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전파의 시작과 끝: 존 에버렛 밀레이
금빛으로 수놓아진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물 위에 떠 있습니다. 왼손 주위엔 여러가지 꽃들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쓰러진 나무의 뿌리, 흙 언덕, 여러가지 잡초와 들풀들... 캔버스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오필리아(Ophelia)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등장인물입니다. 햄릿과 서로 사랑하던 여인이죠. 하지만 햄릿이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자 미쳐버렸고, 야생화 화환을 버드나무 가지에 달려다가 나무가 부러져 물에 빠져 죽은 비련의 주인공입니다. 이 그림은 바로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가라앉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오필리아》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대표작이며, 라파엘 전파의 신조에 따라 밝은 색상을 사용하고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자연에 충실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특히 이 그림의 배경은 자연 속에서 5개월 동안 최대 11시간씩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모델은 당시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게 인기 있었고 영감을 주던 뮤즈 엘리자베스 시달이었습니다. 나중에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와 결혼했지만, 2년만에 아편 중독으로 죽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 밀레이는 시달을 욕조에 누워있게 했고, 한겨울에 물을 덥히는 것을 잊어 감기에 걸리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햄릿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긴 작품이자 영어로 된 문학 작품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품의 하나인 만큼, 오필리아도 유명해서, 밀레이 이전에도 여러 화가들이 오필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렸고,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작품화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많은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밀레이의 작품입니다. 아래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오필리아 주제의 그림들입니다. 밀레이의 그림이 왜 가장 사랑받고 있는지 느껴지실 겁니다.
![]() 《오필리아와 라에르테스》, 벤자민 웨스트, 1792, 신시내티 미술관 ![]() 《오필리아의 죽음》, 외젠 들라크루아, 1844, 노이에 피나코테크 ![]() 《오필리아》, 알렉상드르 카바넬, 1883, 개인 소장 |
![]() 《화관을 짜고 있는 오필리아》, 리차드 레드그레이브, 1842,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 《오필리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4, 개인 소장 |
존 에버렛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그가 그렸던 작품 중 가장 라파엘 전파의 이상에 부합하면서도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은 《부모님 집에 계신 그리스도》였습니다. 라파엘 전자가 1884년에 설립되었는데 부모님 집에 계신 그리스도는 1849년~1850년에 그려졌으니 매우 초장기에 그려진 작품이죠.
이 그림에서 가운데 서 있는 아이가 예수,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손을 봐주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예수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다만 전통적인 성화(聖畫)와는 달리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그림이 전시되자마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성가정을 더럽게 묘사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특히 바닥에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나무밥들이 문제가 되었죠. 사실 이렇게 이들을 이렇게 비난했던 것은 라파엘 전파의 인물들이 아주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이 지긋한 소위 원로라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저 멋도 모르는 젊은이들의 치기로 보였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 때문에 라파엘 전파는 공식적으로는 해체됩니다. 겨우 1848년에 결성되어 1850년 영국 왕립미술원 전시회에 전시되었고, 이후 멤버인 제임스 콜린슨이 탈퇴했으니까 3-4년 남짓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들은 라파엘 전파에서 추구하던 이상에 따라 작품을 남겼습니다. 또한 많은 동시대 및 후대 화가들이 라파엘 전파의 기법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밀레이는 1853년작 《석방명령, 1746년》을 시작으로 라파엘 전파의 기법을 버렸습니다. 이 작품을 보시면 배경을 까맣게 칠하여 전경의 인물들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음영 대비를 키아로스쿠로라 하며, 전형적인 고전주의 작품들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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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방 명령, 1746년》, 1852-1853년경, 102.9 x 73.7 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
《구조》(The Rescue), 1855년, 121.5 x 83.6 cm,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
이 때문에 평생 라파엘 전파의 이상을 추구했던 윌리엄 홀먼 헌트와 같은 멤버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오히려 라파엘 전파를 탈퇴한 제임스 콜린슨의 작품이 훨씬 라파엘 전파에 가깝습니다.
밀레이는 말년에 완전한 아카데미즘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역사화를 많이 그렸고, 초상화와 아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도, 풍경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아래는 영국의 역사 속에서 어린 나이에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간 왕자와 공주를 그린 그림입니다. 전형적인 고전주의/아카데미즘 스타일의 그림이죠. 아마 이렇게 완전히 주류 미술계로 들어가게 되면서 남작 작위도 받고 영국 왕립미술원 원장도 되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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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탑의 두 왕자》, 1878년, 147.2 x 91.4 cm, 영국 서리주 로열 홀로웨이 칼리지 |
《세인트 제임스 감옥의 엘리자베스 공주》, 1879년, 144.7 x 101.5 cm, 영국 서리주 로열 홀로웨이 칼리지 |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10대 대표작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장 유명한 그림은 《오필리아》입니다. 그리고 10위 이내에 든 그림들은 대부분 라파엘 전파의 스타일을 유지하던 초기의 그림들입니다. 말년에 영국에서 아주 잘나가는 화가, 주류화가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이 때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저 그런 그림들로 치부될 뿐입니다. 사실 말년의 작품들은 밀레이만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작품은 거의 없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구분하기 힘듧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의 틀:존 에버렛 밀레이의 상황이었습니다. 평화 협정이나 북서항로의 경우엔 사실 다른 문서에 연결된 상태였기 때문에 오필리아만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래는 현재 상태입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정리하지 않은 작품들이 많은 편입니다. 특히 제가 정리하지 않은 작품들은 다른 언어 문서는 없이 영어로 된 문서만 존재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 등재된 밀레이의 작품들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정리하지 않은 문서들은 거의 작년말에서 올해에 걸쳐 만들어진 문서이고, 그것도 한두명 정도가 문서를 생성했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밀레이와 관련된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문서를 만든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존 에버렛 밀레이 협회" 이런 단체요(물론 이런 협회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필요한 일이죠. 작가 그리고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려면 "유명"해져야 하고, 위키백과는 이를 위한 좋은 도구이니까요.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