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마눌님께서 커피에 빠져 있습니다. 한 2년 전쯤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들이더니, 그게 번거럽다고 한 1년 전쯤에는 캡슐커피 머신을 샀구요, 요즘엔 원두를 직접 볶고, 급기야는 더치머신까지 들였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아주 신났습니다. 원래 20년 전부터 블랙커피와 에스프레소만 마셨는데, 요즘 들어 이 커피 저커피를 마시다보니 쌉쌀한 뒷맛으로 전해오는 상큼한 신맛과 고소한 향취가 풍기는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었으니까요. 아직 원두 종류에 따른 차이나 원두를 굽는 정도에 따른 차이를 잘 느끼지는 못해도 말입니다.
일단 현재 우리집에 있는 커피 관련 기기들 사진입니다. 좌측 뒤는 캡슐커피머신, 오른쪽으로 에스프레소 머신, 그 앞쪽 두개는 커피 그라인더, 그 오른쪽 3단짜리 유리 플라스크는 더치머신이고요, 그 앞쪽 맨 왼쪽은 모카커피 포트, 오른쪽으로 핸드드립용 주전자, 오른쪽은 멸치다시통!!! (이게 오늘의 주제인 자작커피 로스팅기의 핵심부품입니다.) 그리고 맨 앞쪽은 볶아둔 커피콩들입니다. 꽤 다양한 편이죠? ㅎㅎㅎ
예전부터 집에서 로스팅한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듣기는 했는데, 먼나라 이야기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여주에 있는 테라산타(성스러운 땅이란 뜻입니다)에 놀러갔다가 자작 로스팅기를 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걸 알고 직접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마눌님은 그냥 후라이팬을 사용해서 팬로스팅을 하고 있었거든요.
후라이팬으로 로스팅을 하면 무엇보다 고르게 구워지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원두가 한쪽은 평평하고 반대쪽은 동그랗기 때문에 평평한 쪽이 더 많이 닿게 되고, 고르게 뒤섞이지 않아 어떤 녀석은 까맣게 타는데, 반대로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 콩도 나오게 됩니다. 물론 팬로스팅을 하더라도 원두를 사다먹는 것보다는 훨씬 맛이있지만요.
하여튼... 각설하고... 그래서 자작 커피 로스팅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만 자작이라는 원칙에 맞춰 되도록이면 크게 돈들이지 않고, 최대한 간단하게 만드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통돌이 로스터"라고 부릅니다.
자작로스팅기 만드는 방법은 네이버 커피마루 카페에 들어가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004년 설립되었으니 오래된 역사만큼 다양한 자작 커피 로스팅기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아래 사진과 같은 걸 자작한 분도 계시더군요. 이게 "자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ㅠㅠ
그럼 제가 만든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휴대용 버너(블루스타) 위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오랜만에 자작해봤는데, 생각했던 만큼 깔끔하게 만들어져서 너무나 기분좋습니다. ㅎ
먼저 제일 중요한 부품... 구멍이 뚫려있는 원통이 필요합니다. 이건 x마켓 등에서 "멸치다시통"으로 검색해보면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크기에 따라 호수가 있는데, 저는 5호 통을 사용했습니다. 5호통의 부피로는 1kg 정도 들어갈 것 같은데, 한 400그램까지는 문제없이 볶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다음으로 볼트 너트. 이것도 물론 홈쇼핑으로 구할 수도 있지만, 그냥 동네 철물점에서 샀습니다. 어차피 크게 힘을 받는 게 아니니 두께는 별 관계 없고, 통의 크기와 널판지의 크기를 고려해서 10cm 짜리 볼트 2개 그리고 너트 10개쯤, 와셔 10개쯤을 샀습니다. 너트와 와셔는 나중에 핸드휠을 고정하는데 필요하니 여유가 있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으로 핸드휠. 물론 핸드휠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고,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쓸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핸드휠을 달기로 했습니다. 사실 "핸드휠"이라는 단어를 몰라 검색하는데 애로가 많았는데, 결국 아래 제품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픈마켓에는 이런 걸 파는 곳이 없고, 다른 사이트들은 단품 판매는 하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이 걸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ㅎㅎㅎ
구입은 여기에서 하시면 됩니다. 저는 d=12, D=125 짜리를 샀습니다. 비용은 택배비까지 약 1만원 정도.
아래는 이렇게 구입한 멸치다시통과 핸드휠을 볼트와 너트로 고정한 모습입니다. 멸치다시통의 가운데를 드릴로 구멍을 뚫은 후, 볼트너트로 고정을 했고요, 마찬가지로 핸드휠도 너트로 고정시켰습니다. 핸드휠 가운데 구멍의 내경이 12mm 라서 볼트의 지름 6mm 보다 훨씬 큰 바람에 워셔를 이용해 강제로 고정시켰지만, 그다지 큰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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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 통을 고정하기 위한 널판지. 이것도 x마켓에서 "DIY 목재"로 검색하면 여러 업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치수를 적어주면 그 사이즈로 잘라서 배달이 됩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에 맞춰서 26cm x 26 cm 짜리 3 장, 그리고 26cm x 20cm 짜리 1장 그리고 ㄱ 자 꺽쇠 4개 와 나사 조금을 주문했습니다. 나무 재질과 두께도 마음대로 고르시면 되는데, 저는 그냥 8mm 짜리 합판을 썼습니다.
아래가 이렇게 만들어진 자작 통톨이 커피 로스팅기를 사용해서 시험가동해보는 모습입니다. 아래에 있는 가스버너와 다시통사이의 거리가 한 15cm 정도로 너무 멀지 않나 걱정을 했는데, 약 8-9분 정도에 일차 파핑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5분 정도후 이차 파핑... 생각보다 더 잘 되더군요.
아래는 최종적으로 구워진 원두입니다. 콜롬비아산 Supremo Huila 인데, 어쩌다보니 원하는대로 강배전으로 구워졌습니다. 맛은? 물론 환상적입니다.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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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대충 비용을 계산해 보면.... 멸치다시통 15,000원, 핸들 10,000원, 볼트너트 3,000원, 나무판및 부품 15,000원 바람막이 13,000원.... 합이 약 46,000 원 정도 들었군요. 물론 수공 제외, 드릴 등 공구는 제외. 사실 자작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원하는 공구나 부속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알더라도 너무 시간이 많이 들거나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글에서는 가능한한 인터넷쇼핑몰에서 구입 가능하도록 링크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산다는 건 아무래도 물건을 보지 않고 사진이나 글만으로 사는 것이라 안심이 안되기 마련입니다. 외국처럼 하드웨어 샵이 있다면 이런 자작은 훨씬 쉬울텐데... 싶습니다.
아무튼 요즘에는 싼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자작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로스팅기를 사려면 아무리 싼 것도 15만원-20만원 정도이고, 비싼 건 100만원 수준인데 비해 기능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시도를 해봤습니다. 나중에 좀 커피를 좀 더 마시게되면 기성품을 구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참 잘했다 싶습니다. 혹시라도 커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도움이 되시길.
추가 : 이글을 쓰고 난 뒤 8개월 후... 여러군데를 조금씩 조금씩 손봤습니다. 그 결과는 http://www.internetmap.kr/entry/DIY-Coffee-Roaste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또다시 추가 : 3년만에 모터와 베벨기어를 사용해서 새로 제작했습니다. 여기를 보세요.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