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미술 공부

치열함 대신 자유를 택한 인상주의 후원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하늘이푸른오늘 2026. 3. 22. 12:43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인상주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의 정통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여, 인상주의가 자리잡는데 많은 공헌을 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상당한 수입과 부모의 유산으로,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유명하지 못했습니다. 

아래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입니다. 인상주의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대적입니다. 사진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그림을 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몸이 반으로 잘린 크로핑(cropping)된 구도는 일반적인 그림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년, 212.2 x 276.2 cm, 시카고 미술관

일반적으로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로 분류합니다. 이 그림을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했기 때문에 인상주의 작품이라고 할 뿐, 그림 스타일은 사실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야외에서 그린 풍경화의 경우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이 많지만, 실내에서 그린 작품들은 사실주의 작품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래는 1875년작 《마루 깎는 사람들》입니다. 이 작품은 1875년 파리 살롱에 출품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상체를 드러난 남성의 누드라는 주제 자체가 정통 프랑스 화단에게는 "저속한 주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계급을 "이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표현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작품도 두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했습니다. 

《마루 깎는 사람들》, 1875년, 102 x 146.5 cm, 오르세 미술관

이 작품은 사실주의의 대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과 비교됩니다. 《마루 깍는 사람들》의 26년전 작품이네요. 26년이나 지났음에도 프랑스의 주류인 아카데미즘 양식의 화가들은 여전히 그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1849년, 2차세계대전 중 파괴됨

아래는 1880년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탈리앵 대로》입니다. 이 작품은 위의 작품과는 달리 짧은 붓질로 전체적인 인상만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화풍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이 처럼 풍경화는 인상주의 화풍의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데 카유보트의 대표작 중에는 이러한 풍경화가 거의 없고 사실주의적인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틀:귀스타브 카유보트에 들어 있는 작품을 확인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탈리앵 대로》, 1880년경, 54 x 65 cm, 개인 소장

저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인상파의 대부"라고 불린 카미유 피사로의 몽마르트르 대로 연작이 떠올랐습니다. 아래 그림은 그 중 하나인 《몽마르트르 대로, 겨울 아침》입니다. 며칠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2025.11.14~2026.3.15.)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작품중 하나입니다. 카유보트보다 거의 20년 후에 그려진 작품이네요. 19세기 말... 이때가 거의 인상주의의 마지막이었습니다. 20세기 들면서 마티스와 피카소 등의 현대미술이 등장하게 되죠.

《몽마르트르 대로, 겨울 아침》, 1897년, 68.4 x 81.3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지막으로는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에르, 비》입니다. 비내리는 날 연못 옆에 있는 정자 같은 곳에서 빗방울이 그리는 수채화를 감상하는 느낌입니다. 앞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경계와 보도가 뭔가 거슬리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듯한 묘한 기분이네요.

《이에르, 비》, 1875년, 80.3 x 59.1 cm, 인디애나 대학교 에스케나지 미술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부유한 환경 덕분에 그림 파는 건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표수집, 난초 재배, 직물 디자인등으로도 유명했고, 카누 제작 업자로도 한참 활동을 했을 정도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치열함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지는 못했죠. 실제로 인상주의의 후원자로만 알려졌을 뿐, 화가로서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 맨 처음 소개드린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을 시카고 미술관이 인수하면서 다시 재조명 받았습니다.

위키 백과 정리

아래는 현재의 틀:귀스타브 카유보트입니다.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이고요. 보시면 작품에 대해서는 모두 번역을 완료했고, 이중 《이에르, 비》와 《아르장퇴유의 요트들》는 영어 Template:Gustave Caillebotte에는 존재하지 않아 제가 프랑스어를 기준으로 추가했습니다.

정리하는 기준은 대략 말씀드리면 영어판이 있는 문서는 모두 번역하고, 기타 언어링크의 수가 5 이상인 것은 별도의 소스를 찾아 번역해 추가한 것입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