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아름다운 여인이 석류를 들고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겨울 동안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 로마 신화의 여신 프로세르피나입니다. 프로세르피나는 유피테르(주피터, 제우스)와 케레스의 딸인데, 지하 세계의 신인 플루톤(플루토,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결혼했습니다. 이에 엄마인 케레스가 유피테르에게 지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간청하자, 지하세계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조건하에 승락했는데, 프로세르피나는 이미 석류 씨앗 6개를 먹었기 때문에 1년 중 6개월은 지하세계에 머물고 나머지 6개월은 지상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로세티가 그린 프로세르피나 입니다. (아래로 너무 길어서 아래쪽을 일부 잘랐습니다.)

이 그림의 모델은 제인 모리스였습니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사랑하고 영감을 주던 뮤즈였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로세티의 친한 후배 윌리엄 모리스의 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로세티와 모리스는 사업도 함께 하였고, 여름 별장도 함께 빌렸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죠.
그림속 프로세르피나는 어둠 속에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 속에 서 있습니다. 6개월은 지하세계에, 6개월은 지상에서 살아야 하는 프로세르피나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배경 속 담쟁이 덩굴은 집착하는 기억의 상징입니다. 결국 이 그림은 프로세르피나의 운명에 빗대어 로세티와 제인 모리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고 해석됩니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는 라파엘 전파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라파엘 전파의 목표는 라파엘로 산치오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계승한 예술가들의 기계적인 접근 방식과,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도입한 형식적인 교육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영국 예술을 개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콰트로첸토(1400년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미술의 풍부한 세부 묘사, 강렬한 색채, 복잡한 구성을 되살리고자 했으며, 그들의 예술 작품은 고귀하거나 종교적인 성향의 주제를 포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기 작품들은 거의 모두 아름다운 여인을 클로즈업한 그림들이었습니다. 아래는 그중 일부입니다. 그래서 라파엘 전파에 속한 친구들은 그를 배반자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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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나 반나》(Monna Vanna), 1866년, 88.9 x 86.4 cm,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모델: 알렉사 와일딩 | 《베누스 베르티코르디아》(Venus Verticordia), 1864년-1868년경, 98.1 x 69.9 cm, 영국 본머스 러셀 코츠 미술관 모델: 알렉사 와일딩 |
《로마의 미망인》(Roman Widow), 1874년, 104.8 x 93.3 cm, 푸에르토리코 폰세 미술관 모델: 알렉사 와일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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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잔》(The Loving Cup), 1867년, 66 x 45.7 cm,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모델: 알렉사 와일딩 |
《백일몽》(The Day Dream), 1880년, 158.7 x 92.7 cm,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모델:제인 모리스 |
《피암메타의 환영》,(A Vision of Fiammetta) 1878년, 140 x 91 cm, 개인 소장 모델: 마리 스파르탈리 스틸먼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처음부터 관능적인 여성을 그렸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초기에는 《성모 마리아의 소녀 시절》(1849), 《보라, 주님의 여종이로다》(1850)와 같은 성경에 기반한, 그러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성화를 그렸습니다. 또한 로세티가 가장 좋아했던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그 중 하나가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그녀의 시동생 파올로 말라테스타 사이의 불륜을 다룬 삼면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입니다. 로세티는 이 작품을 1400년대의 원시 르네상스 시대 스타일로 그렸습니다. 아마도 14세기 시 신곡의 의미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겠죠.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후대의 예술가들이 많이 묘사한 정말 안타까운 사랑을 한 연인입니다. 13세기 이탈리아, 라벤나 영주의 딸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영주의 아들인 조반니 말라테스타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반니는 절름발이에 못생긴 인물이라, 잘생긴 자기 동생 파올로를 맞선 자리에 내보냅니다. 만나자 마자 둘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위 삼면화 중 맨 왼쪽이 사랑에 빠진 연인을 묘사합니다. 결국 이들은 형인 조반니에게 들켜 함께 살해 된 후, 색욕의 지옥에 빠뜨려져 영원히 떠돌게 됩니다. 맨 오른쪽이 지옥의 불속을 떠나니는 둘의 모습입니다. 가운데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지옥의 불길 속에 유령처럼 서로를 껴안고 떠다니는 두 연인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세티는 사생활이 지저분했습니다. 맨 처음에 친한 후배인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를 사랑한 이야기를 말씀드렸지만, 그가 가장 사랑한 뮤즈이자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시달, 패니 콘포스 등을 포함해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아내인 엘리자베스 시달에게는 정말 못할 짓을 했습니다. 처음 1849년에 만나 1851년 경에 약혼을 했지만, 집안 차이, 로세티의 바람,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결혼을 미루다가 1860년, 약혼한지 10년만에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급히 찾아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당시 아편팅크라는 만성 질병과 약물 중독으로 힘든 상태였고, 결국 2년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너무 슬퍼했던 로세티는 자신의 미발간 시집 원고를 엘리자베스의 관 안에 넣어서 묻었죠.
하지만, 바로 그 다음해에 만났으며, 가장 많은 작품의 모델이 된 알렉사 와일딩과 사랑에 빠졌고, 몇년후에는 (친구들의 간곡한 요청에) 무덤을 파헤쳐 시집 원고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처음 소개시켜드린 《프로세르피나》에 관해 한가지 더. 프레더릭 리처드 레일랜드란 분이 로세티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성사되지 못한 의뢰를 제외하고도 총 18 점의 작품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로세티와 의논해서 아래와 같은 삼면화를 구상해서 자신의 응접실에 전시했습니다. 아래 그림의 크기를 보시면 좌우측은 작고 중앙 그림이 크기가 크다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최대한 비슷한 비율로 맞춰본 겁니다. 이렇게 전시해 뒀으면 정말 즐거웠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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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네모시네》(Mnemosyne), 1875년-1881년경, 126.4 x 61 cm, 미국 윌밍턴 델라웨어 미술관 | 《축복받은 처녀》(The Blessed Damozel), 1875-1878년경, 174 x 94 cm, 영국 레이디 레버 미술관 | 《프로세르피나》(Proserpine), 1874년, 125.1 x 61 cm,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
위키백과가 알려주는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10대 대표작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10대 작품은 모두 언어링크 수가 10 이상입니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유명세 보다 작품의 언어링크 수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아마... 제 생각일 뿐이겠지만, 이 또한 미술 분야에서 뒤진 영어권 국가에서 라파엘 전파 화가들을 집중적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위키백과 정리
아래는 제가 정리를 시작하기 전 틀: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상황이었습니다. 《사랑의 잔》은 영어 위키백과에는 없지만, 제가 프랑스어 페이지에서 추가한 문서입니다. 2026년 초에 도쿄로 명화 여행을 가면서 국립서양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정리했었거든요.

아래는 현재의 틀: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상태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회화작품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