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공부/화가

궁정 화가 빈터할터: 유럽 왕실을 사로잡고도 시기를 받았던 비운의 거장

하늘이푸른오늘 2026. 8. 20. 21:18

흰색의 화려한 궁정 드레스를 입고 어깨를 드러낸 여인이 몸을 약간 옆으로 돌린 채 고개만 관람객 쪽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길게 땋은 흑갈색 머리에는 작은 다이아몬드 별 모양 장식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오스트리아 황후였던 엘리자베트입니다. 당시 띄어난 미인으로 유명했으며, 유럽 왕실 중에 허리가 가장 가늘었던(다이어트에 광적으로 집착하여 19인치 ~ 20인치를 계속 유지했다고 합니다) 것으로 알려졌고 시시(Sisi)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일부), 1865년, 255 x 133 cm, 빈 미술사 박물관

이 초상화는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오스트리아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입니다.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는 독일의 깡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3세가 되던 1828년부터 궁정 사회에 진출해서, 결국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수석 궁중 화가가 되었고,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국왕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였습니다. 

아래 왼쪽은 영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이고, 오른쪽은 폴란드 귀족가문의《포토츠카 백작부인의 초상》입니다. 제가 남자다 보니 계속 여성분들의 초상화만 골라 보여드리고 있지만, 사실 빈터할터는 국왕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가족 초상화도 있고요. 어쨌든 빈터할터는 단점을 가리고, 모델들이 보여주고 싶거나 보여줘야 할 이미지를 그림 속에 담는데 능숙했습니다. 또한 모델의 포즈를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출하는 데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만큼이나 섬세한 직물, 모피, 장신구의 질감을 표현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여러번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가기도 했을 정도로, 왕가와 귀족들의 의뢰를 가장 많이 받았던 분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1843년, 64.8 x 53.3 cm, 영국 로열 컬렉션 포토츠카 백작부인의 초상》, 1854년, 116 x 85.5 cm,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그런데 당시 회화의 위계에 따르면 초상화는 역사화(역사 및 신화)보다 아래였습니다. 당연히 빈터할터도 역사화를 그리려고 시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836년 살롱〉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초상화 전문화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비평가들은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화가"라며 평가절하를 했고, 이러한 평가가 평생 지속적으로 뒤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결국 그는 초상화가로 가장 유명했고 그로부터 많은 부를 쌓았고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결국 초상화 이외에서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불운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이는 빈터헌터가 독일 출신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프랑스와 독일은 우리나라와 일본 만큼이나 사이가 않좋은데,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궁벽한 시골 출신이 프랑스 궁정에서 수석 궁정화가로 명성을 누리고 있었으니, 당시 프랑스의 화가들은 얼마나 아니꼬웠을지 상상이 갑니다. 드러내놓고 싫어한다는 표시는 낼 수 없으니 작품가지고 타박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만약 우리나라 청와대 전속 화가... 는 없을테니 전속 사진사가 일본 출인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시면 그 기분을 아실 것 같다... 싶습니다.

아래는 빈터할터의 대표작인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외제니 왕후》입니다. 외제니 왕후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왕후로, 그림에서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 분입니다. 뒤쪽 배경은 가상으로, 마치 연극 무대처럼 꾸몄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을 보고 "인물의 개성보다는 드레스 세부 묘사에 더 치중한 것 같다"고 혹평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인물들의 표정이 너무 굳어있어서 좀 아쉽지만(초상화이다 보니 표정이 한결 같습니다), 구도와 인물 묘사, 음양 처리 등에서 정말 뛰어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외제니 황후》, 1855년, 300 x 420 cm, 프랑스 콩피에뉴성

이 그림의 제목에서 "시녀"가 들어 있는데, 이는 Ladies in Waiting의 번역으로,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녀"와 비슷할 거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외제니 황후 좌우에 있는 분은 공작부인들이고, 나머지 여인들도 모두 귀족 부인들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얼마 후 큰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아래 그림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부군인 앨버트 공의 생일 선물로 준 그림인 《플로린다》인데, 인물의 배치가 비슷하다보니 위의 귀족 부인들이 아래 그림에도 모델로 섰다는 소문이 퍼졌거든요. 뭐... 그게 사실인지는... ㅎㅎ 

《플로린다》, 1853년, 178.4 x 245.7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지만 저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물 배치는 그가 좋아하던 구도 였거든요. 빈터할터가 경력 초기에 그린 달콤한 휴가》 (1836년)과 데카메론》(1837년)와 비교해 보시면 이해되실 겁니다.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의 10대 대표작

아래는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의 그림 중 언어링크 수가 많은 10개의 작품을 나열한 겁니다. 제가 가장 나중에 소개시켜드린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외제니 왕후》과 《플로린다》가 제일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거의 초상화입니다. 현대에 들어 초상화는 정말 인기가 없는 주제입니다. 요즘도 사진보다 초상화가 더 고급으로 쳐준다고는 하고, 돈이 많은 분들은 요즘도 의뢰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이 분은 별로 인기가 없는 거죠. 특히 유럽 왕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겠고요.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하기 전 틀: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의 상태였습니다. 완전히 비어있네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듣보잡인 분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정리한 후의 상태입니다. 언어링크 수가 1 또는 2인 경우는 건너뛰고 나머지만 정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