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잘 그리는 인간 쓰레기 폴 고갱
이번엔 후기인상주의 및 종합주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폴 고갱 위키백과를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내용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폴 고갱은 정말 인격적으로 쓰레기라고 불리기에 딱 맞는 인간입니다. 어릴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1882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전까지는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기 때문일까요.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에 쩔어 있었습니다.
맨 먼저 소개시켜 드릴 작품은 《설교 후의 환상》입니다. 왼쪽과 아래는 브리타뉴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죠. 오른쪽 위는 창세기 32장 22절부터 31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야곱이 천사가 씨름하는 모습입니다. 여인들의 환상을 형상화한 겁니다. 즉, 가운데 사선으로 굵게 그려진 나무줄기 왼쪽은 현실, 오른쪽은 환상입니다.

이 그림은 고갱이 클루아조니즘 스타일을 거의 처음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던 시기의 작품으로, 이 작품부터 고갱이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화가들이 퐁타방 화파를 만들기도 했죠. 클루조아니즘이란 윤곽선을 굵고 어둡게 칠하고 그 내부를 음영이 거의 없는 평평한 색으로 채우는 기법을 말합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나 칠보처럼 그리는 방식이죠. 그런데 클루아조아니즘은 원레 에밀 베르나르가 시작했고, 폴 고갱도 분명히 에밀 베르나르에게 이 기법을 배웠고 평생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자신의 기법을 에밀 베르나르에게 배웠다고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고갱이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지낼 때 그린 《해바라기의 화가》입니다. 보시면 딱 느껴지시겠지만 반 고흐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폴 고갱은 1888년 10월 말부터 12월말까지 약 2개월동안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지냈습니다. 고갱을 존경하던 반 고흐의 강한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반 고흐는 정신병력이 있었고 외골수 기질이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 프랑스의 환한 햇살아래에서 그림을 함께 그리는 화가 공동체를 꿈꿨죠. 처음엔 둘이 함께 그림도 그리고 성매매 업소도 함께 다니고... 사이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반고흐는 폴 고갱을 존경하면서도 동료 화가로서 대해주길 원했지만, 폴 고갱은 자신의 주장을 밀어부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삐걱대다가 반 고흐가 귀를 자르는 유명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이 사건에서 폴 고갱이 특별히 잘못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예민한 반 고흐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했던 고갱이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고갱을 숭배했던 퐁타방 화파 후배들마저 고갱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걸로 보아, 성격이 싸가지였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도 둘이 완전히 결별한 건 아니고, 이후에도 편지를 주고 받았고 한때는 고갱이 암스테르담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도 합니다.
다음은 《감람산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의 장면을 묘사한 겁니다. 저기 멀리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그런데 이 그림은 사실 자화상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그려넣은 겁니다. 폴 고갱은 평생 예수님처럼 자기도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일종의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태평양에서 그린 그림들에서도 종교적인 그림에 이런 내용이 제법 나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당시 아무리 근대화가 진행되었다고 해도, 이런 생각 때문에라도 환영받지 못했을 걸로 보입니다.
다음 작품은 《테하아마나의 조상들》입니다. 고갱이 첫번째 방문했을 때 데리고 살았던 현지처 테하아마나의 초상입니다.

현지처... 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타히티는 주로 자급자족 경제였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쓴 글도 봤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13살 짜리일 필요는 없죠. 아무리 가족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요. 그 당시 네덜란드에는 본처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는데 말입니다.
테하아마나는 이 그림외에도 여러 그림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이도 있었는데 죽었다고 하는 것 같고요. 사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폴 고갱이 파리로 돌아갔다가 2년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이 아가씨는 다른 남자하고 결혼했고 고갱과의 관계 복원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폴 고갱은 이 여성을 포함해 총 4명의 타히티 여인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모두 10대였죠. 우리나라였다면 아청법으로 평생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마지막 그림입니다. 폴 고갱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그림 오른쪽의 세 여인과 아기는 탄생, 가운데 과일을 따는 여자는 죄악, 그리고 왼쪽의 노파는 죽음. 이렇게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 그림을 그리기 전, 폴 고갱이 제일 사랑했던 딸 알린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리고 자살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림이 완성된 후 자살을 기도했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면 외로운 인생이었던 거죠.
폴 고갱도 살아있는 동안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1903년, 54세의 나이로 죽은 후 열린 회고전에서야 비로서 재평가 받았고, 피카소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인간성이 좋은 것이 병행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 사람 별로 입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틀:폴 고갱을 캡처한 그림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그림과 조각 등의 작품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나머지는... 언젠가는 하겠지 하고 던져뒀습니다.

제가 이번에 정리를 시작하기 전, 아마도 2-3개 정도 번역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증이 없네요. ㅠㅠ 다음엔 시작하기 전에 캡처부터 해두겠습니다) 지금 세어보니 총 68개의 작품이고,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총 6일간 작업했네요.
정리하는 기준은 일단 틀:폴 고갱의 영문판을 긁어와서 모두(회화는 모두) 번역하고, 작가의 작품을 모두 검색해서 언어링크가 5이상인 녀석은 추가로 번역한 겁니다. 이번엔 《대화》, 《어디 가니?》, 《베르나르의 초상이 있는 자화상》 등 세 작품만 프랑스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오면 되었습니다.
어쨌든 적어도 제가 정리한 작가의 경우, 그림 작품에 한해서는 영어 위키피디아보다 더 많은 작품 페이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ㅎㅎ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