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공부/화가

인상주의자에게 존경받은, 인상주의자의 대부 카미유 피사로

하늘이푸른오늘 2026. 5. 22. 20:14

카미유 피사로는 정말 점잖은 선비같은 분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남성들이 외도를 하는 건 흔했고, 심지어는 사생아를 낳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화가들은 여성 모델과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카미유는 흔한 스캔들조차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주의 화가들, 예를 들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폴 고갱,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정말 까칠했던 화가들이 스승으로, 어른으로 모셨던 분입니다. 우측 사진을 보시면 지리산에서 몇십년동안 도를 닦으신 분 같이 보입니다. 실제로 카미유 피사로는 다른 인상주의자들보다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스승, 혹은 선생님으로 불려지곤 했습니다. 드가와는 4살 차이, 세잔과는 9살 차이, 모네와는 10살 차이, 르누아르와는 11살 차이였죠.

카미유 피사로는 당시 덴마크령이었던 서인도제도 세인트토마스섬에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프랑스 국적이 있었는데도 카미유는 덴마크 국적이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12살 때 파리에서 기숙 학교 생활을 하며 미술을 배웠고, 16살 쯤 다시 세인트토마스섬으로 돌아와 아버지 일을 돕다가, 21세가 될 때 베네주엘라에서 2년간 머물며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초기 작품들

아래는 베네주엘라 시절에 그렸던 《농가와 야자수가 있는 풍경》입니다. 크기가 A4 정도되는 소품인데, 열대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농부 모습을 인위적으로 웅장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던 카미유 피사로의 주제의식을 이 초기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농가와 야자수가 있는 풍경》, 약 1853년, 24.8 x 32.7 cm, 카라카스 국립미술관

카미유 피사로는 25세가 되던 1855년에 파리로 이주해서 아카데미 쉬스와 같은 사설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바르비종 화파샤를프랑수아 도비니, 장프랑수아 밀레, 그리고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작품들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그에게 영향을 많이 준 화가는 카미유 코로로서, 그로부터 야외 사생을 배웠습니다. 

아래는 그 즈음에 그렸던 《퐁투아즈의 잘레 언덕》이란 작품입니다. 중경이나 원경쪽은 깔끔하게 그려졌지만, 오른쪽 수풀이나 길쪽을 보시면 인상주의 특유의 굵은 붓질을 보실 수 있습니다.

《퐁투아즈의 잘레 언덕》, 1867, 87 x 114.9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인상주의 시절

카미유 피사로는 평생 거의 풍경화만 그렸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바르비종 화파의 장바스티유 카미유 코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는 야외 사생으로 그림을 그린 후,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을 수정하여 완성하곤 했다. 그러나 피사로는 야외에서, 종종 한 번의 앉은 자리에서 그림을 마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피사로는 이런 방식이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때때로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울퉁불퉁하고 들쭉날쭉한 덤불, 흙더미,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을 있는 그대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 이 때문에 코로와 결별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어느 비평가는 피사로를 "기본적으로 [인상주의] 회화의 발명가"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인상주의 운동에서 피사로의 역할은 "위대한 사상가라기보다는 선량한 조언자이자 화해자로서의 역할"에 더 가까웠으며,  "모네가 그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입니다.

아래는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던 1874년 작품《오베르쉬르우아즈 발레르메이의 소를 모는 사람》입니다. 굵은 붓질, 밝은 팔레트 등, 전형적인 인상주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뚜렸한 특징이 없어서 척 보기에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 이라는 특징은 안보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풍경화가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클로드 모네는 하나의 대상을 여러가지 환경에서 반복해 그린 연작으로 유명해졌고, 에드가 드가는 발레 그림,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잔잔한 그러면서도 예쁜 인물 초상화로 유명해졌지만, 수많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One of them 처럼 보일 뿐입니다. 

《오베르쉬르우아즈 발레르메이의 소를 모는 사람》, 1874년, 54.9 x 92.1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카미유 피사로는 인상주의에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를 중심으로 한 신진 예술가 그룹인 바티뇰 그룹의 멤버이기도 했고, 인상주의 전시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유일한 화가였습니다. 사실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까탈스러운 화가들을 계속 설득하고 이끌어서 인상주의 전시회를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카미유 피사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지 못했던 것이 살아 생전 그다지 유명하지 못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카미유 피사로는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특히 폴 세잔과는 여러번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서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폴 세잔은 불과 9살 연상인 카미유 피사로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지목하기도 했죠. 아래 왼쪽은 피사로의 작품인 《레르미타주의 코트 데 뵈프》이고, 오른쪽은 폴 세잔의 《목매달린 사람의 집》입니다. 두 분이 공동으로 작업할 때의 작품입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공통점이 많이 안보이는데, 저는 《레르미타주의 코트 데 뵈프》를 보자마자 폴 세잔의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ㅎㅎ

레르미타주의 코트 데 뵈프》, 1877년, 115 x 88 cm, 내셔널 갤러리 목매달린 사람의 집》, 폴 세잔, 1873, 55 x 66 cm, 오르세 미술관

점묘파 시절

피사로는 인상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와 함께 점묘법신인상주의를 추구합니다. 피사로는 이 새로운 예술 형식을 "인상주의의 논리적 발전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러한 태도를 가진 것은 인상주의자들 사이에서 그가 유일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피사로가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를 전시회에 받아들이는 것때문에 분란이 발생했고, 결국 피사로는 이들과 함께 별도의 방에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도 이때 발표가 되었죠.

아래가 이즈음의 대표작인 《에라니의 귀머거리 여인의 집과 종탑》입니다. 점묘파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에라니의 귀머거리 여인의 집과 종탑》, 1886년, 65.1 x 81 cm,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다시 인상주의로

4년후, 카미유 피사로는 신인상주의를 포기하고 다시 인상주의로 돌아옵니다. 너무 노동집약적이고, 인위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작품들에는 신인상주의의 영향이 묻어나며, 더욱 섬세한 작품을 제작합니다. 피사로의 대표작인 몽마르트르 대로 연작 8점도 이때 탄생합니다. 아래는 연작중 하나인《몽마르트르 대로, 봄 아침》입니다.

《몽마르트르 대로, 봄 아침》, 1897년, 65 x 81 cm, 개인 소장

그리고 아래는 《몽마르트르 대로, 겨울 아침》입니다. 이 작품은 올해(2026년)초 국립중앙박물관에 열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회에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 1897, 68.4 x 81.3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른 연작들도 동일한 호텔, 아마도 동일한 호텔방에서 계절과 시간을 달리하며 몽마르트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아마도 클로드 모네가 그린 여러가지 연작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네요.

이 작품은 피사로의 마지막 주요 작품 중 하나로,  말년에 피사로는 재발성 안구 감염으로 고통받아 따뜻한 날씨를 제외하고는 야외에서 작업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장애의 결과로 그는 호텔 방 창가에 앉아 야외 장면을 그렸는데, 많은 비평가들은 이러한 신체적 제약이 오히려 모호하고 즉흥적이며 예술적인 자유로움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카미유 피사로의 10대 대표작

아래는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중에서 위키백과 언어링크수가 높은 순서로 정렬한 10개의 작품입니다. 최고점이 11점이네요. 에두아르 마네나 클로드 모네와 같은 유명작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점수가 낮군요.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의 틀:카미유 피사로의 상태였습니다. 작품중에 단 하나만 번역되어 있었네요(이것도 사실 제가 번역해둔 겁니다)

아래는 현재의 상태입니다. 영어 위키백과에 등록된 작품 중 언어링크 수가 5 이상인 작품은 모두 번역했고, 언어링크가 5 이상인 작품중에 등록되지 않은 작품은 별도로 프랑스어 위키백과에서 번역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