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홀먼 헌트
어스름한 황혼이 깔리는 황야에 빨간색 리본을 뿔에 감고 있는 누런 양 한마리가 서 있습니다. 자세히 쳐다보니 여기저기 짐승들의 뼈와 뿔이 보입니다. 둥근 달이 비치는 늪에는 말라죽은 나뭇가지도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산맥에는 초록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네요. 이곳은 사해 언저리에 있는 구약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의 소돔입니다. 양의 발은 소금 밭에 반쯤 빠져들어 있습니다. 죽음의 바다라는 걸 정말 실감나게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윌리엄 홀먼 헌트가 그린 《희생양》입니다. 권력자들이 사고를 친 뒤, 자신은 오리발 내밀고 적당한 책임자 한명 내세울 때의 바로 그 희생양이죠.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속죄일에 염소를 속죄의 제물로 삼아,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모든 죄를 염소 머리에 씌운 뒤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이렇게 쫒겨난 희생양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염소가 왜 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래는 작년 말에서 올해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미국 샌디에이고 뮤지엄 특별전〉에 전시되었던 《하느님의 어린 양》입니다. 이 그림도 "희생양", 구체적으로는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는 7명으로 구성된 라파엘 전파 형제단(Pre-Raphaelite Brotherhood, 약칭: 라파엘 전파) 중에서, 라파엘 전파가 추구했던 이상에 가장 충실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기법면에서는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었고, 주제면에서는 사회적 이상을 담을 수 있는 종교화나 역사화를 가장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세상의 빛》입니다. 달빛이 어스름한 숲 속에 등불을 들고 있는 예수님이 잡초가 무성하고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리려는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문에는 손잡이가 없어 안에서만 열 수 있는데 이는 "고집스럽게 닫힌 마음"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는 이처럼 성경이야기를 많이 그렸습니다. 1850년대 중반에는 정확한 지형 및 민족지학적 자료를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가르침을 더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중동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종교화 들은 매우 인기가 높았습니다. 위의 그림만 해도 당대 가장 인기있는 그림중 하나였으며, 1906년 호주 순회 전시에서는 호주 인구의 4/5가 보았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헌트가 종교화만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설을 소재로 한 그림도 여럿 그렸습니다. 아래는 불워리턴이 쓴 1835년 소설 《로마의 마지막 호민관, 리엔치》의 한 장면을 묘사한 《리엔치의 맹세》라는 그림입니다. 물론 저는 잘 모르는 소설입니다. 이 그림의 원 제목은 《콜로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의 난투극에서 살해당한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정의를 구하기로 맹세하는 리엔치》 (Rienzi vowing to obtain justice for the death of his young brother, slain in a skirmish between the Colonna and the Orsini factions) 입니다. 엄청 길죠. 당시에는 이렇게 긴 제목을 써서 그림의 배경을 전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네요.

특히 이 그림처럼 핵심 주제 뿐만 아니라, 배경까지 세밀하게, 밝은 색상으로 묘사하는 라파엘 전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다만, 그림 제일 왼쪽에 있는 기사나 쓰러져 있는 남동생 등을 보면 자세가 좀 엉성해 보입니다. 헌트가 초년시절 사람들의 자세를 묘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ㅎㅎ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윌리엄 홀먼 헌트의 10대 대표작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의 빛》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언어링크수가 17이면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전세계 서양화에서 410등 정도 되네요. 사실 저는 이게 약간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회화분야의 최고는 프랑스여서, 영국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그나마 독자적인 사조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게 라파엘 전파이다보니, 그리고 위키백과에서 영어권의 영향이 워낙 크다보니 의도적으로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인겁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ㅎㅎ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윌리엄 홀먼 헌트의 상태였습니다. 단 2점만 정리된 상태였네요.

아래는 현재의 상태입니다. 영어판 위키백과 문서만 있는 문서 3개외에는 모두 정리를 했습니다. 헌트가 영국사람이다보니 프랑스어로 된 문서를 추가해야 할 일은 없네요. 다른 라파엘 전파 화가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