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몰랐던 푸른 빛의 거장: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분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발음하기도 힘든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는 덴마크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원래 크뢰위에르는 그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아래《호른베크의 아침. 돌아오는 어부들》와 같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덴마크의 담배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인 하인리히 히르슈프룽의 후원을 받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그림 공부를 떠나게 되고,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제작한 미술 작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의 문장에서 보신 것처럼, 크뢰위에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공부한 것도 아니고 함께 전시회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즉, 크뢰위에르의 작품 상당수는, 특히 풍경화의 경우엔 인상주의 화풍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에게는 한마디로 듣보잡이었습니다.
이는 인상주의 문서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에는 크뢰위에르의 이름과 그의 작품 《힙 힙 후레이!》가 들어 있기는 합니다만, 본문중에는 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속했던 스카겐 화파만 잠깐 언급되었을 뿐이죠.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 미술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근현대 미술의 문을 연 화파입니다. 프랑스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목록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이 목록 맨 아래쪽에는 일본 화가도 한 명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양화가가 없을 때라서 그렇지, 만약 있었다면 인상주의가 아마도 대세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쨌든 주류 프랑스 미술계 입장에서는 스카겐 화파나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는 저기 예술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에 있는 이름 모를 화가에 불과했던 겁니다.
아래《힙 힙 후레이!》는 크뢰위에르의 대표작입니다. 스카겐 화파에 속했던 주요 화가들이 야외 파티를 하는 장면이죠. (스카겐 화파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초 덴마크 최북단 윌란반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 스카겐에서 여름마다 모였던, 주로 덴마크인으로 구성된 느슨한 예술가 공동체였습니다.) 그림 뒷쪽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정중앙의 안경을 끼고 있는 인물이 바로 크뢰위에르입니다. 이 그림에는 부인인 마리 크뢰위에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점심》과 비교됩니다. 화가의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벌인다는 주제가 비슷하죠. 그림 스타일에서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와 유사한 점이 보입니다. 두 작품 모두 나무 그늘 아래 모인 인물들 위로 나뭇잎을 통과한 햇빛들이 어른거리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죠.

크뢰위에르의 대표작중에는 아내 마리 크뢰위에르를 묘사한 작품이 많습니다. 아래는 크뢰위에르가 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 화가와 그의 아내》입니다. 해가 막 진 후에 파란 빛이 하늘과 땅에 가득한 블루 아워에 스카겐 해변을 거닐고 있는 크뢰위에르 부부와 반려견 "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 바다에 돛단배 들이 떠있고 옅은 달빛이 파도에 일렁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크뢰위에르는 블루 아워를 묘사한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크뢰위에르는 "스카겐은 밝은 햇빛 아래서는 지독하게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해가 지고 바다 위로 달이 떠오를 때... 최근 몇 년 동안 이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했죠.
아래도 블루 아워에 그려진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 》이라는 작품입니다. 아내 마리와 스카겐 화파의 여성 화가인 아나 앙케르가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예전에 소개시켜 드린 발렌시아 루미니즘의 대표화가 호아킨 소로야를 떠올렸습니다. 호아킨 소로야는 지중해의 밝은 햇빛을 사랑했고, 크뢰위에르는 블루 아워를 사랑했지만, 둘다 햇빛의 유희를 인상주의 기법으로 담으려고 했던 화가들이니까요.

크뢰위에르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되었으며, 정신병 때문에 여러번 병원을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아내 마리는 그때 즈음해서 스웨던 음악가와 관계를 가지기 시작해서 결국 1905년에 이혼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909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아래는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간에 그렸던 《장미》입니다. 커다란 장미 덤불 아래뒤로 마리가 신문을 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의 발치에는 반려견 랩이 잠자고 있네요. 저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클로드 모네의 정원의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클로드 모네도 애처가였죠. 부부가 평생 해로할 수 있는 건 정말 큰 행복인 것 같네요.

위키 백과 정리
이번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위키백과 정리는 간단했습니다. 원래 없던 틀: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를 번역하고 언어링크가 5 이상인 문서를 찾아 모두 번역하면 되었습니다. 아래에 있는 문서중 제가 번역하지 않은 건 아내인 마리 크뢰위에르 단 한명 뿐이네요. 빨간 색으로 남아 있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언어링크가 5 아래인 문서들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다시 번역할 수 있겠죠.

이상입니다.
민, 푸른하늘