨린 아크로매트 렌즈로 구성된 4매 렌즈로, 최초의 대구경(f/3.6) 인물용 렌즈였다. 그늘진 야외에서 다게레오타입 노출시 1-2분 정도 걸렸다. 1851년 개발된 콜로디온(colloidion ) 습판식에 사용할 경우 실내에서도 1-2분 정도로 가능하였다. 하지만 벳시바르 인물렌즈는 다른 렌즈보다 훨씬 우수했음에도 국수주의로 인하여 상을 타지 못했다.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

초점거리 150mm인 벳시바르 렌즈는 1841년에 원뿔형 금속제 보이그랜더(Voigtländer, 현재 오스트리아) 카메라에 탑재되어 원형 다게레오타입을 촬영하였다. 보이그랜더-벳시바르는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를 변형한 것이 아닌, 사진 촬영 전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카메라와 렌즈였다. 이 벳시바르 인물렌즈(Petzval Portrait)는, 그후 거의 100년간 가장 뛰어난 인물사진용 렌즈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렌즈에는 심각한 상면만곡(field curvature)오차와 비점수차(astigmatism)가 있었다. 중심부(약 20°, 매우 중요할 경우 10°)는 선명하였지만, 바깥쪽은 급격하게 초점이 어긋나서 피사체 주위로 "유쾌한" 할로 현상(halo effect)이 나타났다. 벳시바르 인물렌즈는 현재에도 상면 만곡이 문제시 되지 않는, 좁은 각도의 투영렌즈로 인기가 높다. 

1841년 다게레오타입 보이그랜더(Voigtländer) 카메라 : source

이 렌즈는 여러 렌즈 회사들이 불법적으로 복사했고, 벳시바르은 피터 보이그랜더(Peter Voigtländer)와 로열티 문제로 추악한 분쟁에 빠져들어 결국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이 인물렌즈가 최초의 수학적 계산에 의한 렌즈였고, 1856년부터는 Hugo Adolph Steinhei(현대독일)에서 근무한 Ludwig von Seidel(현대 독일)에 의해 물리적 계산식이 잘 정립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약 반세기 동안 사진렌즈는 시행착오법을 통해 개발되었다. 렌즈 발전에는 퇴행적인 손해였다.

광학수차의 극복(Overcoming optical aberrations)


아크로매트 풍경렌즈(Achromat Landscape)는 또한 직선이 곡선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 왜곡이 아주 심했다. 사진이 개발된 초기에는 촬영시간이 오래 걸려 음직이지 않는 건물이 아주 중요한 사진 주제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 당시는 그림엽서가 19세기 중반에 개발되었을 정도로, 가보기 힘든 곳의 사진(특히 입체사진)은 안락한 집에서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기가 좋았다. 왜곡은 화각이 커질 수록 급격히 나빠졌다. 따라서 아크로매트 풍경렌즈는 광각 렌즈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광각렌즈(최대 92°, 실용적으로는 80°)는 1892년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미국) 이었으나, 최대구경이 f/16(실용적으로는 f/30)에 불과했다.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가 개발한 글로브 렌즈는 4매의 대칭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일 바깥쪽 면을 확장하면 완전한 구가 된다.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1850년, 대칭(Symmetry)을 사용하면 깨끗한 상을 방해하는 일곱가지 렌즈 수차(5가지 모노크롬 "자이델(Seidel)수차" (구면수차(spherical), 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와 2가지 색수차(축방향(axial) 및 횡방향(transverse))중에서 3개의 수차(직선왜곡, 코마, 횡방향 색수차)가 자동적으로 보정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제조상의 결함으로 인하여 중심이탈(decentration) 수차도 발생한다. 즉, 렌즈가 사양에 따라 제작되지 않았거나, 위치가 어긋나면 기대한 품질을 얻을 수 없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연마불량 혹은 위치 불량에 한층 민감해진다. 

영상의 품질을 떨어뜨리지만 수차 혹은 오류가 아닌 광학 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cos4θ만큼 상이 어두워지는 자연 비네팅(natural vignetting) 현상이나, 광각렌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가장자리 확대현상, 혹은 건물이 사다리꼴로 나타나는 현상 등은 3차원 피사체를 2차원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효과일 뿐, 물리적 오류가 아니다.

글로브 렌즈의 대칭식은 달메이어(Dallmeyer) Rapid-Rectilinear 렌즈와 슈타인하일(Steinheil) Aplanat 렌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우연히도 존 달메이어(John Dallmeyer)의 Rapid-Rectilinear 와 아돌프 슈타인하일(Adolph Steinheil)의 Aplanat는 거의 동일한 4매 대칭식으로, 1866년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들 렌즈는 구면수차(spherical) 및 상면만곡(field curvature) 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학수차를 제거한 f/8 렌즈였다. 굴절률(refractive index) 차이를 최대로 하되, 각 아크로매트에서 분광(dispersion)을 동일하게 유지한 것이 돌파구였다. Rapid-Rectilinear 과 Aplanat 은 그 당시 모든 필름 포맷에 대해 초점거리와 화각에 확장가능했으므로 이후 약 50년간 표준적인 중구경 범용렌즈로 사용되었다.

달메이어(Dallmeyer) Rapid-Rectilinear 렌즈와 슈타인하일(Steinheil) Aplanat 렌즈

아크로매트 풍경 렌즈(Landscape), 벳시바르 인물렌즈(Portrait), 해리슨 슈나이처 글로브 렌즈(Harrison & Schnitzer Globe) 및 Rapid-Rectilinear/Aplanat 등 4개의 렌즈는 19세기 사진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했던 렌즈였다.

조리개(Aperture stops)


조리개가 영상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1500년대에 알려졌다. 조리개구경이 너무 작아 회절이 심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조리개를 쓰면 여러가지 횡방향 수차(코마(coma), 비점수차(astigmatism),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 및 횡방향 색수차(lateral chromatic)를 일으키는 주변부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렌즈는, 횡방향 수차와 회절이 타협하는 중간정도의 구경에서 최상의 품질을 생성한다.

따라서 심지어 메니스커스(Meniscus)렌즈조차 영구적인 조리개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의 렌즈에 있는 조리개는 조정기능이 없었다. 작동되는 구경자체가 작은데다, 다게레오타입은 민감도가 낮아서 몇 분씩 노출해야했기 때문이다. 사진사들은 입사광을 줄임으로써 노출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1951년 콜로디온 습판식(wet colloidion process)이 개발되면서 노출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졌고, 이에 따라 조리개조절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조리개는 1858년의 존 워터하우스(John Waterhouse)의 이름을 딴 워터하우스 스톱(Waterhouse stop)이었다. 동판에 정해진 크기의 구멍이 뚫어진 형태로, 렌즈 옆에 있는 홈에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Dallmeyer Soft Focus Series B 렌즈와 워터하우스 스톱(좌측은 삽입된 모습)

1880년 경, 사진사들은 구경 크기가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조리개 조절기능이 훨씬 중요해졌고, 조절가능한 조리개가 표준 렌즈 기능이 되었다. 1880년대 아이리스 조리개(iris diaphragm)가 최초로 등장했고, 1900년대에는 표준 조리개가 되었다. 아이리스 조리개는 그 이전 19세기 초부터 예술가용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널리 사용되었고, 니엡스(Niépce)도 실험용 카메라에서 한번 이상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대식 렌즈에 사용되고 있는 조리개는 1858년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과 조셉 슈나이처(Joseph Schnitzer)에 의해 개발되었다. 해리슨과 슈나이처의 조리개는 열고 닫는 속도가 빨랐고, 이는 자동 조리개 카메라용 렌즈에 필수가 되었다.

현대 렌즈 조리개의 f값은  f/1, 1.4, 2, 2.8, 4, 5.6, 8, 11, 16, 22, 32, 45, 64, 90 등으로 표시되는데,1949년에 표준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영국식 시스템과 독일식 ( f/1.1, 1.6, 2.2, 3.2, 4.5, 6.3, 9, 12.5, 18, 25, 36, 50, 71, 100 등)이 경쟁했었다. 또한 통일 시스템(Uniform System, 미국, 영국에서 발명됨)은 1, 2, 4, 8, 16, 32, 64, 128 등(여기에서 미국1 = f/4, 미국2 = f/5.6, 미국4 = f/8 등)으로 표기했는데 20세기초 이스트만 코닥에서 선호하였다. 

망원렌즈(The telephoto lens)


1매의 요소로 구성된 렌즈는 렌즈의 길이와 초점거리가 같다. 예를 들어 초점거리 500mm 렌즈는 렌즈부터 촬상면까지의 거리가 500mm이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확대 렌즈(군), 후면에 축소렌즈(군)를 조합하여 명목상의 초점거리보다 짧게 만든 렌즈이다. 즉, 전면부에서는 상을 과대굴절시키고, 후면에서 초점면을 회복함으로써 백포커스 길이(back-focus length, 렌즈 후면 정점으로부터 초점면까지의 거리)를 매우 단축시킨 것이다. 원래는 일반렌즈의 뒤에 부착할 수 있는 오목렌즈가 악세서리로 판매되었다. 1833년 피터 발로우(Peter Barlow)가 개발한 오목 색지움 확대렌즈(negative achromat magnifier)인 발로우 렌즈(Barlow lens)는 현재도 아마추어 망원경의 접안렌즈 배율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망원컨버터(teleconverter)가 발로우 렌즈이다.

1891년 토마스 달메이어(Thomas Dallmeyer)와 아돌프 미테(Adolph Miethe)는 전면에 아크로매트 이중(achromat doublet, 색지움)렌즈, 후면에 아크로매트 삼중(achromat triplet)렌즈로 구성된 망원렌즈를 거의 동시에 동일한 수식과 함께 특허를 내려고 시도하였다. 누가 먼저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둘다 최초의 망원렌즈 특허를 받지 못했다.

달메이어(Dallmeyer)와 미테(Miethe)의 망원렌즈

초기의 망원렌즈는 전면부와 후면부가 균형잡히지 않았고, 후면부가 영상뿐만 아니라 수차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전.후면부 간격을 조정함으로써 유효초점거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이는 수차문제를 악화 시켰을 뿐이었다. 광학적으로 보정되고 시스템으로 확립된 최초의 망원렌즈는 1905년  f/8 Busch Bis-Telar(독일) 이었다.

Busch Bis-Telar

현대식 비점수차보정렌즈(The "modern" anastigmat lens)


사진렌즈는 1890년, 자이스(Zeiss, 독일)가 프로타르(Protar)를 개발하면서 한단계 도약하게 된다. 폴 루돌프(Paul Rudolph)의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성공적인 비점수차보정렌즈로, 당시 기준으로 비점수차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수차를 높은 수준으로 보정하였다. 이 렌즈는 f/4.5 인물용부터 f/18 초광각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 프로타르(Protar) 렌즈는 처음엔 Anastigmat(비점수차제거렌즈)라고 불렸으나, 이런 특성의 렌즈가 많아져 일반적인 용어가 되자, 1900년에 프로타르라는 기발한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자이스 프로타르(Protar)

프로타르 렌즈는 최초의 "현대식"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산화바륨(barium oxide) 기반의 크라운 유리(optical crown glass, 저굴절, 저분산 특성의 유리)를 사용하면서 비대칭 공식(asymmetric formula)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유리는 1884년, 칼 자이스(Carl Zeiss)의  Jena Glass Works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와 화학자 오토 쇼트(Otto Schott)가 개발하였다. 이 쇼트 유리는 소다석회 크라운 유리(soda-lime crown glass) 보다 분산은 낮고 굴절률은 높았다. 프로타르의 전면부는 예전 유리를 사용했으나, 후면부 아크로매트(색지움)렌즈는 고굴절 유리를 사용했다. 약 1930년대 이후에 생산된 거의 모든 고품질 사진렌즈는 비점수차가 보정되는 렌즈이다.

현재의 최첨단 카메라 렌즈는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ic)보다 대충 두배 정도 더 엄밀한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 APO) 이다. 하지만 그러한 렌즈들은 원래의 일곱가지 수차보다 훨씬 더높은 수준의 수차를 보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고굴절/저분산 희토류(산화 란탄(lanthanum oxide)) 렌즈, 형석(불화 칼슘(calcium fluoride)) 렌즈 등이 필요하다.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삼중색지움렌즈는 1964년 개발된 35mm SLR인 라이카플렉스(Leicaflex) 시리즈용 "Leitz APO-Telyt-R 180mm f/3.4(1975)" 이었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거의 모든 전문가용 망원렌즈는 삼중색지움렌즈이다. 참고로, 과학용/군용/산업용으로는 삼중색지움렌즈보다 더 뛰어난 렌즈도 있다.

쿠크 삼중렌즈(The Cooke Triplet)


20세기 카메라 렌즈의 전형은 Taylor, Taylor & Hobson의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이다. 데니스 테일러(Dennis Taylor, TTH와는 관련없음)가 개발한 쿠크 삼중렌즈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간단한 비대칭 3매 비점수차보정렌즈(anastigmat)로, 새로운 쇼트(Schott) 유리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렌즈 설계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모든 요소가 너무 강하여 정렬불량에 매우 민감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상당한 제조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쿠크 삼중렌즈는 20세기의 "경제적인 렌즈"의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최고로 많이 팔린 거리계연동 카메라로 추정되는 1937년 미국의 아거스(Argus) C3에 장착된 Argus Cintar 50mm f/3.5 렌즈가 쿠크 삼중렌즈였다. 

Taylor, Taylor & Hobson의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

이 렌즈는 중형 롤필름 카메라의 밀착 사진이나, 35mm "미니어처" 포맷 카메라의 부분 확대에 적당하며, 대형 인화는 곤란하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의 필름은 해상도가 높지 않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테사르 렌즈(The Tessar)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타르(Protar) 렌즈의 성능이 불만족스러워 테사르 렌즈를 개발했다. (형태는 쿠크 삼중렌즈와 비슷) 테사르는 원래 f/6.3 이었지만, 1930년에 f/2.8(최고 성능은 f/3.5까지)로 개선되었다.

테사르는 고품질/중구경/평균원근감을 갖는 20세기 표준렌즈였다. 최초의 자동노출 카메라인 코닥(Kodak) Super Six-20 (1938)에 장착된 "Kodak Anastigmat Special 100mm f/3.5"가 테사르 렌즈였다. 또한 올림푸스의 오리지날 half frame 카메라인 Olympus Pen (1959)에 장착된 "D. Zuiko 2.8 cm f/3.5", 최신 롤라이(Rollei) 35(1974)에 장착된 "슈나이더(Schneider) S-Xenar 40mm f/3.5", 주류 카메라회사의 마지막 수동초점 35mm SLR인 Nikon FM3A (2001)에 장착된 "AF Nikkor D 45mm f/2.8P Special Edition" 등도 Tessar 렌즈였다. Zeiss Stiftung의 마지막 카메라인 Zeiss Ikon S 312에 "Zeiss Tessar 40mm f/2.8 (1972)"이 채택된 것은 썩 어울리는 일이었다.

자이스 테사르(Zeiss Tessar)

라이츠(Leitz) 최초의 카메라인 Leica A (1925)에 장착된 "라이츠 엘마(Leitz Elmar) 50mm f/3.5"가 테사르(Tessar)라는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 라이카에선 18x24mm 무비카메라용 50mm f/3.5 Kino Tessar 를 개발했었고, 이것이 새로운  24x36mm 포맷에는 불충분했기 때문에 풀프레임을 지원하는 렌즈를 새로 개발해야했다. 50mm 테사르 렌즈가 24x36mm 포맷을 지원하게 된 것은 라이카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자이스 이콘(Zeiss Ikon)에서 콘택스(Contax)를 설계한 이후의 일이다. 엘마(Elmar)는 테사르(Tessar)와는 다른 계산식인 쿠크 삼중렌즈(Cooke Triplet)에 기반한 렌즈였다.

에르노스타와 조나(The Ernostar and the Sonnar)


비점수차제거에 의하여 사진 품질이 향상되자, 그 다음으로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거나 셔터 속도를 올릴 수 있도록 구경을 키우는데로 관심이 쏠리게되었다. 자연광 스냅사진(candid available light photography)에 적합한 최초의 광각렌즈는 1923년 에르네만 에르노스타(Ernemann Ernostar, 독일)이었다.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의 공식은 원래 10cm f/2 렌즈였으나, 1924년에는 10.5 cm/85mm f/1.8 까지 향상 시켰다. 에르노스타 렌즈도 쿠크 삼중렌즈의 변종으로, 렌즈 앞에 볼록렌즈요소 혹은 그룹이 추가된 형태였다.

Ernemann Ernostar 10.5 cm f/1.8

이 렌즈가 에르네만의 에르마녹스(Ermanox,1923) 카메라에 장착되어,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의 손에 들어가면서 현대적인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을 열었다. 프랑스 수상이었던 Aristide Briand 는 "국제회의에는 단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외국어 비서, 책상 그리고 잘로몬이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참고로 미국 사진기자들은 1950년대까지도 플래시를 사용했다. 

베르텔레는 1926년 에네르만이 자이스에 합병된 뒤, 좀더 유명한 조나(Sonnar)렌즈라는 이름으로 에론스타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는 1932년 f/1.5까지 도달하여,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인 Contax I (1932)용 Zeiss Sonnar 50mm f/1.5 를 개발하였다.

Zeiss Sonnar 50mm f/1.5

조나(Sonnar)렌즈는 망원렌즈 설계로 유명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조나는 전면 확대부(front positive element)의 강력함으로 인해 약간 망원성이다. 예를 들어 Contax II(1936) 용 Zeiss Olympia Sonnar 180mm f/2.8은 전설에 가까운 명작이다.

비대칭 더블가우스 렌즈(The asymmetric double Gauss)


1817년, 칼 프레드릭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프라운호퍼(Fraunhofer) 망원경 대물렌즈에 메니스커스(meniscus, 요철) 렌즈를 추가하여 개선하였다. 1988년 Alvan Clark는 이 렌즈를 앞뒤로 대는 형태로 좀더 개선하였다. 그는 가우스를 기려 이 렌즈를 더블가우스 렌즈(double Gauss)라고 명명하였다.  현재의 설계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 자이스 예나의 폴 루돌프(Paul Rudolph)는 접합 이중렌즈(cemented doublets)를 중심렌즈로 사용하여 색수차를 보정하였다. [플라나(Planar) 렌즈]

이후 넓은 구경의 고성능 렌즈를 위해 렌즈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1920년대 Taylor Hobson에서 성과를 거두었는데, f/2.0 Opic 과 이후의 Speed Panchro는 많은 회사들에 라이선스 되었다. 이 디자인은 현재 사용되는 많은 렌즈의 기반이 된 바, 특히 35mm 및 기타 소형 카메라에 사용되는 대구경 표준렌즈의 기반이 되었다. 넓은 화각에 대해 f/1.4까지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뿐 아니라, 때로는 f/1.0 까지 만들어졌다.

이 디자인은 현재 Canon EF 50mm f/1.8 와 Nikon 50 mm f/1.8D AF Nikkor 와 같이 저비용 고품질의 빠른 렌즈에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렌즈 요소를 추가하여 더 빠른 렌즈의 기반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캐논과 니콘에서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50 mm f/1.4 를, 비구면 일곱번째 요소를 추가해 Canon's 50 mm f/1.2 를 제작했다. 또한 이 설계는 프로젝터와 같이 간단하고도 빠른 표준렌즈(~53° 대각선)가 필요한 다른 응용에도 나타난다.

반사방지 코팅(Antireflection coating)


표면 반사는 19세기 렌즈 설계시 주요한 한계 요소였다. 모든 유리-공기 접촉면 마다 4-8%의 반사가 발생하여 빛 투과가 줄어들고, 반사된 빛의 산란으로 플래어가 발생함으로써, 6번 혹은 8번이상 손실이 발생하면 렌즈의 실용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일정한 수 이내의 요소로만 수차를 해결해야만 했었다.

일부 렌즈는 빛 손실을 표시하기 위해 f-stop 대신 T-stop (transmission stop)을 표시하기도 했다. T-stop은 "진짜" 혹은 실질적인 구경을 나타내며 영화용 렌즈에서는 흔했다. 영화 촬영기사들은 영화촬영시 어떠한 렌즈를 사용해도, T-stop을 참고로 일관성있는 노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진용 카메라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Bell & Howell의 Foton 라는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용 렌즈에만 T-stop이 표시되었다. Bell & Howell은 영화촬영장비 제조회사였다. Foton 의 표준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사의 Cooke Amotal Anastigmat 2 inch f/2 (T/2.2) (1948; 카메라는 미국제, 렌즈는 영국제, 더블가우스) 였다. f/2 와 T/2.2 사이의 1/4 스톱 차이는 16% 손실이었다.

데니스 테일러는 1896년, 세월이 흘러 변색된 렌즈가 직관과는 달리 더 밝아지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사결과 그것은 산화된 층이 상쇄간섭(destructive interference)을 일으켜 표면반사가 억제된 것이었다. 표면반사를 억제하기 위하여 아주 얇은 두께(약 130-140 nm)의 불화마그네슘 또는 불화 칼슘을 진공 침전(vacuum deposition) 방법으로 코팅한 렌즈를 발명한 것은 1935년 자이스의 알렉산더 스마쿨라(Alexander Smakula)였으며, 1939년 최초로 시판되었다. 반사코팅방지 코팅은 반사를 1/3로 줄여주었다.

1941년 코닥의 35mm 거리계연동 카메라 Ektra 는 최초의 소비자 카메라용 완벽한 반사방지 렌즈 라인인 Kodak Ektar 35mm f/3.3, 50mm f/3.5, 50mm f/1.9, 90mm f/3.5, 135mm f/3.8 and 153mm f/4.5 를 발표하였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소비자용 카메라 생산이 중단되어, 1940년대 말까지는 대량의 코팅렌즈는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부터는 코팅렌즈가 고품질 카메라의 표준이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이 등장하자 조나(Sonnar)렌즈에 비해 더블가우스(Double Gauss)가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반사방지 코팅기술이 없었던 이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조나가 더 널리 사용되었다. 조나의 경우 3군. 즉 6개의 공기-유리면이 있어, 8개의 면이 있는 더블가우스에 비해 플래어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나의 망원렌즈 효과로 렌즈의 길이가 잛아, 소형화를 추구하던 라이카와 콘택스 35mm 거리계연동카메라에 더 적합한 측면도 있다.

최대구경이 점점 커짐에따라, 더블가우스(Double Gauss)의 고대칭성이 수차보정에 유리했다. 특히 SLR의 경우, 거리계연동(rangefinder)와는 달리 시차오차가 없어, 보다 가까운 곳까지(1미터 수준에서 50cm 수준으로) 초점을 잡을 수 있게 됨으로써 특히 중요하게 되었다. 더블가우스는 반사방지 코팅과 새로이 등장한 고굴절 희토류 유리 덕분으로 1950년대 표준렌즈 설계에 널리 사용되었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한개의 파장만 반사를 억제 하는 것이 아니라, 10여개 이상의 화학물질 층을 이용해 가시광선 영역 전체에 대한 반사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아사히 광학(Asahi Optical)의 SMC Takumar lenses (1971)는 소비자용 카메라(M42 마운트 펜탁스 SLR)를 위한 최초의 멀티코팅렌즈 였다. 멀티코팅이 없었다면 현대의 15매, 20매짜리 고보정 줌렌즈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출시되고 있는 멀티코팅 렌즈의 투과 효율은 약 99.7% 이상이다.

반사방지 코팅 여부에 관계없이 플래어를 막기위해서는 렌즈 후드가 계속 필요하다. 

역초점 광각렌즈(The retrofocus wide angle lens)


일반적인 광각렌즈(초점거리가 촬상면 대각선 길이보다 짧고 화각이 넓은 렌즈)는 필름 가까이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SLR은 거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렌즈가 훨씬 앞쪽에 설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35mm 거리연동계 카메라의 경우 렌즈와 촬상면의 간격이 10mm 면 충분하지만, 35mm SLR은 40mm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복잡한 역초점 설계방식의 렌즈 개발이 촉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렌즈 맨 앞에 아주 큰 오목렌즈를 설치해야한다.

1950년 앙제닉스(Angénieux, 프랑스)의 Retrofocus Type R1 35mm f/2.5가 최초의 35mm SLR(Exaktas)용 역초점(retrofocus) 광각렌즈이다. 전면 오목렌즈를 제외한다면, 피에르 앙제닉스(Pierre Angénieux) 사의 R1 렌즈는 5매짜리 테사르(Tessar) 렌즈이다. 참고로, "역초점(retrofocus)"은 독점권이 해제되기 전까지 앙제닉스 사의 상표였다. 원래의 일반적 용어는 "역(inverted)" 또는 "역망원(reversed telephoto)"이었다. 망원렌즈는 전면에 볼록렌즈, 후면에 오목렌즈가 있는 반면, 역초점렌즈는 전면에 오목렌즈, 후면에 볼록렌즈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역초점(retrofocus) 렌즈는 Taylor, Taylor & Hobson 35mm f/2 (1931) 이었다. 이 렌즈는 RGB를 각각 별도의 음화로 촬영했던 Technicolor 무비카메라를 위하여, beamsplitter 프리즘을 넣을 수 있도록 back-focus 공간을 확보하는 목적이었다. 기타 앙제닉스 역초점 렌즈로는 "28mm f/3.5 Type R11(1953)" 과 "24mm f/3.5 Type R51(1957)" 등이 있었다.

앙제닉스(Angénieux)의 Retrofocus Type R1 35mm f/2.5

역초점(Retrofocus)렌즈는 전면의 대형 오목렌즈로 인해 비대칭성이 크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왜곡을 보정하기 힘들다. 장점이라면 일반 광각렌즈의 사선방향으로 cos4θ 만큼 빛이 감쇄되는 비네팅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역초점 설계는 일반 렌즈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루드비히 베르텔레(Ludwig Bertele)가 설계한 Contax IIA (1950) 35mm RF 용 Zeiss Biogon 21mm f/4.5(1954) 렌즈와, 그 개정버전인 Zeiss Hologon 15mm f/8(1969), 최종버전인 Zeiss Ikon Hologon Ultrawide 는 대략 대칭에 가까웠으나, 반쪽씩 뜯어보면 역초점렌즈라고 할 수 있었다. Biogon과 Hologon 렌즈는 대형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자연 비네팅 현상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110도의 화각을 가진 Hologon은 구석에서 3¼ 만큼 빛이 감쇄되었을텐데, 이는 그 당시 필름의 노출 제한폭을 초과한 것이다. Hologon에는 이를 보정하기 위해 방사선방향으로 2 스톱만큼 어두워지는 필터를 표준 악세서리로 제공했다. Hologon의 렌즈 뒷면과 필름간의 거리는 4.5mm에 불과했다.

Zeiss Biogon 21mm f/4.5

요즘 나오는 디지털 SLR용 표준 원근감렌즈(normal perspective lense)는 역초점인 경우가 많다. 이미지 센서가 35mm보다 작기 때문에 동일한 화각을 유지하려면 초점 거리가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안렌즈(The "fisheye" lens)


어안렌즈(fisheye lens)는 직선왜곡(rectilinear distortion)을 거의 보정하지 않는 특별한 종류의 초광각 역초점 렌즈이다. 대부분의 어안렌즈는 화각이 180°인 원형영상을 촬영한다. 어안(fisheye)이란 물고기가 하늘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최초의 어안렌즈는 1923년의 Beck Hill Sky이다. 로빈힐(Robin Hill)의 원래 의도는 구름분포의 과학적 연구를 위하여 하늘을 반구 형태로 촬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불룩 튀어나온 오목 메니스커스 렌즈를 사용하여 180° 화각을 60° 로 압축한 후, 그 빛이 조리개를 통과하여 적당한 광각렌즈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이 스카이(Sky) 렌즈는 21mm f/8  으로, 지름 63mm의 상을 생성했다. 영국 기상청(British Meteorological Office)에서는 이러한 렌즈를 500미터 간격으로 2개 설치하여 입체영상을 촬영했다.

Beck Hill Sky

참고로 빛 감쇄(light falloff)로 인하여 180도 직교사진은 촬영할 수 없다. 120° (35mm 카메라에서는 초점거리 12mm)가 역초점 설계의 실질적 한계이며, 역초점이 아닌 경우에는 90° (초점거리 21mm)가 한계이다.

접사(마크로) 렌즈(The macro lens)


엄격하게 말하자면, 접사사진(macrophotography)은 영상의 크기가 실물과 동등한 사진(1:1)으로부터 영상이 실물보다 10-20 배 큰 사진 (20:1, 그 이상은 현미경사진)을 촬영하는 기술적 사진을 말한다. 원래 "마크로" 렌즈는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도록 최적화된 일반적 공식의 렌즈로서, 근접 하여 초점을 잡고 멀리 있는 물체는 초점이 잡히지 않도록 긴 확장 튜브나 주름상자 악세서리에 장착하여 촬영하였다. 

그러나 1955년 35mm SLR인 Exakta 용으로 개발된 Kilfitt Makro-Kilar 4 cm f/3.5(서독) 렌즈가 마크로 렌즈의 의미를 바꾸어버렸다. 이 렌즈는 연속 근접 초점이 가능한 최초의 렌즈이다. 하인즈 킬피트(Heinz Kilfitt)에서 개발한 Makro-Kilar 렌즈 버전 D는 무한대로부터 5cm 에서 1:1 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고 버전 E는 10cm 에서 1:2(실물 크기의 반)까지 초점을 잡을 수 있었다. Makro-Kilar 렌즈는 매우 긴 삼열 나선(extra long draw triple helical)에 장착된 테사르 렌즈이다. SLR 카메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뷰파인더 시차오차가 없기 때문에 마크로 렌즈와 아주 잘 어울린다. 

Kilfitt Makro-Kilar 4 cm f/3.5

접사렌즈 설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영상의 크기가 피사체와 비슷하면 대칭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1904년 Goerz Apo-Artar 사진제판(photoengraving) 처리 렌즈는 아주 엄밀한 품질관리가 필요했으나, 삼중색지움렌즈(apochromatic)였다. 이 렌즈는 무한대에서 접사까지 날카로운 영상을 얻을 수 있었는데, (Makro-Kilar 이전엔 힘들었음) 일반적으로 1:10에 가까워지면 연속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SLR은 높은 배율에 최적화된 중구경 마크로 렌즈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동가능 거리가 좀 더 긴 대신, Makro-Kilar 보다 초점거리가 긴 경향이 있다.

"마크로 줌" 렌즈는 1970년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들은 이 렌즈들이 기술적 정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접사렌즈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1:4 이상 확대되지 않는데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이 문서는 http://en.wikipedia.org/wiki/Camera_lens 중 두번째 부분을 번역한 것입니다. 앞부분은 여기를 보세요. 일부는 뺀 것도 있고 마음대로 추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역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의 개요 와 카메라의 역사 그리고 거리계연동카메라와 일안반사식카메라 12 그리고 이안반사식 카메라도 참고 하세요.

민, 푸른하늘 

Posted by 푸른하늘 푸른하늘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Yoon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2020.08.05 14:23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